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이 주목하는 尹대통령의 젠더 인식, 되돌아오는 ‘구조적 성차별’ 질문
2022-06-01 17:25


코로나19 손실 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집행을 앞둔 30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김대기 비서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2월 한 내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해당 발언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우선순위로 공약한 것과 관련, ‘편 가르기 의도가 아닌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왔다. 윤 대통령은 당시 “여성은 불평등한 취급을 받고 남성은 우월적 대우를 받는다는 건 옛날이야기”라면서 “사회적 약자를 국가가 실질적으로 보호해 주면 된다”고도 말했다.

해당 발언은 선거 기간 내내 윤 대통령의 젠더 인식에 대한 물음표로 따라붙었다. 대선 전 마지막 TV토론에서도 윤 당시 대선후보는 이러한 입장을 고수했다. 대선 후보로 선출되기 전에는 저출생 문제를 언급하며 “페미니즘이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돼 남녀 간 건전한 교제 같은 것도 정서적으로 막는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후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윤 당시 후보는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의 하나로 여성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그런 것을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선(3월10일) 직전이자 ‘세계 여성의 날’(3월8일)에 보도된 미국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윤 당시 후보는 “나는 나를 페미니스트로 여긴다”(In that sense, I consider myself a feminist)는 발언을 두고 매체와 진실공방을 벌였다. 선거대책본부는 실무진의 착오로 ‘원본’이 아닌 ‘축약본’이 매체에 전달됐고, 원본에 없던 ‘페미니스트’ 발언이 축약본에 담겨 잘못 전달됐다며 내신 매체에는 축약본으로 보도해줄 것을 공지했다. 이에 WP는 선대본의 답변지를 공개하면서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후 WP는 또다른 보도를 통해 윤 후보가 ‘세계 여성의 날’에 ‘페미니스트’ 표기를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외신에서는 윤 대통령의 젠더 인식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윤 대통령에서 반드시 물어봐야 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인 시절인 4월 WP와 또 한 차례 인터뷰를 했고, 다시 젠더 문제를 다뤘다. 윤 당시 당선인은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집단적 구조적 차별에 직면하지 않고 성장했다”며 “집단적 관점에서 성평등에 접근하기보다, 개별적 범죄 사건이나 노동·교육 현장에서의 불평등한 처우, 범죄 피해 보상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에 기반해 다뤄야 한다는 광범위한 요구가 있다”고 밝혔다.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보도진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질문을 위해 손들고 있다. [연합]

대통령으로서는 지난달 21일 한미정상회담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성평등과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 WP 소속 기자는 윤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한국 사회, 내각 인선에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언급하며 “여성의 대표성 향상과 성평등 증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생각인가”라고 질문했다. 윤 대통령이 당선일인 3월10일부터 취임일인 5월10일까지 두 달 동안의 인수위 기간에 준비한 1기 내각 및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중 여성이 단 세 명이라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약 7초간 말을 하지 못하다가 “지금 공직사회에서 예를 들면 내각의 장관이라고 그러면, 직전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 못했다”며 “아마 우리가 각 지역에서 여성의 공정한 기회가 더 적극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한 지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이러한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의 답변은 결국 ‘구조적 성차별’에 대한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답변이 ‘구조적 성차별’을 인정한 것이냐는 질문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입장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더 노력하겠다는데 방점이 찍혀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

인사에서 “(여성) 할당과 안배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윤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이후 단행한 내각 인사에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복지부 장관, 식약처장에 모두 여성 후보자를 지명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4일 국회의장단과의 만찬에서 젠더 문제와 관련해 “한 참모가 ‘여성이어서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게 누적돼 그럴 것’이라고 하더라.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가 최근 여성 인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 “윤 대통령이 기분이 좋으신 것이 눈에 보인다”고 말한 보도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의 성평등 인식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미국 CNN이 ‘토크 아시아’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한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남성 편중 내각에 대해 “첫 내각을 구성하는 데 시간도 없고 제약도 있어서 잘 알려진, 눈에 띄는 이들로 내각을 꾸렸지만, 향후에는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한 “한국은 여성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법·제도가 약했을 뿐 아니라, 여성에게 공정한 기회를 줘야 한다는 국민적 인식이, 심지어 여성조차도 약화돼 왔다”고 진단했다. 남성 중심 내각이 꾸려진 이유를 대통령실의 인사 준비 ‘시간이 없어서’, 근본적인 원인을 ‘국민의 성평등 인식이 약해서’라고 언급한 것이다.

이번 인터뷰에 대해 역시, 다시 질문이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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