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2월 24일)을 사흘 앞둔 21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주도하는 미국과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 러시아의 세 정상은 전세 주도를 위한 치열한 외교전을 벌였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총력 지원 의지를 재확인하고 나토 동맹국의 단합을 강조했다(왼쪽 사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키이우에서 자국을 방문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회담 및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양국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밝혔다(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에서 국정연설을 갖고 전쟁의 책임을 서방에 전가하면서 미국과 맺은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에 대한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AFP·EPA·로이터]
우크라이나 전쟁이 개전 1주년을 맞으며 종전 기미는 커녕 신냉전 대결 구도가 심화하고 있다. 러시아가 핵 군축협정 중단을 돌연 선언하면서 세계는 다시 핵전쟁 공포에 떨게 됐고,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단결을 호소하며 진영대결을 예고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첫 국정연설에서 “러시아는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 참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러시아가 지난 2010년 체결한 뉴스타트는 양국이 각각 장거리 핵탄두 숫자를 1550개 이하로 제한하고 상호 사찰을 허용하기로 한 조약이다. 조약은 한 차례 연장을 거쳐 2026년 2월까지 유효하지만 추가 연장을 위한 협상은 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이후 중단된 상태다. 양국은 지난해 11월 말 조약 이행을 위한 회의를 열 예정이었으나 러시아가 회의 전날 연기를 통보한 뒤 관련 대화가 재개되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새 유형의 핵무기를 개발 중이고 일부 미국 인사들이 전면적 핵무기 시험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면서 “미국이 핵실험을 할 경우 우리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이번 결정이 조약 탈퇴가 아닌 참여 중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의 핵무기에 대한 통제를 복귀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외무부는 뉴스타트 참여를 중단하더라도 핵탄두 수 제한은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전쟁의 책임을 서방에 떠넘기기도 했다. 그는 “전쟁을 일으킨 것은 서방이고, 이를 억제하려 한 것은 우리였다”고 말했다. 전쟁 직전인 지난 2021년 12월 미국과 NATO에 안전보장과 관련한 러시아의 입장을 전달했으나, 서방이 이를 모두 거절했다는 것을 두고 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그는 “국민 대다수가 돈바스 방어를 위한 우리 작전을 지지한다. 우리를 패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지속하기로 한 결정을 비판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을 다짐했다.
전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후 폴란드로 이동한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후 폴란드 왕궁 정원의 쿠비키 아케이드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우리의 지원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있어선 안 된다”며 “NATO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분열되지도 지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린 NATO의 모든 영토를 수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세계의 민주주의는 오늘, 내일, 그리고 영원히 자유를 수호할 것”이라며 지원이 지속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의 이날 국정연설을 의식한 듯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를 통제하거나 파괴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푸틴이 말한 것처럼 러시아를 공격할 책략을 꾸미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푸틴의 영토와 권력에 대한 비겁한 욕망은 결국 실패할 것”이라며 “러시아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주에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미국과 동맹들이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양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면서 종전에 대한 기대는 사그라들게 됐다. 오히려 러시아가 핵 군축 협정 중단을 선언하면서 지정학적 불확실성은 냉전 시대 수준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윌리엄 알베르크 국제전략연구소(IISS) 책임연구원은 “러시아는 이미 뉴스타트 조약이 유명무실화될 것으로 계산했을 것”이라며 “조약이 붕괴되면 양측은 하루 사이에 배치된 전략 핵탄두를 1550개에서 4000개로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는 인도, 파키스탄, 중국 등 다른 핵보유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제임스 카메론 오슬로원자력프로젝트 연구원은 “조약이 포기된다면 양측은 오로지 추측에 의해서만 상대의 능력과 의도을 판단하는 냉전 시대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면서 “궁극적으로 훨씬 불안정한 상황에 빠지고 핵무기를 사용할 위험성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원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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