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밤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테헤란로 인도에 불법 전단지들이 흩뿌려져 있다. 김영철 기자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아이한테서 ‘엄마, 종이에 나오는 사람들은 누구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요.” 서울 강남구에서 유치원생 자녀를 키우는 이모(38·여) 씨는 최근 강남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불법 전단지들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자녀가 유흥업소를 홍보하는 불법 전단지에 대해 질문 공세를 펼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토로했다.
위 사례처럼 룸살롱의 변형 영업방식으로 여성 접객원이 셔츠로 환복하고 손님을 접대하는 이른바 ‘○○룸’을 홍보하는 불법 전단지가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다. 관할 자치구와 경찰이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불법 전단지를 뿌리는 영업장을 단속하지 못해 한계에 부딪치는 실정이다.
지난 4일 밤 강남구 선릉역 4번 출구에서 센터필드 사거리까지 약 400m 거리에는 수십 장의 광고지들이 보였다. 유흥업소 관계자로 보이는 한 남성이 테헤란로 인도에서 오토바이를 몰며 전단지를 살포하기 시작하자 한 복합상가 관리인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건물 입구 주변에 떨어진 전단지들을 치우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에 대해 자치구는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을 꾸려 옥외광고물법과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불법 전단지를 지속적으로 수거하고 단속에 나서고 있다. 경찰도 경범죄처벌법에 의거, 광고물을 무단 부착하면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하고 있다.
강남구청의 경우 현장에서 불법 전단지를 배포한 이를 현장에서 적발할 시, 최소 2만5000원 이상의 과태료를 장당 부과하고 있다. 나아가 불법 전단지 속 휴대전화 번호에 대해 통신사에 정지 요청을 하거나 이른바 ‘폭탄 전화’로 불리는 자동 경고 발신 시스템(AWCS·Auto Warning Call System)을 이용해 해당 번호로 통화가 오갈 수 없도록 조치하고 있다.
지난 4일 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거리에 나뒹굴고 있는 불법 전단지. 김영철 기자
그러나 경찰과 자치구 모두 현장에서 불법 전단지를 배포하는 이들을 현장에서 적발하는 수준에 그쳐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자치구의 경우 전단지를 배포하는 영업장을 단속하는 것은 경찰 수사의 영역이라는 입장이다. 경찰도 불법 전단지에 정확한 상호명이 나와 있지 않아 영업장을 단속하는 방법 역시 어려운 실정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특사경들이 야간에 거리에 나가 불법 전단지를 배포하는 이들을 단속하고 있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달아나는 이들을 잡기 어렵다”며 “전단지에 기재된 번호로도 영업장을 알기 어려워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도 “현장에서 불법 전단지를 배포하는 이들에게 스티커를 발부하고 있다”면서도 “대부분 (전단지에) 전화번호만 있고 상호명이 없어 영업장을 단속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공공장소에서 선정적인 사진과 내용이 담긴 불법 전단지들이 공공장소에 흔히 노출되는 것이 아동·청소년의 정서 발달에 유해하다고 지적했다.
김영심 숭실사이버대 아동학과 교수는 “성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인 영유아들에게 왜곡된 성적 가치관을 생길 수 있다. 가령 전단지 속 여성들의 사진을 보고 ‘여성들은 벗고 노출하는 대상’인가 하는 잘못된 이미지를 아이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성적 호기심이 많은 시기에 놓인 청소년들에 경우 해당 사진을 보고 따라하고 싶은 욕구도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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