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한 푼 안 내는 왕실…국가와 국민에 藥일까 毒일까
2022-09-20 11:11


지난 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관이 운구되고 있다.


영국 런던 켄싱턴궁 정원과 빅토리아 여왕 동상.


윈저성과 윈저공원.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개인 소장품 중 하나인 조지 4세의 다이아몬드 아이아뎀 왕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영국에서 70년 만에 왕위 계승이 이뤄지면서 왕실 재정에도 세간의 관심이 쏠린다. 여왕의 총 재산이 얼마인지, 윈저 가문의 누가 얼마를 상속받을지 등 민감한 ‘돈 문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누구도 왕실의 재산 규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영미권 언론도 영국 재무부와 왕실 재산관리회사의 대차대조표, 그간 나온 왕실 관련서적 등을 참조해 추정할 뿐이다.


▶뮤지컬의 본고장 웨스트엔드부터 해상풍력발전까지 왕실 소유=가디언 최근 보도에 따르면, 윈저 왕가의 주요 수입원은 크게 세 가지다. 왕실 재산관리회사인 ‘크라운 에스테이트(crown estate)’, 랭커스터공국 영지, 콘웰공국 영지가 그것이다. 런던 중심가, 섬 주변의 해저까지 모두 170억파운드(27조3623억원)가 족히 넘는다.

포브스는 지난해 보도에서 크라운에스테이트 스코틀랜드 법인, 켄싱턴궁, 버킹엄궁까지 더해 왕실 재산이 280억달러(37조원)라고 추산했다.

크라운에스테이트는 왕실의 토지와 재산을 관리하는 회사다. 왕실 보유 부동산 자산 대부분을 관리한다. 관리 대상은 런던의 극장밀집지역인 웨스트엔드, 서점가 리젠트가(街) 등 런던시에만 241곳이다. 영국 최대 항구 사우스햄프턴부터 잉글랜드 북부도시 뉴캐슬에까지 다수의 농장, 사무실, 공원 등 다 셀 수 없다.

잉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해저지역도 왕실 소유인데 근래 들어 북해유전과 해상풍력발전 개발이 터지면서 왕실의 자산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자산 포트폴리오에는 대지면적이 64㎢에 이르는 윈저궁 전체와 공원, 유명한 에스코트 경마장도 포함된다. 크라운에스테이트가 지난 6월 공표한 결산보고서를 보면 부동산 자산의 총 가치는 156억파운드(25조1089억원), 부동산을 포함한 순자산액은 165억파운드(26조4034억원)로 평가됐다. 1년 전과 비교해 각각 8% 불어났다. 같은 기간 기준으로 수익은 3억1270만파운드(5033억원)로, 16% 증가했다. 신재생에너지인 해상풍력발전사업 성장과 감염병 대유행 이후 부동산 임대료가 회복한 덕이 컸다.

왕실에 납품하는 버버리, 조니워커 위스키 등 각종 제품에 부여하는 왕실 인증(로열 워런트)사업도 수익에 포함된다. 왕실 인증을 받은 기업과 브랜드는 800곳이 넘는다. 영국 브랜드 가치평가회사인 브랜드파이낸스는 2017년에 왕실 인증이 회사 수익의 10%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추산했다.


영국 왕실 소유 런던 리젠트가.


▶부동산 자산가치 오르자 왕실교부금도 증가=왕실은 크라운에스테이트가 관리하는 자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으며, 회사가 벌어 들인 소득 또한 모두 정부에 귀속된다. 회사관리는 별도 위원회가 하며 왕실은 관여할 수 없다고 회사 사이트에 게재돼 있다.

1760년에 조지 3세 국왕은 부동산 자산의 수입을 정부에 속하도록 하고 대신 왕은 연금 형태로 수입을 받는 협약을 했다. 이것이 왕실교부금(sovereign grant)의 시작이다.

현재도 크라운에스테이트 수익은 국고로 환수된다. 영국 재무부는 이 수익의 15~25%를 왕실 가족의 여행경비, 전기와 가스 등 유틸리티, 궁전관리, 직원 급여 등에 쓸 수 있게 왕실에 교부한다.

