[팀장시각] 실종된 허니문…피곤한 국민
2022-03-23 11:33


‘허니문’이 실종됐다. 제20대 대선이 마무리된 지 불과 2주 만이다. 통상 정부교체기 안정적 국정 마무리와 국정연속성을 위해 협력을 모색하던 모습은 없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은 인사와 사면 등을 둘러싸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특히 양측의 갈등 양상이 국운이 걸린 안보 분야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갈등의 한복판에는 새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사실상 ‘1호 정책’으로 대통령 집무실의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을 제시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무리’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작게 잡아도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의 국민 혈세가 투입될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국무회의 심의와 현직 대통령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만큼 윤 당선인 구상에 일단 제동이 걸린 셈이다.

이 사안을 둘러싼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힘겨루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문 대통령은 22일 국무회의에서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 군 통수권자로서 책무를 다하는 것을 마지막 사명으로 여기겠다고 강조했다. 임기 내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절차가 시작되면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의 연쇄 이전이 불가피한데 이에 따른 안보 공백과 혼란을 막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측도 물러서지 않았다. 인수위는 “일할 수 있게 도와 달라”며 다시 문 대통령을 압박했다. 윤 당선인은 ‘용산 집무실’이 어렵게 되더라도 5월 10일 취임과 동시에 현재 인수위 사무실이 마련된 종로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대통령 업무를 시작하겠다는 배수진을 친 상태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정면충돌로 치달으면서 여야 정치권에선 아슬아슬한 수위의 말폭탄까지 오가는 지경이다. ‘K-트럼프’ ‘취임덕’ ‘제2의 광우병 사태’ ‘역겹다’ 등의 험악한 표현은 민감한 정부교체기 책임 있는 정치인의 발언이라고 보기 어렵다.

양측의 입장차에 감정이 개입되다 보니 충돌이 확전되는 모습도 목도된다. 북한의 최근 방사포 사격에 대해 인수위와 국방부가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 여부를 놓고 상반된 평가를 내놓은 게 일례다. 일단 양측 평가의 옳고 그름을 떠나 현 정부와 새로 출범할 정부가 자칫 북한의 오판을 야기하고 남북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예민한 문제를 놓고 공개적으로 공방을 펼쳤다는 점만으로도 우려스럽다.

87년 체제 이후 24만7077표라는 역대 최소 표차이로 끝난 이번 대선 결과는 그 어느 때보다 승자의 아량과 패자의 승복을 요구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 대선에선 해묵은 지역갈등과 세대갈등에 더해 ‘성별갈등’이라는 우리 공동체 내 심각하면서도 새로운 갈등과 혐오마저 수면 위로 분출됐다. 국민통합과 갈등해소는 기대하지도 않지만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최소한 협력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은 피곤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사태에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 시끄러운 북한, 어수선한 국제정세 등 정치가 아니어도 충분히 고달프다. 정치의 사전적 의미인 국민의 인간다운 삶 영위 기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국민 피로를 가중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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