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현의 현장에서] 중처법 비용 기업만의 ‘몫’ 아니다
2022-04-11 11:27


최근 경기도 안산상공회의소에서 개최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전국 순회설명회 현장. 현지 기업관계자 40여명은 두 시간가량의 강의 내내 부지런히 메모하며 설명회에 열중했다. 법 위반 시 기업은 막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참가자들 표정에서도 긴장감이 역력했다.

실제 강의 후 만난 참가자들은 교육만으로는 중처법 공포감을 해소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중소건설사 직원 A씨는 “성실히 (안전보건관리에) 임하더라도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모르지 않냐”며 “한 번 걸리면 저희 같은 회사는 하루아침에 공중분해가 된다”고 우려했다. 자동차 협력업체의 직원 B씨도 “영업정지라도 당하게 되면 다음에 새로운 계약을 따지 못할 가능성도 커진다. 법 위반으로 적발되면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실제 시행 두 달이 넘은 지금 시점에서 중처법이 적용된 사건은 40건에 육박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중앙사고조사단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4일까지 사망자는 총 95명이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봐도 1월 27일부터 한달 동안 발생한 사망 사고는 35건, 사망자는 42명이다. 법 시행 전인 지난해 같은 기간 사고 18건, 사망 18명보다 오히려 늘어났다.

늘어난 인명 피해를 두고 재계에서는 법 실효성이 없다는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반대로 노동계는 이 같은 현실 때문에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재계와 노동계가 정반대 논리를 펼치는 사이 이 법이 산업현장에서 인명 피해를 줄이는 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나아가 중처법은 기업들을 존폐의 기로에 세울 수 있다는 불안감마저 키웠다. 이 법은 경영책임자에게 자사 직원뿐만 아니라 하청근로자, 노무 제공자에 대해서도 안전보건확보 책임을 부과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안전보건 체계를 갖추기 위한 대책은 상당히 모호하다. 요약하면 자체적인 교육과 계획 수립 정도다. 법 시행 초기의 혼란과 비용은 고스란히 기업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됐다. 법에서 규정한 안전보건관리 의무를 다하더라도 ‘재해처럼’ 발생하는 사고를 피하지 못할 경우 사업 영위 자체가 불투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들은 교육, 컨설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한 화학업체 직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 이후로 현장 안전 관리·감독을 해주던 대행업체에 최근 중처법 컨설팅을 새로 맡겼다”고 전했다.

법 시행 취지가 ‘기업 때리기’가 아니라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것이라면 실질적으로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정부는 지난달에야 중처법 운영 모니터링과 제도 안착을 위한 연구에 나섰다. 법 시행 초기 일괄적인 무료 컨설팅뿐 아니라 업종과 규모 등 개별 기업별로 안전 관리에 취약한 요소와 예방책 등을 파악해 정부도 그에 맞는 지원을 발굴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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