2017년 이전까지 여왕은 이 회사 수익의 15%를 받았다. 2017년에 영국 재무부는 버킹엄궁전 보수에 3억7000만파운드(5955억원)를 지원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지급될 왕실교부금 비율을 25%로 높였다.

회계연도 2021~2022년 기준 왕실교부금은 총 8630만파운드(1389억원)였다. 이는 영국인 1인당 1.29파운드(2076원)에 해당한다. 영국 국민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군주제를 유지하는 데 드는 부담이 2000원에 불과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왕실 가족이 이동할 때 드는 경호비용은 왕실교부금이 아닌 국민세금으로 충당한다. 고위 왕족에게는 모든 여행 시에, 그보다 낮은 지위에는 공식 행사 참석 시 경호가 무상으로 제공된다.

여왕의 장장 열흘에 걸친 대규모 장례와 19일 국장에 드는 비용도 정부 예산을 쓰므로 영국 납세자가 부담하는 셈이다.


▶상속세 한 푼 내지 않는 왕실, 소득세도 ‘깜깜’=대부분의 영국인은 평가액 38만달러(5억3100만원) 이상을 상속받으면 40%의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왕실은 다르다. 여왕 재위기간인 1993년에 왕실은 윈저왕조 대대로 물려 내려온 궁전, 영지 등을 후계자에게 상속할 때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될 수 있게 정부와 협약을 맺었다. 부동산뿐 아니라 보석류와 현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찰스 3세를 비롯해 여왕의 네 자녀와 손주와 증손주까지 상속세를 전혀 내지 않는다. 이뿐 아니라 1993년 협약에서 왕실은 소득세, 자본이득세에 대한 납세 의무도 지지 않는다.

다만 공공 목적으로 쓰지 않는 개인 재산에 대해선 소득세와 자본이득세를 내도록 했다.

찰스 3세 국왕도 왕세자 신분일 때 콘웰공국 영지의 개인 수입에 대해선 45%의 소득세를 납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의 연간 납세총액은 한 번도 공개된 일이 없으며, 대중이 이를 감독할 방법도 딱히 없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보도에서 왕실 재정의 이 같은 투명성 결여로 인해 군주제 반대론자들은 왕실을 “권력과 비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공적 기관”으로 부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상원 의원으로 활동하는 프렘 시카 전 셰필드대 경제학 교수는 왕가의 불투명한 사업을 두고 “지난 봉건시대의 잔재”라고 직격했다.

▶왕실은 영국 경제에 플러스(+)…지금까지는=군주제 국가에서 왕실의 존재는 국가와 국민에게 해일까, 이익일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국경을 넘어선 인기 덕에 영국은 국가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주로 관광수입 창출 등 경제적 이득도 얻었다.

가령 2011년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의 결혼식을 보기 위해 유로스타의 런던행 열차 예약이 28% 늘었다.

로이터통신, USA투데이에 따르면 이번 70년 만의 영국 왕실의 장례를 보기 위해 미국인의 런던행 항공편 검색이 지난 8일 서거 발표 직후 한 시간 동안 49% 급증했고, 런던 호텔 예약은 서거 발표 이후 12시간 동안 32% 증가했다.

브랜드파이낸스는 2017년 조사에서 영국 왕실은 관광 부문에서 약 6억4000만달러(8933억원) 이상의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추산했다. 보고서에서 영국 왕실은 미디어산업에 약 7000만달러(977억원)를 기여했다. 브랜드파이낸스는 왕실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경제적 이득은 왕실의 막대한 운영비를 훨씬 초과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는 지난 70년 재위 내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균형을 잃지 않던 여왕 시절 얘기다.

찰스 3세 국왕은 국민적 인기가 높았던 다이애나비와의 불운한 결혼생활과 급한 성미로 왕세자 시절부터 자질 시비에 자주 휩싸였고, 현재 왕위 계승 1순위인 장남 내외(윌리엄-케이트)보다 더 인기가 없다. 그는 지난 9일 첫 대국민 메시지에서 “어머니의 뜻을 이어 받아 평생 영국인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약속했다.

왕실이 국가경제에 계속 기여하도록 하고, 왕실 재정을 탄탄하게 하는 일도 새 국왕이 짊어진 짐이다. 한지숙 기자



jshan@heraldcorp.com



랭킹뉴스


COPYRIGHT ⓒ HERALD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