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대도 “의대 가려는 학생 많다”…교수들 “인재 유출 걱정”[의대 블랙홀]
2023-02-26 08:27


지난 22일 오후 서울대 관악캠퍼스 공과대학 건물 사이로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영철 기자

[헤럴드경제=김빛나·김영철 기자] “우리 과에서 휴학이나 자퇴하고 다시 의대 가려는 친구들 꽤 많아요. 실제로 도전해서 그만둔 친구는 3명 정도 봤고요.”

지난 2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공과대학 앞. 이날 캠퍼스에서 만난 이 대학 공과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23) 씨는 서울대 내에서도 ‘의과대학 인기’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의대로 재입학하는 친구도 존중한다. 돈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회지 않냐”고 말했다.

서울대 A공학과 교수도 “우수한 인재들이 공대 3대 학과로 불리는 ‘전·화·기(전기전자공학과·화학공학과·기계공학과)’에 몰리던 시대는 끝났다”며 “한때 공대 내에서는 우리나라 산업을 이끈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서 ‘일단 내 소득이 높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인재들이 빠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의대 쏠림 현상을 가장 실감하는 곳은 서울 상위권 대학의 인기 공과대학이다. 의대에 밀리지 않았던 서울 상위권 대학들도 ‘인재 유출’을 실감하고 있었다. 대형 학원에 있는 최상위권반 고등학생·재수생들도 80% 이상 의대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드라마 ‘일타스캔들’처럼 “최상위반=의대반”

[연합]

24일 학원가에 따르면 의대를 가기 위해 재수를 하거나 반수에 도전하는 학생들은 해마다 증가세를 보인다. 익명을 요청한 한 학원가 관계자는 “이공계 최상위권 학생반의 경우 과거에는 20%만 의대를 희망했다”면서도 “지금은 80% 이상이 의대를 원한다"고 말했다. tvN 인기드라마 ‘일타스캔들’에서 나왔듯 학원가에서 ‘최상위권반은 곧 의대반’은 이제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뜻이다.

공과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도 친구들의 의대 도전을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공대 2학년에 재학 중인 나모(21) 씨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사람들에게 인식도 좋다는 점에서 의료계 직종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모든 학생이 의대를 가기 위한 시험에 매달린다고 하면 사회적인 문제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부 공대생은 공대생이 ‘의대생보다 못한 학생’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며 씁쓸해했다. 서강대 공대에 재학 중인 전모(24) 씨는 “아직 늦지 않았다며 의과대학이나 약학대학을 권유하는 친척도 있다”며 “내 학과에 만족하고 있는데 공대생이 무슨 의대 갈 성적이 안 돼서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간 학생들처럼 매도되는 분위기가 싫다”고 말했다.


[헤럴드DB]

“의사가운 입자!” 재수·반수하는 학생들

의대 인기는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학생 이탈로도 이어진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자연계 중도탈락학생 비중은 증가했다. 3개 대학 자연계열 중도탈락자는 2020년 893명, 2021년 1096명으로 처음 1000명을 넘어섰다. 그러다 지난해 1421명을 기록해 3년 동안 총 528명 늘었다. 서울대 자연계열만 보더라도 2020년 174명에서 지난해 275명으로, 3년 새 101명(58.0%) 증가했다. 3개 대학을 포함한 서울 주요 11개 대학으로 범위를 넓혀도 지난해 총 중도탈락자 5518명 중 과반인 2901명이 자연계열 학생이었다.

입시전문가들은 의대 열풍 뒤에는 ‘경기불황’과 ‘학령인구 감소’라는 2가지 사회적 배경이 있다고 지적한다. 경기가 악화돼 안정적인 직장 선호도가 늘었고, 학생들이 줄면서 의대가 ‘0.1% 학생만 가는 곳’이 아니게 됐다는 점에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과거와 달리 상위 3%에 드는 학생도 의대를 노릴 수 있을 정도로 학령인구도 줄고 의대 정원도 늘고 있다”며 “여기에 최근 대학생들의 취업난이 극심해지면서 ‘전문직이 최고’라는 인식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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