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롤컴퍼니 제과 제조 공정. 달롤컴퍼니 전 제조 시설은 글루텐프리 국제 인증 'GFFP'를 국내 최초로 획득했다. 달롤컴퍼니 제공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78kg'
체중계 바늘이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숫자를 가르켰다.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생크림빵', '초코몽블랑', '커스터드', '고로케'...
국내 유명 베이커리회사 상품기획팀에 입사 한 후부터 먹었던 수백여 종의 빵들이 머리 속을 훑고 지나갔다. 일 때문에 먹은 빵만 3000개는 족히 넘을 듯 했다. 많이 먹는 날은 하루에도 40개가 넘는 빵을 해치우곤 했다.
덕분에 회사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건강은 날로 악화됐다.
[게티이미지뱅크]
"박 대리,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 무슨 일 있어?"
그날 점심. 같은 팀 선배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요즘 살도 너무 찌고, 밥만 먹으면 속도 더부룩하고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요."
대답을 들은 선배의 표정은 금세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바뀌었다.
"박 대리,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지?"
"1년 정도요."
"그거 직업병이야."
"네?"
담담한 표정으로 '진단'을 내린 선배가 말을 이었다.
"여기서 일하면 그냥 감기처럼 달고 사는거야. 기획팀 사람들 그런 거 안 겪는 사람 없을걸?"
선배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걱정은 더 쌓였다. 얼마 후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한 결과에 놀라고 말았다. 콜레스테롤, 혈당 수치 전부 높아 대사증후군 위험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20대 후반밖에 안됐는데, 이러다 제명에 못살겠네..."
좋은 직장도 중요했지만, 건강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빵'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 그럼, 먹어도 건강할 수 있는 빵을 만들면 되잖아?'
번뜩 떠오른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각고의 준비 끝에 2017년 매물로 나온 '달롤컴퍼니'라는 회사를 인수했다. 국내 최초 '글루텐프리' 베이커리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박기범 달롤컴퍼니 대표가 국내 최초 공식 인증된 글루텐프리 빵 브랜드 '제로밀' 시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채상우 기자
달롤컴퍼니의 박기범 대표 이야기다.
'글루텐'이란 호밀·밀 등에 들어있는 불용성 단백질 혼합물이다. 일부 사람에게 알러지 반응 및 소화불량 등 부작용을 일으킨다. 또, 빵을 쫄깃하게 만들고 구웠을 때 부풀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이 때문에 현재 국내에서 판매하는 글루텐프리 베이커리는 부풀거나 쫄깃할 필요가 없는 케이크와 쿠키 등 제과류가 전부다.
지난 18일 경기도 김포시 달롤컴퍼니 본사에서 만난 박 대표는 "글루텐과 설탕을 빼고, 저칼로리 고단백질 빵으로 당뇨 환자, 다이어터도 먹을 수 있는 건강빵을 만들고 있다"며 "저희의 목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빵을 글루텐프리로 구현하는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박기범 달롤컴퍼니 대표. 채상우 기자
박 대표의 이같은 비전은 순항 중이다.
오는 5월에 국내 최초 글루텐프리 빵 브랜드 '제로밀'을 출시한다. 내년에는 당뇨 환자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무설탕·고단백·저칼로리 빵을 출시할 예정이다.
[달롤컴퍼니 제공]
내달 출시하는 '제로밀'은 공식 인정된 최초의 한국 최초 글루텐프리 빵이다. 국내 베이커리 업체 중 유일하게 달롤컴퍼니만이 전 제조 시설에 글루텐프리 국제 인증 'GFFP(Gluten Free Food Program)'를 획득했다.
