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외국인 대미투자 심사 강화…한국 기업 영향 ‘촉각’
2022-09-16 10:09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육성법 제정에 이어 자국의 핵심기술 보호를 위한 외국인투자 심사를 강화하는 등 자국 이익 우선주의를 노골화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유나이티드 위 스탠드 서밋(United We Stand Summit)’ 도중 연설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빈발한 증오 범죄와 폭력과 맞서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이기 위해 마련했다.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국가 안보 위협을 들어 적대국 뿐 아니라 모든 국가 외국인의 미국 투자 시 심사를 강화하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행정명령이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조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한국을 비롯해 미국에 투자하려는 외국 기업들도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행정명령에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 논란 등을 의식해 이번 조치의 대상이 중국과의 거래로 특정돼 있지 않고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심사 대상이 되는 모든 거래로 규정돼 있어서다.

백악관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외국인 특히 적대국이나 경쟁국가의 외국인이 미국에 투자할 때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이 있을 수 있음을 오래전부터 인식해 왔다”며 “그러한 위협을 식별하고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외국인 투자 심사를 유지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의 국가 안보를 훼손하려는 국가와 개인의 행동을 포함해 국가 안보 환경이 진화하면서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심사 절차도 진화해야한다”며 1975년 CFIUS 설립 이후 처음으로 행정명령을 내린다고 밝혔다.

CFIUS는 외국인의 미국기업 인수합병 등 대미 투자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심사해 안보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기업이 그 문제를 해소한다는 조건으로 승인하거나 거래 자체를 불허할 수 있다.

이번 행정명령은 CFIUS가 외국인 투자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때 핵심 공급망, 첨단기술, 투자 동향, 사이버보안, 미국인의 개인 정보 보호 등 5가지 요인을 고려하라는 지침을 담았다.

백악관은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특정 제조 역량과 서비스, 중요 광물 자원 또는 기술에 대한 소유권과 권리 또는 통제권을 외국인에게 이전하는 외국인 투자는 미국을 향후 중요한 상품 및 서비스의 공급 차질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며 CFIUS가 타당하다고 판단될 때 방위산업 기반 안팎에서 공급망 회복력과 안보에 대한 대상 거래의 영향을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고려사항에는 ▷동맹 또는 파트너 국가에 있는 공급자(회사)를 포함해 공급망 전반에 걸쳐 대체 공급자를 통한 다각화의 정도 ▷미국 정부와의 공급 관계 ▷특정한 공급망에서 외국인에 의한 소유 또는 통제의 집중도 등이 포함된다고 백악관은 덧붙였다.

행정명령은 또 초소형 전자공학과 인공지능(AI), 생명공학 및 바이오제조, 양자 컴퓨팅, 첨단의 청정 에너지, 기후 적응 기술 등 미국의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서 미국의 기술 리더십에 대한 특정 거래의 영향을 검토하도록 했다. 식량 안보와 관련된 농업 기반 요소도 포함된다.

CFIUS는 또 심사대상 거래가 국가안보를 약화시킬 수 있는 미래의 기술 발전과 적용을 초래할 수 있는지, 거래에 관련된 외국인이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을 제기할 있는 제3자와 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백악관은 전했다.

백악관은 산업투자 동향 위험 검토와 관련, “한 분야나 기술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개별적으로 볼 때는 제한적인 위협 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전 거래의 맥락까지 보면 그러한 투자는 핵심 산업에서 민감한 기술 이전을 용이하게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국가안보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이 명백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이버보안 위험에 대해선 “CFIUS는 대상 거래가 사이버 침입 또는 기타 악성 사이버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접근권 등을 외국인이나 그들과 관련된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행정명령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보이지만 한국을 비롯해 외국 기업의 대미 투자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백악관이 공개한 내용을 보면 외국기업에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CFIUS가 앞으로 더 면밀히 들여다볼 것이라는 자체가 심사를 준비하는 기업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또 특히 한국기업에 대해선 ‘제3자와의 관계’(third-party ties)에 해당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세밀하고 주의 깊게 파고들 수도 있다.

워싱턴의 통상 전문가는 “CFIUS가 한국기업만 더 까다롭게 들여다보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기업이 미국 첨단기업을 인수하는 게 전반적으로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기업이 첨단기술 분야 대미 투자를 확대하면서 CFIUS 심사를 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로봇 전문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하고, 양자컴퓨터 스타트업 아이온큐(IonQ)에 투자할 때 CFIUS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SK하이닉스는 인텔의 낸드 사업부를 인수할 때 CFIUS 승인을 받았다.

CFIUS가 발간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작년에 핵심기술 거래 총 184건을 심사했는데 국가별로 보면 독일(16건), 영국(16건), 일본(15건), 한국(13건) 등으로 한국이 네번째로 많았다. 중국도 10건으로 7번째에 들며, 러시아도 5건이다.

다만, CFIUS는 일부 우방에는 좀 더 관대한 편이다.

미국이 중심이 된 군사동맹 및 정보네크워크인 ‘파이브 아이즈’에 속한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은 ‘예외 국가’로 지정해 일부 규정 적용을 면제하고 있다. 한국과 독일, 일본은 ‘예외국가’로 지정돼 있지 않다.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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