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시각] 경기도는 죄가 없다
2022-04-20 11:13


“저 먼저 일어날게요.” “왜, 벌써 가게?” “막차 시간이 다 돼서….”

최근 방영을 시작한 토일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직장인 염미정은 회식자리에서 늘 먼저 일어난다. 사실 그는 회사에서 지원하는 동아리모임도 나가지 않는다. 집이 멀어서다. 미정의 오빠인 창희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가장 큰 이유가 경기도에 살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이렇게 하소연한다. “걔가 경기도를 뭐랬는 줄 아냐?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 내가 산포시 산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산포시가 어디 붙었는지 몰라. 어차피 자기는 경기도에 안 살 건데 뭐 하러 관심 갖냐고 해. 하고많은 동네 중에 왜 계란 흰자에서 태어나 갖고….”

이제 4회까지 방영되었는데 주인공들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삼 남매 중 장녀인 기정은 “우리가 서울에 살았으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고 자문한다. 불행한 삶의 가장 큰 배경이 경기도민이라는 것이다.

드라마를 본 경기도민 중 불편한 사람이 있었나 보다. 각종 포털 게시판, 블로그 등엔 “경기도 비하 드라마냐”라는 반응도 꽤 나온다. 경기도에 대해 중심부 서울을 둘러싼 주변부라는 인식은 정당한 것일까. 객관적인 지표를 보면 생각을 좀 바꿔야 한다. 기본적으로 규모가 더 커졌다. 2021년12월 기준 경기도민은 1356만5440명이다. 서울시민(950만9458명)보다 400만명 이상 많다. 최근 6년간 서울에서 경기로 빠져나간 인구만 340만명이 넘는다. 창희의 헤어진 여친이 경기도에 살 일이 없다고 했지만 모를 일이다. 경기도로 빠져나가는 주요 연령대는 20~30대다. 감사원이 미래 인구 추이를 산정한 결과, 경기도는 17개 광역지자체 중 유일하게 인구감소와 소멸위기를 버티는 곳이다. 경기도에서 하남·김포·광주·화성·양평은 2067년까지 인구가 느는 ‘이변 도시’로 예측됐다. 수원·고양·용인 등은 전국 평균보다 감소폭이 덜하다.

은퇴자도 경기도를 선호한다. 직방이 지난해 10~11월 ‘은퇴 이후 희망하는 거주지’를 조사한 결과, 1위는 경기도였다. 설문 응답자 1323명 중 35.4%가 경기도에 살고 싶다고 했다. 서울은 17%에 불과했다.

GRDP(지역내총생산)도 서울을 앞선다. 경기도 GRDP는 486조7000억원(2020년 기준)으로, 서울(440조3000억원)보다 많다. 2014년부터 경기도 총생산(352조원)이 서울(341조원)을 앞서기 시작해 격차를 더 벌이고 있다. 2020년 실질성장률만 따져도 경기도는 5.1%인데 서울은 마이너스 성장(-0.1%)했다. 신도시 개발과 대기업 사업지 이전 등으로 신규 일자리가 계속 창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전문가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그래서 “경기도가 서울 의존형 도시에서 ‘직주자립형’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그는 “경기공화국이 탄생했다”고 일갈한다. 노른자 서울을 둘러싼 흰자 경기가 아니라 이미 서울에서 ‘해방’된 자립도시로 변신했다는 진단이다.

경기도민 가운데 실제로 드라마 속 삼 남매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서울에 살면서도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과 같다. 경기도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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