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행동해야” “휴가 내고 나와”…피해에 손 걷은 MZ세대[폭우 속 영웅들]
2022-08-12 12:02


지난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3동 주택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침수된 반지하 집안 물건들을 밖으로 옮기고 있다. 김영철 기자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나부터 행동하면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먹고 살기 팍팍한 현실이지만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란 걸 국민들이 느꼈으면 좋겠어서 지원했습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3동 수해 복구 봉사에 참가한 전형석(31) 씨는 같은 날 출근을 나가야 했다. 그러나 피해 지역의 참상을 지나칠 수 없어 반차를 썼다고 했다. 12일은 평일인 데다 일정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회사에 나가야 하지만, 주말인 13일부터는 다시 봉사에 자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전씨는 “이번주 화요일(9일)까지 휴가였는데, 뉴스에서 폭우 소식을 보고 수요일(10일)부터 수해 복구 지원에 나섰다”면서도 “폭우가 쏟아진 다음날에는 봉사자가 5명밖에 안 됐는데, 그래도 오늘은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다행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 8일 115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고, 이후에도 연일 비가 내린 탓에 전국 각지에서 수해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수해 지역이 늘어나는 만큼 지역 거주민들을 돕기 위해 학생들, 주민들이 직접 손을 걷고 일손을 돕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평일에 휴가를 쓰고 봉사에 참여하는 직장인부터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폭우로 인한 참상을 알려 자원을 독려하는 대학생들까지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이 수해 복구 작업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MZ세대였다.

지난 11일 오후 헤럴드경제가 방문한 상도3동 침수 지역에는 60여 명의 봉사가 분주히 잔해를 치우고 있었다. 같은 날 본지도 약 2시간30분 동안 봉사활동에 참여한 결과, 현장에는 고등학생부터 직장인, 대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피해 주민들을 돕고 있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3동의 한 반지하방. 지난 8일 기록적인 폭우로 집안 곳곳이 난장판이 됐다. 김영철 기자

같은 날 오후부터 햇빛이 들어올 만큼 날씨가 화창했음에도 상도3동의 주택가는 폭우로 인한 참상이 역력했다. 한 반지하 건물에는 허리춤까지 물이 차오른 흔적이 건물 벽면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3동의 한 침수된 집안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 김영철 기자


지난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3동의 한 주택가 모습. 같은 날 자원봉사자들이 2시간 동안 침수된 집안 물건들을 건물 바깥으로 옮겨, 쓰레기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김영철 기자

해당 건물의 반지하 방들 속 물건들은 쓰레기로 전락했다. 옷가지들을 제외한 가전제품, 음식들, 가구 등은 모두 쓸 수 없게 돼 폐기됐다. 반지하 방 중 세탁방이 비좁은 탓에 자원봉사자가 창문을 뜯은 뒤 방 안으로 들어가 세탁기를 옮기기도 했다. 냉장고의 부피가 커 반지하방 문에 꼈을 땐 불가피하게 냉장고 일부를 부순 뒤 운반해야 했다. 이렇게 덩치가 큰 물건들을 옮기고 나면, 자잘한 쓰레기들을 치우면서 방안에 고인 물들을 퍼내는 식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봉사자 10명이 붙어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바깥으로 옮겼지만, 여전히 치운 것보다 치울 것들이 더 많았다. 2시간 동안 반지하 방안에 있던 물건을 건물 밖으로 옮기니, 건물 주위에는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3동 주택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침수된 반지하 방에서 냉장고와 옷장을 건물 바깥으로 운반하고 있다. 김영철 기자

함께 땀을 흘리며 복구 작업에 나선 대학생들도 상황의 심각성을 몸소 체험하며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중앙대 2학년 강채연(20·여) 씨는 “비가 쏟아지고 며칠 지나서 물이 어느 정도 빠졌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가득히 고여 있는 걸 보니 충격적이었다”며 “한두 시간 지나면 끝날 줄 알았던 일이 아무리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얼마나 상황이 심각했는지 와 닿았다. 그나마 자그마한 보탬이 돼서 수해 복구에 도움이 됐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지하 방들이 모두 빗물에 휩쓸렸지만, 이 방 세입자들은 뒤처리를 할 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평일인 탓에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건물 주인인 이종철(85) 씨에 따르면 반지하방 4곳엔 버스 기사부터 고령의 할머니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세를 들고 살고 있었다.

이씨는 “다들 신속하게 피해서 다치진 않았지만, 집안이 난장판이 돼 망연자실하고 있다”며 “직접 집안을 정리하고 싶어도 당장 일을 해야 하니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많이 답답했을 텐데 그래도 젊은이들이 많이 도와줘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최근 폭우로 인한 피해로 대학생들이 봉사자들을 모집하고자 중앙대 사회과학대학 비상대책위원회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 [독자 제공]

같은 날 수많은 20대 봉사자가 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학생들의 도움이 매우 컸다. 지난 10일 중앙대학교 사회과학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인스타그램에 11일부터 이틀간 침수 피해 가구 복구를 위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다.

해당 글을 올린 김어진 중앙대 사회과학대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다른 분들에게 학생들 차원에서 수해 작업을 도와달라는 글을 올리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며 “학생회 차원에서 갈 수도 있었으나 지역사회를 돌본다는 의미에서 다같이 도움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글을 올리게 됐다”고 취지를 밝혔다.

지난 9일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도 한 중앙대 재학생이 ‘도와주세요’라는 글을 올리며 학생들에게 수해 복구를 참여해줄 것을 부탁했다.

비대위와 재학생의 글들을 보고 봉사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많았다. 중앙대 1학년 김호진(19) 씨는 “사회과학대 비상대책위에서 올린 글을 보고 바로 자원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봉사자인 김라영(27·여) 씨도 “중앙대에 다니는 동생에게 에브리타임 글을 받아보고 오늘(11일) 같이 지원했다”고 했다.

에브리타임에 글을 올린 중앙대 물리학과 4학년 이중호(24) 씨는 지난 9일 수해 복구 작업에 참여했다가 게시글을 올리게 됐다고 했다. 졸업을 앞둔 터라 이날도 취업 스터디에 참여해야 했지만, 재난 문자를 보고 주저 없이 현장에 뛰어들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침수된 집안을 들여다보니 냉장고나 가구 등 중노동이 필요한 작업들이 많았지만, 당시(9일)엔 자원봉사자들 대다수가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었고, 젊은 남성은 3명뿐이었다”며 “일손이 부족하단 걸 느껴 곧장 에브리타임에 글을 올렸는데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올 줄 몰랐다. ‘글을 통해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됐다’, ‘알려줘서 감사하다’ 등의 메시지도 수십 통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소에 여러 사람에게서 감사를 받은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 일을 통해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는 걸 느꼈다. 감사하고 뿌듯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yckim6452@heraldcorp.com



랭킹뉴스


COPYRIGHT ⓒ HERALD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