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미국 의회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연설하는 도중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 국기에는 러시아의 총공세에 항전 중인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메시지가 담겼다. [AP]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자선이 아니다. 그것은 국제 안보와 민주주의에 대한 투자이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을 깜짝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 의회 연단에 서서 러시아의 침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항전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투쟁임을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승리에 대해 “잠재적 침략자들에게 국경을 넘어서서 누구도 승리할 수 없으며 학살을 자행하고 의지에 반해 지배하려는 자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와 미국의 역사적 운명을 동일시 하기도 했다. 그는 “용맹한 미군은 1944년 크리스마스에 전선을 방어하고 히틀러의 군대를 격퇴한 것처럼 용맹한 우크라이나 군은 이번 크리스마스에 푸틴의 군대를 격퇴하고 있으며 우리는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언급한 1944년 크리스마스 전투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이 프랑스 북동부 아르덴 삼림 지역에서 독일 최후의 대반격을 저지한 ‘벌지 전투’를 가리킨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의 진주만 공습 다음날인 1941년 12월8일 미 의회에 전쟁 선포를 요청하면서 했던 연설을 인용하기도 했다. “미국 국민은 정의로운 힘으로 절대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루즈벨트 전 대통령의 연설문의 구절을 낭독하고는 “우크라이나 국민도 절대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연설을 청취한 미 의원들은 여러 차례 기립 박수와 뜨거운 환호로 답했다. 심지어 “백지수표 식 지원은 지지하지 않겠다”던 공화당 케빈 매카시 하원 원내대표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민주당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우크라이나를 꼭 지원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오늘 연설을 통해 분명히 알아들었으면 좋겠다”며 말했다.
연설을 마치며 그는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에서 러시아의 총 공세에 결사항전 중인 군인들의 메시지가 담긴 우크라이나 국기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에게 건넸다. “군인들이 이 국기를 수백만 명을 살릴 수 있는 결정권을 가진 미 의원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며 이 깃발을 여기에 두고 그런 결정을 내려달라”고 당부했다.
그 즉시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어 보였다. 미 의회가 젤렌스키의 호소에 응답한 것이다.
사실 그의 연설이 전세계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의회 구성원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스스로 주권자인 국민을 지키며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폰 드레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 TV 코미디 스타는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 직후 암살위협을 받았을 때 국외로 탈출할 수도 있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몇달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그런 선택을 했고 아프간 정부는 몇시간 만에 무너졌지만 젤렌스키가 굳게 서 있기로 하면서 300일이 지난 지금도 그와 그의 나라는 여전히 서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역사적 운명에 처한 젤렌스키가 미국의 가치를 구현했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우리 자신의 가치에 대한 투자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젤렌스키의 가치 외교가 미국 정치권과 여론을 설득해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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