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크름·돈바스 해결없이 국가원수 수준서 타결 불가능”
2022-04-27 11:24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과 회담을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왼쪽)은 착석 전 회담장에 들어서는 구테흐스 사무총장을 보고 엷은 미소를 보이며 영어로 “앉으시라(Please, sit down)”고 말했다.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의 길이는 6m에 달한다. 푸틴 대통령이 상대방을 제압하거나 모욕감을 주려는 의도로 사용하는 도구라는 해석이 있다. [크렘린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전쟁 상대국인 우크라이나와 논의하던 평화협정 초안에 크름(크림)반도·세바스토폴(크름 내 특별시)·돈바스공화국 등 영토 문제가 포함돼 있던 것과 관련해 “이런 사항에 대한 결정이 없으면 국가원수 수준에서 해결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지난달 29일 진행한 5차 평화협상을 거론한 것이다. 실무 차원에서 크름·돈바스 문제가 우선 풀리지 않으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평화협정에 서명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읽힌다.

러시아 관영매체 리아노보스티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크렘린궁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한 회담에서 “이스탄불에서 우크라이나 측이 안보보장 요구를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국경, 크름, 세바스토폴, 돈바스공화국과 연관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꽤 진지한 돌파구를 마련했다”면서 “이후 부차의 도발에 러시아가 직면했고, 우크라이나의 입장이 극적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으로선 우크라이나가 5차 평화협상에서 ▷중립국화를 추진하고 ▷크름반도 재탈환 노력을 배제하며 ▷안보보장 대상 지역에서 돈바스공화국을 빼기로 했는데 부차 집단학살을 이유로 이전과 달라졌다고 보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부차 집단학살은 러시아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 “누가 이 도발을 준비했는지 안다”면서도 “우린 협상을 하고 있고, 거부하지 않는다”고 해 외교적 해결의 가능성을 닫진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2월 24일)하기 사흘 전 돈바스 지역에 친(親)러 분리주의 세력이 세운 도네츠크·루한스크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한 건 현지인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집단학살을 막기 위한 강제조처였다고 재차 정당화했다. 세르비아에서 독립한 코소보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ICJ)의 모든 문서를 개인적으로 읽어봤는데, 자결권을 행사할 때 특정 국가의 영토에 대한 주권 선언을 해당국 중앙정부에 신청할 의무가 없다고 돼 있다면서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군을 급진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에 비교하며 비난했다. 그는 자국군이 함락시킨 남부항구 도시 마리우폴에 있는 제철소 아조우스탈에 남은 2000명의 민간인을 거론, “우크라이나군은 그들을 풀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간인 뒤에 숨는 IS와 같은 테러리스트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이날 “우리는 협상 참여자가 아니지만 양국(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대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유엔은 회담 뒤 성명을 내고 푸틴 대통령이 유엔과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아조우스탈 공장에서 민간인 대피에 관여하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했고,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과 러시아 국방부간 후속논의가 있을 거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구테흐스 총장을 만났을 때 미소를 지으며 영어로 “자리에 앉으시라”며 6m에 달하는 긴 테이블의 끝자리로 안내했다. 최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독대할 땐 일반 탁자였는데, 상대방을 제압하거나 모욕감을 주려는 도구라는 해석이 있던 긴 테이블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홍성원 기자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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