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천년의 끝에선 ‘청와’…대통령실 새 이름은
2022-03-28 11:19


청와대의 역사는 1382년 9월 고려 우왕이 지금의 서울인 남경으로 천도하며 지금의 자리에 궁궐을 지으면서 시작된다. 뒤로는 북한산을 두고 남으로 한강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남면(南面)’의 자리다. 조선 때엔 연무(鍊武) 등이 이뤄지며 경무대(景武臺)로 불린다. 경복궁(景福宮)은 이보다 조금 남쪽에 위치한다. 일제는 1936년 이곳에 총독부 관저를 짓는다. 이후 미군정사령관 관저를 거쳐 대통령 관저로 이어진다. 4·19 이후 청와대로 이름이 바뀌고 정권을 거치며 증·개축이 이뤄진다.

‘청기와’는 청자(靑瓷) 기법을 활용해 만든 기와다. 한국과 중국에만 있는 최첨단 최고급 건축재였다. 고려의 궁인 만월대(滿月臺)에 청기와 전각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며, 경복궁이 처음 만들어질 때도 주요 전각에 청기와를 사용했다. 현재 남은 청기와 전각도 창덕궁(昌德宮) 편전(便殿·왕의 집무실)인 선정전(宣政殿)이다. 일제도 총독관저에 청기와를 얹었다. 청기와가 최고권력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이 들어설 국방부 청사는 조선 때엔 둔지방(屯之坊)에 속했다. 당시 용산방은 지금의 마포 쪽에 위치했다. 군사들이 주둔하며 농사를 짓는 땅을 둔전(屯田)이라고 했다. 왕실 기와와 벽돌을 만들던 곳과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氷庫)도 있었다. 백제 이후 조선까지 중요한 병참기지였고 구한말 청군과 일본군이 군사기지로 잇따라 사용한다. 일제의 조선(주둔)군사령부가 위치했고 이후 지금의 미군사령부가 들어섰다. ‘군주(龍)’보다는 ‘군사(兵)’와 인연이 깊어 보인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왕정 때로 치면 ‘이어(移御)’다. ‘왕자의 난’ 이후 조선 태종이 경복궁에서 창덕궁(昌德宮)으로 옮겼다. 세종 때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왔지만 임진왜란 이후에는 창덕궁이 정궁이 된다. 고종은 경복궁을 중건하지만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덕수궁(德壽宮)을 사용하고 순종은 다시 창덕궁으로 이어한다. ‘이어’의 시기는 주요한 역사적 고비와 일치한다.

대한민국도 수도 이전은 여러 차례 시도되고 일부 실현됐다.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 후보가 행정수도 대전 이전을 공약했고 박정희 정부 말기에는 충남 연기에 임시행정수도 건설계획이 세워졌다. 5공화국 때 과천 제2청사로 국가기관의 탈(脫) 서울이 시작됐고 노무현 정부 때 행정수도 이전으로 국가 기능의 지방 분산이 가속된다. 대통령 집무실을 통째로 옮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식 건물인 국방부 청사에 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1000년 역사의 ‘청와’가 앞으로는 최고권력의 상징이 되기는 어렵게 됐다. 국방부 청사는 뒤로는 남산과 둔지산 등에 둘러싸여 있고 남으론 한강까지 평지가 이어진 지형이다. 지대가 그리 높지 않아 ‘대(臺)’라는 표현도 어색해 보인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일본군 고위장성에 주로 쓰였던 ‘각하(閣下)’ 호칭을 없앴다. ‘각’은 관청, 궁전이란 뜻이다. ‘폐하’, ‘전하’, ‘저하’도 ‘대궐섬돌(陛)’, ‘대궐전각(殿)’, ‘관저(邸)’ 등 건물과 연결된다. 대통령 호칭에 이어 이번엔 집무실 이름도 바꿔야 할 듯하다. 조선은 궁궐 전각 이름을 지을 때 유교 경전의 문구를 따와 군주에 경계가 되도록 했다. 새 대통령 집무실 이름에는 국민에 좀 더 가까이 가려는 뜻이 잘 담겼으면 싶다.



kyhong@heraldcorp.com



랭킹뉴스


COPYRIGHT ⓒ HERALD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