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협박에 명의 빌려준 딸…법원 “명의변경 타당”
2023-02-26 09:34


서울행정법원 전경[대법원 제공]

[헤럴드경제=유동현 기자] 아버지의 협박에 사업주 명의를 빌려준 딸이 국민연금 보험료 4900여만원을 대신 부과받자 불복해 낸 소송에서 사실상 승소했다.

서울행정법원 2부(부장 신명희)는 A씨가 국민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국민연금보험료 납부의무 부존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26일 밝혔다. 재판부는 국민연금공단이 사업주 명의를 아버지 B씨로 변경하고 보험료 4900여만원을 B씨에게 부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A씨가 가정폭력을 피하기 위해 명의를 빌려준 점도 인정했다.

A씨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B씨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고, 어머니·언니와 함께 다른 지역에 피신하며 살았다. 2007년 어머니가 이혼한 후로는 줄곧 어머니와 살았다. 그러다 2015년 B씨는 A씨를 찾아가 자신이 운영할 철구조물 제조업체 사업주로 이름을 올릴 것을 요구했다. A씨는 가정폭력이 심해질까 두려워 명의를 빌려줬다. B씨는 2015~2016년 A씨 명의로 사업을 하면서 A씨 앞으로 부과된 부가가치세 5609만원, 국민연금 4910만원을 미납했다. 이후 2016년 10월 사업장가입자 자격이 상실됐고, B씨는 2021년 4월 숨졌다.

A씨 세금과 보험료가 자신이 부담할 돈이 아니라며 국세청에 실제 사업주는 B씨라고 소명했다. 국세청은 2020년 2월 부가가치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했고, A씨는 국민연금공단에 사업주를 B씨로 바꿔달라고 신청했다. 국민연금공단은 국세청 결정이 있던 2020년 2월자로 사업주 명의를 바꿨다. 대신 이전시기까지 소급 변경은 불가능하다고 통지했자. 2015~2016년 미납한 국민연금 납부가 그대로 유지된 A씨는 불복해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사업주 변경을 처음 사업자 신고가 이뤄졌던 2015년 9월로 소급해야한다고 판단했다. 국세청이 이미 부가가치세 취소를 결정했던 점을 고려해 “법원 판결이나 행정심판 등 쟁송과정을 통해 당초부터 실제 사업주가 명백히 밝혀진 경우, 그 내용을 반영해 사업주를 소급 변경처리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다만 공단의 보험료 부과 처분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공단에 허위 신고 여부를 가릴 능력이나 권한이 없었으므로 부과 처분 자체가 잘못은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사업장 임금 체불 관련 진정 17건 가운데 13건의 상대방이 B씨로 돼 있고 원고는 사업장 신고(소재지 강원 동해) 당시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이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사업장을 실제 운영한 사람은 원고가 아닌 B씨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B씨로부터 폭행을 당할 것이 두려워 명의를 대여했던 점도 인정된다”고도 했다.



dingd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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