달롤컴퍼니 역시 여느 국내 업체처럼 글루텐프리 '제과류'만 생산했지만, 이번에 특허받은 쌀 공정 기술 등으로 글루텐을 넣지 않고 '빵'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달롤컴퍼니에서 5월 런칭하는 국내 최초 글루텐프리 빵 브랜드 '제로밀' 제품들. 달롤컴퍼니 제공
"글루텐프리빵 맛의 척도는 밀가루빵을 얼마나 똑같이 재현했느냐입니다. 밀가루빵을 넘어서기는 힘들지만 최대한 100%에 가깝게 재현하면 성공인 셈이죠. 이건 전세계 글루텐프리 베이커리의 지향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글루텐프리 빵맛은 과연 어떤 맛일까.
기자가 직접 글루텐프리 식빵 시제품을 맛봤다. 일단 밀가루로 만든 식빵보다 밀도있는 단면이 눈에 들어온다. 확실히 무게감도 있었다. 찢어지는 질감이 아니라 파운드 케이크와 식빵의 중간 정도의 단단한 질감이었다. 옅지만 고소한 곡물냄새가 났다. 식감 역시 묵직하게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맛은 향이 옅고 담백함이 강했다.
"에어프라이로 구워 드시면 훨씬 맛있어요."
달롤컴퍼니 이사의 추천이 맞았다. 에어프라이로 3분 정도 구우니 풍미가 확 살아났다. 조직감 역시 훨씬 촉촉해졌다. 쫀득한 식감이었고. 빵이 가진 맛은 옅었지만, 특유의 쫀쫀하고 묵직한 식감에 다양한 요리로 활용하면, 훌륭한 식재료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달롤컴퍼니의 글루텐프리 휘낭시에. 달롤컴퍼니 제공
달롤컴퍼니의 휘낭시에도 맛을 봤다. 예민한 입맛이 아니라면, 밀가루빵과 구별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90% 가깝게 재현했다. 촉촉하고 묵직한 질감에 달콤함까지 더해 어디 내놔도 맛있는 케이크로 손색 없었다. 무엇보다 맛이 있었다.
맛이 통해서일까. 올해 1월 GS편의점에 납품한 글루텐프리 롤케이크는 4달 만에 판매량 22만개를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달롤컴퍼니 제공]
"앞으로 글루텐프리 베이커리는 일부의 기호식품이 아닌 대중이 찾는 베이커리의 한 축이 될 것입니다."
국내 베이커리시장은 약 4조3000억원. 이 중 글루텐프리 베이커리가 차지하는 규모는 500억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글루텐프리 베이커리 시장이 이제 4년 된 태동기인 만큼,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와 관련된 소비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도 글루텐프리 베이커리를 먹이면서 시장은 급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업계는 향후 10년 내 국내 글루텐프리 베이커리 시장이 약 1조원으로 성장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달롤컴퍼니의 베스트셀러 롤케이크. GS편의점에서 4개월 만에 22만개가 팔렸다. [달롤컴퍼니 제공]
이를 위해 박 대표는 판매 채널 확대에도 힘을 싣고 있다. 달롤컴퍼니 제품 유통망을 자사몰에서 GS편의점, 롯데백화점, 마켓컬리, 쿠팡 등 유력 플랫폼으로 확대했다. 또 풀무원, 삼성웰스토리와 계약을 맺고 OEM 생산도 계획 중이다.
달롤컴퍼니는 지난해 3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새 브랜드 론칭과 함께 수요 증가, 판매 채널 확대 등으로 120억원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투자 유치도 활발해 이미 지난해 2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받은 데 이어 수십억원 규모의 시리즈A2 투자 유치도 진행 중이다.
해외 진출도 가시화됐다. 박 대표는 "미국 유통사와 계약을 맺고 내년부터 H마트 등 한인마트를 중심으로 수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후에는 코스트코 등 미국 메이저 유통시장으로도 판로를 개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달롤컴퍼니의 치즈케이크.
박 대표는 "미국의 글루텐프리 베이커리류는 대부분 수수 등 쌀이 아닌 다른 곡물을 이용해 만들지만, 최근 미국에서도 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달롤컴퍼니의 제품이 경쟁력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