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참사 11년 “생존피해자, 청소년이 37%…맞춤 피해지원정책 필요”
2022-08-31 11:01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11주기 사망 어린이 추모 나무심기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나무를 심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공식화한지 만 11년을 맞은 31일 유족과 시민단체가 청소년 피해자를 위한 연령별 맞춤형 피해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31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날 보고서를 내며 “영유아 어린이 때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입고 지금 생존해 있는 청소년 피해자들이 성장하면서 겪게 될 신체적, 사회적 어려움을 고려해 생애주기에 맞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날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2011년 8월31일 이후 2022년 7월31일까지 만 11년 동안 정부에 신고된 피해자 7768명과 피해인정자 4350명을 분석한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강은미·이은주 정의당 의원실 등을 통해 한국환경산업기술원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작성됐다.

이 단체에 따르면 현재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위한 상담지원서비스(콜링유)와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청소년 피해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콜링유의 경우, 고령 및 중증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대상으로 맞춤형 건강상담을 진행한다. 2020년 시범사업이 시작돼 올해 8월 기준 109명이 참가하고 있다. 또 피해인정자 중 취약계층의 불편해소를 위해 의무기록물 발급을 대행하는 찾아가는 서비스는 2014년부터 진행돼 올해 8월까지 총 2363건 제공됐다.


가습기 살균제 연령별 피해등급별 인원 수. 10~19세 연령 층에서 상위 등급인 중증도·고도·초고도 피해등급을 판정받은 10대는 43명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올해 7월 기준 피해인정 생존자 중 10대 비율은 37%로 가장 많다. 보고서는 그 이유로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알려지고 판매 및 사용이 금지된 이후 11년이 지나면서 나타나는 연령대별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2002년~2011년에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됐던 9세 이하 피해자들이 10여년이 흐른 후에도 피해를 겪고 있다는 의미다.

중등도 이상의 피해등급을 받은 10대 피해자가 50세 미만 연령대에서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인정 생존자1312명 중 중증도·고도·초고도 피해등급을 판정받은 10대는 43명이다. 보고서는 “현재 10대인 피해자들이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되던 10년 이전 9세 이하 나이 때도 중증피해자였고, 사망하지 않았어도 건강피해가 중증을 유지하면서 성장해 왔음을 뜻한다”고 했다.


가습기살균제 연령밸 피해 인정자 수.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실제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는 영유아 어린이들의 피해가 컸다.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 사망자 5명 중 1명은 9세 이하 영유아 어린이였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사망피해인정자 1066명 중 9세 이하는 189명(18%)”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 사망이 많은 이유는 생물학적으로 취약한 영유아와 어린이에게 집중적으로 노출되고 독성이 강했기 때문”이라며 “사산, 유산된 태아 사례도 적지 않지만 민법상 사람으로 분류되지 않아 피해자 분류 및 인정이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직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미판정 대기자는 3154명이다. 미판정 대기자들을 각각 제품사용여부(387건), 신속심사 인정기준 여부(1014건)를 확인하는 절차를 기다리고 있고 개별심사대상 사례도 1753건에 해당한다. 보고서는 “개별심사대상 사례 중 사망자가 537건(31%)이나 된다”면서 “피해구제법 개정으로 개별심사 대상으로 분류됐으나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판정기준이 없거나 모호해 미판정 대기자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고 했다.

이런 배경에서 지난 29일, 유족과 시민단체 등은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서 숨진 피해 어린이들을 추모하는 나무 심기 행사를 진행됐다.

또 전체 피해자의 0.8%만이 신고된 점이 지적됐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020년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보고된 건강피해자는 95만명이지만 올해 7월 31일 기준 정부 신고 피해자는 7768명”이라며 “절대 다수인 99.2%는 신고되지 않은 것을 통해 정부와 기업이 피해자를 찾는 노력 및 피해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 환경보건시민센터·서울환경운동연합과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유족들은 이날 오전 11시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피해자 추모행사 및 기자회견을 열고 옥시·애경 제품 불매운동 참여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서울을 포함 포항, 광양, 진주 등 전국 9개 도시에서 함께 진행된다.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여전히 제대로 된 피해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피해인정자의 88.3%(3842명)가 기업 배·보상을 받지 못했다”면서 “피해구제인정을 못받은 미판정자도 3154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4350명의 피해인정자들의 사용 제품 중 옥시와 애경 비중이 각각 53%, 22%로 두 회사의 절대 책임이 확인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러나 두 기업의 거부로 피해지원 조정안이 실행되지 못하고 있어 불매 운동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회 등 시민단체 관계자가 30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박철 전 SK케미칼 부사장 등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 전 부사장 등은 SK케미칼 전신인 유공이 국내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한 당시인 1994년 10∼12월 서울대에 의뢰해 진행한 유해성 실험 결과를 은닉한 혐의를 받아왔다. [연합]

이어 유족 등은 이날 “제2의 참사를 막기 위해 모든 분사형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흡입독성 안전시험이 의문화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책임을 묻는 재판은 11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앞은 상태다. 전날인 30일 서울중앙지법은 유해성 실험 결과를 숨긴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철 SK케미칼 전 부사장 등 임직원 5명에게 징역 6개월에서 2년까지 실형 선고를 내렸다. 이들은 법원 결정에 대해 “너무나 늦었고 미진한 판결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또 SK케미칼·애경 등은 CMIT/MIT 살균성분이 들어간 제품 판매로 인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 재판에 넘겨졌지만 지난해 1월 1심 무죄 선고를 받아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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