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곡·채소 다 못 쓰게 됐다”…복구나선 상인들 망연자실 [역대급 폭우]
2022-08-10 11:07


기상 관측 이래 서울에서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피해가 속출한 가운데 10일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상인들이 수해로 피해 입은 상점을 복구하기 위해 집기를 들어내 시장통 한복판에 모아놓고 있다. 망가진 집기와 못 쓰게 된 청과 등 상품을 치우는 상인들은 걱정을 쏟아내면서도 빠른 정상 영업에 대비하기 위해 바쁜 손을 멈추지 않았다. 임세준 기자

“포기했어. 싹 다 버려야 해.” 지난 9일 오후 2시께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 안, 가게 청소를 하고 있던 한경은(61) 씨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날 오전 5시부터 한씨는 가족들과 함께 쉬지 않고 가게 바닥을 빗자루로 쓸고 걸레로 모든 물건을 닦고 있었다.

9시간째 청소 중인데도 한씨의 가게 벽과 바닥에는 여전히 흙탕물이 가득했다. 한씨는 “20년째 장사를 하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다. 청소를 해도 해도 끝이 없다”며 “말복을 맞아 잡곡과 채소를 많이 들여왔는데 다 못 쓰게 됐다”고 말했다.

남성사계시장이 있는 동작구는 80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면서 수해 피해가 집중됐다. 지난 8일 오후 9시부터 시간당 136.5㎜의 비가 쏟아지면서 동작구 일대 배수시설이 마비돼 시장은 키 170㎝ 성인 허리 높이까지 잠겼다. 상인들은 종일 복구작업에 들어갔지만 폭우의 흔적을 지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지하나 저지대에 있는 가게들은 피해가 심했다. 지하 노래방을 운영 중인 한유미(51) 씨는 펌프로 흙탕물을 퍼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역류할 것처럼 차오르는 하수구를 보며 한씨는 “하수구가 아직도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한씨는 “어제 9시부터 배수시설이 제 기능을 못 해 물이 삽시간에 차올랐다”며 “오늘 아침부터 나와 소방서, 구청 등 여기저기 전화해서 펌프를 겨우 받았다”고 말했다. 5시간째 물을 퍼내고 있는 한씨는 물을 다 빼는 데에 최소 이틀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거리 한가운데에는 전자제품이나 의자, 비에 젖은 종이상자 등 폭우로 망가진 물건들과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지나가는 시민은 쌓인 물건들을 보며 “아휴, 어떡해” “아이고, 이거 언제 다 복구하냐”며 안타까워했다. 폭우가 휩쓸고 간 데다 비까지 계속 내려 시장 바닥은 흙탕물로 가득해 시민은 천천히 길을 걸어야 했다.

상인들은 수해보험을 들지 않아 피해를 보상받을 방법도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아들과 함께 가게를 청소하던 이각주(80) 씨는 “34년 동안 시장에서 장사했지만 이런 폭우는 처음”이라며 “화재보험은 들어도 수해보험은 안 들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가게 원상복구까지 최소 한 달은 걸릴 것 같다는 이씨는 가게 안에는 보약을 짓는 각종 기계가 작동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상인들은 힘든 와중에도 서로 도우려는 모습을 보였다. 가게 청소를 돕거나 청소도구를 나누기도 했다. 한 상인은 물걸레를 짜고 있는 옆 가게 업주에게 “물걸레로만 청소하면 속도가 느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물기 제거 청소도구를 사용하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당분간 비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2차 피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기상청은 12일 오전까지 전국적으로 비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11일까지는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충청권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쏟아지고, 서울 지역에도 20~80㎜의 비가 내릴 전망이다.

비가 쏟아지던 8일 저녁부터 가게에서 계속 물을 퍼냈다던 한현수(68) 씨는 “9시부터 물이 가게로 밀려 들어오는데 배수가 원활하지 않은 것 같더라”며 “배수시설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아니면 비가 많이 오면 또 침수 피해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 되냐는 질문에 한씨는 “얼마나 손해 봤는지 계산이 안 된다”며 “돈도 돈이지만 내 마음이 너무 쓰리고 힘들어서 그런 것까지 포함하면 차마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김빛나 기자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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