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시각] 소프트웨어론, 올여름 서울 물난리 불렀나
2022-08-18 11:25


“최근 몇 년간의 홍수 피해는 대부분 홍수 설계량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발생했습니다. 급한 건 시설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선과 수해를 대비하는 주민의 인식증진이 먼저입니다.”

서울 강남4거리가 물에 잠기고, 우면산에서 대형 산사태가 발생해 토사가 아파트를 덮쳤던 2011년 서울 물난리 직후 한 환경단체 관계자가 한 말이다. 수해예방을 위해 7500여억원을 들여 서울 이곳저곳에 대형 빗물저장관로를 만들겠다는 당시 서울시의 계획이 ‘돈 낭비’이자 ‘반환경적인 토건’이라며 비판한 것이다. 그 결과, 서울시는 대수로계획 대부분을 철회했고, 반지하 차수막 설치 등의 피해예방대책도 시간이 지나며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10년이 지나 다시 더 큰 물난리를 겪고 결국 서울시와 정부는 당시 내놨던 예방대책을 어쩔 수 없이 반복 발표했다. ‘소 잃고도 외양간을 못 고친’ 결과가 결국 많은 인명 피해와 수천억원의 재산 손실로 이어지고 만 것이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우선”이라는 말은 수해 앞에서는 결국 허상에 불과했다. 시간당 100㎜가 넘는 비가 일시에 쏟아지는 하드웨어의 위기는 결국 대규모 하드웨어가 있어야만 극복 가능하다는 것이 이번 여름의 교훈이다.

오히려 시민단체가 우려했던 ‘소프트웨어’는 이번에는 잘 작동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수해의 일선 현장에 있었던 서울시 공무원은 “그 많은 비가 내리고 일시적으로 큰 피해가 발생했지만 몇 시간 만에 물이 다 빠지고 빠르게 정상 복구되는 것을 보면 그래도 서울의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한 번 물에 잠기면 한강 수위가 내려가는 며칠 동안 저지대 도로와 지하철 역사에 물이 그대로 고여 있던 1990년대 서울의 모습은 더는 없다는 의미다.

세계는 지금 ‘하드웨어’전쟁이다.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와 베터리 등 미래 산업의 핵심 하드웨어 기반을 선점·독식하기 위해 30년 전 사라진 줄 알았던 냉전을 살벌하게 펼치고 있다. 또 러시아는 물리적 영토확장을 위해 침략전쟁까지 불사하는 모습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구글의 안드로이드, 애플의 iOS로 상징되는 똑똑한 소프트웨어 하나면 하드웨어 따위는 언제 어디서나 가져다 쓸 수 있다는 10년 전 ‘소프트웨어 절대론’은 이제 제대로 된 하드웨어 기반 없이는 허상에 불과한 말로 전락했다. 반도체난이 불러온 자동차 생산 차질, 또 컴퓨터 그래픽카드 가격의 급등이 소비자의 행태 변화와 소프트웨어업체들의 실적 급락을 불러온 것은 튼튼한 하드웨어 기반의 중요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수해 방지도 마찬가지다. ‘토건’이라는 딱지를 붙여 대규모 사회 SOC사업을 악마화했던 최근 10여년 과거도, 그 이전 세대가 사회기반시설에 무리할 정도로 집중 투자했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다시 미래 10년·20년을 보며 지난 10여년간 소홀했던 하드웨어 투자를 다시 시작할 때다. 그래야만 10년 후 다시 내릴지도 모르는 시간당 100㎜, 150㎜의 비와 태풍에도 우리 자녀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소 잃고 외양간을 또 못 고친다면 이는 우리 자녀에 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다름없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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