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초에 가림막까지...빗물받이 막은 비양심, 수해 피해 키워
2022-09-07 11:10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수도권에 비가 내린 지난 5일 서울 서대문구 한 주택가 인근 빗물받이를 누군가 발판으로 막아놓은 모습(위쪽)과 빗물받이에 쌓인 담배꽁초. 김빛나 기자·헤럴드경제DB

올여름 기록적인 폭우에 이어 태풍 ‘힌남노’까지 대한민국을 강타하며 인적·경제적 피해가 속출했다. 배수시설인 빗물받이를 막은 담배꽁초나 가림막이 수해 피해를 키웠다. 땅에 떨어진 시민의식 개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헤럴드경제가 힌남노 영향으로 전국에 많은 비가 내리던 지난 5일 서울 곳곳을 돌아본 결과, 지난달 수도권 폭우 때 문제가 됐던 빗물받이(배수구)가 여전히 가림막, 쓰레기 등으로 막혀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도권에 시간당 100㎜ 비가 쏟아지던 이날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한 주택가에서는 빗물받이를 누군가 고무매트로 막아놓은 모습이 포착됐다. 물은 빗물받이로 들어가지 못하고 점차 차오르고 있었다. 같은 날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한 식당 앞 빗물받이 역시 카펫으로 막혀 있었다. 빗물받이를 막은 식당 주인은 “냄새가 올라와 손님들이 음식을 먹으러 오다가도 불쾌해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여름에는 영업에 타격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번화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번화가 빗물받이들은 담배꽁초로 가득 차 빗물이 빠지지 않음은 물론, 심각한 악취까지 발생하고 있었다. 영등포구 영등포시장 인근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으며, 힌남노가 지나간 후에도 빗물받이 곳곳에 담배꽁초가 여전히 쌓여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실제 수해지역 곳곳에서 쓰레기에 막힌 빗물받이가 발견돼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지난달 8일 강남역에서는 한 시민이 쓰레기에 막힌 빗물받이를 맨손으로 뚫어 침수를 막은 사례도 있었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는 “그가 쓰레기를 손으로 덜어내자 금세 빗물이 빗물받이로 내려갔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런데도 일부 흡연자는 도심에 쓰레기통이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길에 버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직장인 김모(37) 씨는 “쓰레기통이 설치돼 있다면, 이런 문제가 크게 줄어들지 않겠냐”며 “세계 어디를 가도 쓰레기통이 이렇게 보이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일 것”이라고 토로했다.

반면, 비흡연자들은 흡연자들의 주장은 변명에 불과하다며, 꽁초를 빗물받이에 버리는 건 낮은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정환(39) 씨는 “쓰레기통이 없으면, 휴대용 재떨이를 쓰면 되는 것 아니냐”며 “쓰레기통이 없어 길에다 버린다는 말은 자신행동을 합리화하는 말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마포구에 거주 중인 최설화(31·여) 씨는 “식당 앞에 담배꽁초를 버리라고 쓰레기통을 설치해도 그 옆 배수구는 담배꽁초로 가득 차 있다”며 “쓰레기통이 없어서 담배를 빗물받이에 버린다는 말은 모두 핑계로 대부분의 흡연자가 아무 생각 없이 길에 꽁초를 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의 빗물받이 관리는 허술하기만 하다. 서울에서는 자치구가 관리 주체로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 연 4회 쓰레기 수거하는 수준 외에 관리하고 있지 않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쓰레기가 쌓이는 속도를 따라가기가 어렵다”고 한계를 설명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자체에서 호우 지역만이라도 집중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인력과 예산이 없다면, 정부가 이 기간만이라도 예산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시민들의 의식 개선이 문제 해결을 위한 최우선 과제라는 지적도 있다.

마포소방서 관계자는 “빗물받이가 막히면 침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평상시나 혹은 많은 비가 예보된 때 생활하는 곳 배수구를 한 번쯤 살펴보고 빗물받이를 치우거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등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으로 급작스러운 재난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채상우·김빛나 기자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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