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16세 전 교황(가운데) [AFP]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31일(현지시간) 향년 95세로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종신직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난 역대 두 번째 교황이다.

1927년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태어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본명은 요제프 라칭거이다.

그는 5살 때 뮌헨 대주교의 붉은 복장을 처음 본 후부터 가톨릭 성직을 동경하며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대였던 1951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77년 뮌헨 대주교가 됐다.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임명받았다.

이후 약 25년 동안 신앙교리성 장관을 지낸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요한 바오르 2세 뒤를 이어 교황으로 등극했다. 선출 당시 나이는 78세로 클레멘스 12세 이후 275년 만에 나온 최고령 교황이자 여덟 번째 독일인 교황이었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에 선출되기 전부터 교황청 내 보수파의 거두로 손꼽히며 미국 타임지의 ‘세계 100대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AFP]

그는 ‘신의 로트와일러(독일 맹견)’로 불릴 정도로 교회의 전통적 가치 회복을 주창한 인물이다. 대표적으로 요한 바오르 6세 이후 폐지됐던 교황의 의상을 다시 착용하도록 했다.

동성애, 인간 복제, 이혼 등에 반대했고 해방신학, 종교다원주의, 여성 사제 서품 문제에 대해서도 보수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는 에이즈 감염을 막기 위해 콘돔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 의견을 보여 국제 여론이 실망하기도 했다.

‘정통 교리의 수호자’로 불리며 종교적으로는 보수적 신념을 지켰으나 환경 보호, 신자유주의 비판 등 사회 이슈에 대해서는 진보적 입장을 보였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즉위 8년 만인 2013년 2월 건강 문제로 직무 수행을 하기 어렵다며 스스로 사임했다. 이는 종신직으로 교황의 자리를 지키는 전통을 깬 행보였다.

당시 교황의 자진 사임은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의 일로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큰 충격을 줬다.

그런 베네딕토 16세를 향해 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용기 있고 겸손하다”고 말했다.

보수적이며 전통적이었던 베네딕토 16세와 진보적이며 개방적인 프란치스코의 이야기는 2019년 ‘두 교황’이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AFP]

베네딕토 16세는 그로부터 3년 후인 2016년 회고록을 통해 교회를 통치하는 역할이 자신과 맞지 않았다고 돌아보기도 했다. 그는 “실질적인 통치 분야는 나의 강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명백한 취약점이었다”고 했다. 다만 베네딕토 16세는 “8년 동안 주어진 임무를 다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실패했다고 생각진 않는다”고 자평했다.

베네딕토 16세는 뛰어난 예술·어학 능력과 더불어 많은 책을 출간한 신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사제 시절이던 1963년부터 사임한 2013년까지 60권 이상의 책을 냈다.

전임 요한 바오르 2세나 후임 프란치스코 교황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것은 아니지만 역대 교황 중 가장 깊이 있는 신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그는 이탈리아어, 불어, 영어, 스페인어 등 10개 언어를 구사할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와 바흐의 곡을 연주할 수준의 피아노 실력을 가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8일(현지시간)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일반 알현 말미에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매우 아프다고 말하며 그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베네딕토 16세는 2013년 건강상의 이유로 교황직에서 사임했다. 사진은 2016년 6월 28일 베네딕토 16세(오른쪽)가 바티칸에서 열린 그의 사제 서품 65주년 기념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인사하는 모습. [연합]

베네딕토 16세의 보수적 신념이 다른 종교계와의 마찰을 빚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이스람이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무슬림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교황 선출 회의(콘크라베)를 앞두고는 10대 시절 독일 나치의 청년 조직인 ‘히틀러 유겐트’ 가입 전력이 불거져 자지 논란이 발생하기도 있다.

또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를 부인한 가톨릭 주교를 복권해 유대계와의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재임 기간 스캔들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사제들의 성 추문을 비롯해 2012년 베네딕토 16세의 집사 파울로 가브리엘레가 성직자들의 뇌물 비리를 담은 기밀문서를 언론에 공개하며 권위에 타격을 입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