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이 0.7명대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꼴찌이자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부는 16년간 약 280조원의 저출생 대응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출생아 수는 20년 전의 반 토막인 25만명 수준으로 곤두박질했다. 사진은 2019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신생아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역대 최저인 0.78명으로 주저앉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정부는 지난 16년간 약 280조원의 저출산 대응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출생아 수가 10년 전 절반 수준인 25만명 아래로 떨어지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여론이 높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 지출한 예산의 액수는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 미국 등 다른 주요국과 비교하면 오히려 턱없이 적은 금액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은 출산율 반등에 성공했다고 알려진 프랑스(31.0%), 독일(25.9%)의 절반 이하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저출산대책 예산이 실제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 사용되기보다는 엉뚱한 곳에 쓰였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 지난해 저출산대책 예산의 용처에는 청년의 자산형성을 돕는 내일채움공제사업이나 디지털 분야 미래형 실무인재 양성사업, 심지어는 첨단 무기 도입으로 군사력을 보강하는 것까지 포함됐다.
▶저출산예산 280조원, 많다고?=10일 OECD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가별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을 보면 우리나라는 12.2%에 불과하다. 1990년 2.6%에서 2019년 12.2%로, 그나마 증가했지만 OECD 평균(20.0%)의 절반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다. 해당 지출액이 우리보다 낮은 OECD 회원국은 전체 38개국 중 튀르키예(12.0%), 칠레(11.4%), 멕시코(7.5%)뿐이다.
특히 GDP 중 가족 관련 지출 비중의 경우 한국은 2018년 기준 1.2%로, 프랑스(2.9%)의 절반 이하이며 독일(2.3%)의 절반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면 해당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소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정책기획단장은 “정부가 인구 변화에 대응해 2006~2021년 280조원의 재정을 투입했으나 저출산 추세를 반전하는 데 실패했다”며 “인구정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선 더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저출산 현상은 1970년 합계출산율이 4.5명에서 인구 대체 수준인 2.1명으로 떨어진 1983년 이후 약 40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하기 시작한 건 출산율이 1.1명까지 낮아진 2005년부터다.
반면 우리보다 앞서 1960년대 2.0명 이하로 떨어진 유럽 국가들은 저출산대책에 효과를 보고 있다. 2021년 기준 합계출산율 1.8명으로, 유럽연합(EU) 합계출산율 1.47명(2020년 기준)을 웃도는 프랑스의 경우 GDP 대비 31.0%의 재정을 공공사회복지지출에 쏟아붓고 있다. 1989년 출산율 1.57명을 기록한 이후 1994년부터 이른바 ‘에인절플랜’을 시행한 일본도 GDP 대비 22.3%를 공공사회복지지출에 쓴다. 2021년 기준 일본 출산율은 1.3명으로, 우리보다 높다.
▶무늬만 ‘저출산 예산’ 넘친다=저출산대책예산의 절대액이 주요국과 비교해 적은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무늬만’ 저출산예산이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가 저출산대책과 큰 상관 없는 사업들까지 저출산예산에 마구잡이로 집어넣어 예산만 늘었을 뿐 실속 있는 저출산대책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저출산대책예산에 포함된 ‘그린스마트스쿨 조성’사업의 경우 1조8293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해당 사업은 낙후지역 학교를 리모델링하는 사업이다. 정부 역점사업이란 이유로 예비타당성 조사마저 면제했다. 낙후지역 학교 리모델링이 출산율 제고에 얼마나 보탬이 됐는지 알 수 없지만 사업 효과도 따지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예산은 더 있다. 청년 자산형성을 돕는 내일채움공 사업에도 1조3098억원의 예산이 들어갔지만 이 역시 출산율 제고와 정비례한다고 보기 어렵다. 아동, 부모와 직접 관련이 없는 ‘청년 대책’이란 점에서다. 3248억원이 들어간 디지털 분야 미래형 실무 인재 양성사업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첨단 무기 도입을 통해 예산(987억원)조차도 저출산예산에 포함됐다. 저출산·고령화로 군 입대 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첨단 무기를 늘려야 한다는 게 해당 예산이 저출산대책에 포함된 이유다. 이러다 보니 2006년 2조1445억원이던 저출산 대응예산의 규모는 2021년 46조6846억원까지 늘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탓에 인구정책을 둘러싼 느슨한 거버넌스 구조가 오히려 이런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현재 저출산 대응 등 정부의 인구 관련 거버넌스의 틀은 보건복지부가 인구정책의 주무부처를 맡고 대통령이 위원장인 저고위가 전체 정부 부처를 총괄하는 형태다. 그러나 저고위에 집행권과 예산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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