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시각] 통화정책
2022-03-24 11:48


“2년 전 이맘때 상상도 못했던 감염병 위기가 오고, 그 기간의 모든 통화정책 결정 회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히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로 당시 금융시장 안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 안도감을 기억에서 지울 수 없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8년의 임기를 마치고 오는 31일 퇴임한다. ‘43년 최장수 한은 근무’ ‘정권교체에도 연임한 첫 총재’의 기록만으로도 그가 우리나라 최고의 통화정책전문가임을 보여준다. 이 총재가 주재한 통화정책 방향 결정 회의만 76회였다.

그는 송별기자간담회에서 중앙은행 본연의 기능이라 할 수 있는 통화정책 운용과 관련된 소회를 밝히면서 중립성을 강조했다. 특히 한·미 통화스와프에 대해선 안도감을 느꼈다고까지 표현했다. 그러나 한·미 통화스와프는 지난해 말로 종료된 상태다. 한은은 당시 외환보유액이 4639억1000만달러로 충분하고, 국내외 금융·경제 상황이 위기에서 벗어나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종료 이유를 밝혔다. 또 수요가 없다고도 전했다.

그러나 경제학계 안팎에선 종료 이유로 외교적 공조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새 정부가 가장 빨리 서둘러야 할 것으로 한·미 통화스와프를 꼽는 이도 많다. 한 원로 경제학자는 “한·미 통화스와프가 공짜는 아닐 테니 외교적으로 비용을 치러야 하는 부분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불합리하지 않다면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환보유액을 많이 쌓는 건 결국 돈을 사용도 못하고 묵혀두는 것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 들어가는 것과 같다”면서 “통화스와프는 외환보유액을 쌓지 않고 필요하면 달러를 빌려주는 거니까 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 방어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통화정책이 경기나 물가 흐름을 읽고 금융 불균형을 완화할 뿐 아니라 외환시장 민감도를 낮추는 역할까지 이뤄지려면 그야말로 정치적·외교적 도움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총재도 송별간담회에서 국제기구나 주요국 중앙은행과의 협력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어디까지 닿아야 할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나 세계 경제가 워낙 밀접해 국제 공조의 필요성도 날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 후임으론 ‘천재 경제학자’로 불리는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이 지명됐다. 한국인 최초의 IMF 국장일 뿐 아니라 교수와 행정가, 국제기구 간부를 두루 거치며 이론과 실무뿐 아니라 글로벌 인맥이 넓다. 국제 공조를 기대해볼 만한 네트워크를 가진 인물이다. 중립성도 간접적으로 입증됐다. 이주열 총재처럼 이창용 국장도 정권교체에도 정책 결정에 역할을 이어간 경험이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을 맡았고, 이명박 정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그런데도 한은 총재 인사를 둘러싸고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힘 겨루기가 꼴사납게 이어지고 있다. 청문회를 고려하면 당장 다음달 1일부터 사상 초유의 ‘한은 총재 공백’ 사태도 일어날 전망이다.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번지고 있는 지금, 한가하게 인사권을 둘러싼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다니. 공조는 앞으로도 기대가 어려울 것 같다.



yj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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