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30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내 4개 지역(루한스크. 도네츠 크, 헤르손, 자포리자) 병합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모스크바 시민이 대형 화면에 나온 푸틴 대통령을 보면서 열광하고 있다. [AFP]
이언 브레머
지난 1월 영국 관료들은 “영국 우정공사에 대한 극적인 사이버 공격이 발견됐고 이 공격으로 국외 우편발송을 담당하는 전산 시스템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들은 곧바로 이 소행의 주체로 러시아 해커들을 지목했다. 그들은 러시아 정부의 지시는 아니더라도 승인을 받아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달 초 한 영국 파생상품 거래사업자가 해킹당한 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사이버 보안당국은 자국과 미국 및 캐나다에서 수천기의 전산 시스템에 대한 랜섬웨어(ransomware) 공격이 있었다고 알렸다.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 러시아의 각종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경고가 늘어나면서 각국 정보당국이 초경계태세를 취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싸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푸틴의 생각은 다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반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벗어나지 않게 조심해왔다. 그러나 이 전략으로 그가 얻은 것은 절망뿐이었다. 이제 푸틴은 비록 훈련 상태는 미흡하지만 새로 동원한 병력에 몇 주 안에 공격 명령을 내릴 준비를 마친 것으로 보이며, 이에 맞서 결연한 의지와 갈수록 더 나은 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의 성과를 제한시킬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우크라이나 동맹국들은 전투용 전차를 보내기로 약속했고, 전투기 지원을 논의하고 있다.
전쟁은 확대되고 있으며, 이달에 ‘전쟁 발발 1주년’이 되는 상황에서 푸틴에게는 쓸 만한 군사적 선택지가 없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도시와 핵심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을 지속하겠지만 이는 푸틴이 약속했던, 그러나 지키지 못한 승리로 다가가는 데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 조치를 해제시키지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나토의 지속적인 군사적 지원을 가까운 미래에 축소시킬 수도 없다.
그러나 러시아가 물러설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푸틴은 수만명에 달하는 러시아 국민의 생명, 러시아 경제의 회복탄력성,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정복하겠다는 그의 개인적 신뢰성마저 희생시켰다.
반면 우크라이나가 진정으로 러시아 침략자들을 패배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어떤 실체적인 양보도 하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가 지난 2014년 첫 전투 당시 러시아에 빼앗겼던 영토까지 수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신빙성 있는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것은 크렘린궁에 크나큰 치욕이다.
이러한 이유들에도 좌절에 빠진 러시아 대통령은 군사적 정면대결만 피할 수 있다면 서방을 상대로 확전하더라도 잃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만약 정면대결이 발생한다면 그는 신속한 완패와 그 자신의 생존을 위협할 핵무기 사용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는 서방의 지도자들 역시 자기만큼이나 핵무기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조치를 망설이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가 자신의 공격 범위를 제한하는 한, 서방의 대응 역시 제한적일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러시아의 위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국내의 강한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푸틴은 러시아가 이미 상실한 군사적·경제적 힘에 의존하기보다는 나토의 결속력에 해를 입히고 그 힘을 약화시키는 비대칭적 전투를 택할 것이다. 향후 몇 달간 러시아는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친한 우방인 이란의 글로벌 버전이 될 것이다. 이란은 제재와 고립 속에서 간첩 행위, 테러 지원, 대리전, 드론 및 미사일 공격 등 자신들의 목적을 추구하고 적들을 약화시킬 수 있는 각종 수단을 동원하며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불량 국가로 오랫동안 행세했다.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더 강력한 수단과 외세에 대한 억제력을 제공하는 핵무기를 보유한 러시아는 더욱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진 문제아가 될 것이다.
러시아의 핵위협은 고조될 것이며, 푸틴의 협박은 더욱더 노골화할 것이다. 그는 전략 핵무기를 우크라이나 국경에 접근시키고 러시아 핵무기의 경계태세를 높이며 세(勢)를 과시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푸틴이 실제로 이 무기들을 사용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것들은 주로 유럽과 미국 유권자들에게 그들 정부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재정적 지원이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고 설득하기 위한 용도다. 그러나 이런 식의 게임은 오판과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위협만으로도 경계태세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최고조에 달할 것이며, 푸틴은 60년 전 니키타 흐루시초프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후퇴하기가 훨씬 더 힘들어질 것이다(푸틴은 흐루시초프가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시킨 지 2년 만에 축출됐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러시아 해커들은 이미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국가들의 정부와 민간 기업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확대했다. 파이프라인, LNG터미널 등의 에너지 기반시설은 사보타주(Sabotage·고의적 파괴행위)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해저 광케이블과 같은 통신 기반시설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허위 정보, 우크라이나에 대한 자국 정부의 지원에 의문을 제기하는 후보자들, 심지어 정치적 과격주의에 대해서도 자금과 지원을 제공하면서 서방의 선거를 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올해 러시아는 민주당뿐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의 공화당 대선 경쟁자들을 상대로도 허위 정보 캠페인을 펼칠 수 있다. 모스크바가 우크라이나로부터 나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술책으로 발칸반도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다행히 러시아의 운신 폭에는 한계가 있다. 크렘린궁은 사이버 전쟁에서까지 패배할 것이 두려워 서방 정부들과 두드러지는 사이버 충돌은 피해왔다.
2023년에도 그러한 태도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관료들은 만약 서양의 주요 기반시설에 대해 러시아 정부 혹은 그와 연결된 사이버집단의 소행임을 쉽게 추적할 수 있는 공격을 가할 경우 자신들에게도 매우 해로운 보복이 뒤따를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서방 지도자의 표적 암살이나 나토 영토에 대한 미사일 또는 드론 타격 역시 이미 전쟁의 심각한 여파로 고전하고 있는 러시아 정부에는 부담스러운 행보다.
그런 러시아의 목표물들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볼 수는 있다. 이란의 도발로 걸프 국가들과 이스라엘, 미국이 더 긴밀해지고, 이란의 러시아 전쟁 지원으로 이란에 대해 미국과 유럽 지도자들이 일관되게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것처럼 전 세계적 문제아 노릇을 하려는 러시아의 시도는 특히 대서양 연안국가들의 결속력을 더욱더 강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하는 한, 미국과 유럽 정책입안자들의 머릿속에는 전 세계 안보, 서양의 정치제도, 사이버공간, 식량안보 그리고 수백만명의 우크라이나 민간인에 대한 러시아의 지속적인 위협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유라시아그룹 및 지제로미디어(GZERO Media) 회장 겸 ‘위기의 힘(The Power of Cris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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