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 100개 파느니 비싼 거 10개”..현직 소아과 의사가 직종 변경하는 이유
2023-05-09 09:23


소아청소년과 진료 모습. [헤럴드DB]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소아청소년과(소청과) 개원의 단체가 폐과를 선언해 논란이 된 가운데 현직 소청과 의사가 폐과를 하는 세가지 이유를 밝혀 눈길을 끈다.

지난 7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소아과 전문의야. 넋두리 한 번만 해도 될까’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30대 소청과 전문의라고 밝힌 글쓴이 A씨는 ‘요즘 소아과 새벽6시 오픈런, 대기 50명이고 환자 터지던데? 떼돈 벌겠던데 뭔 소리임?’이란 댓글을 보고 소아과 문제와 관련한 글을 작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A씨는 소아과 폐과가 잇따르는 원인으로 세가지를 들었다. 먼저 기본 진료비(수가)가 너무 낮다고 그는 지적했다. A씨는 "하루에 100~150명을 진료해도 한 명당 받을 수 있는 돈이 너무 적다"며 "소아나 성인이나 기본 진료비(수가)는 같지만, 성인들은 검사가 많이 붙어서 진료비만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난 3월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회관에서 열린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에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

이어 "직장인 연봉과 비교하면 여전히 잘 번다. 하지만 비슷한 그룹인 타과 의사들과 비교하면 소아과 선택한 내가 죄인일 정도로 회의감이 많이 든다"며 "누가 칼 들고 소청과 가라고 협박한 건 아니다. 아이들이 좋아서 선택했다. 하지만 눈앞에 좀 더 쉬운 길이 있지 않냐"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껌 100개 팔아서 마진 1만원 남기느니, 비싼 거 10개 팔고 같은 마진을 남기는 방향으로 의사들이 미용·통증으로 자유롭게 직종 변경하겠다는 거다”고 설명했다.

A씨는 두 번째 이유로 "소아 진료는 힘들다"고 토로했다. A씨는 "소아는 아픔을 표현할 수 없다. 제3자인 보호자와 소통하고 자세한 진찰을 통해 병을 파악해야 한다"며 "하지만 아이들은 의사를 무서워한다. 울면서 날 걷어찬다. 4~5살 애들은 힘도 쎄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애들은 죄가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체력은 닳는다. 가끔 중학생이 오면 너무 고맙다"며 "우는 애를 달래는 비타민과 딸랑이와 그 모든 용역에 대한 댓가는 0원이다. 똑같은 4분 진료여도 소아 15명보다 성인 15명이 훨씬 덜 힘들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는 아이 보호자의 태도를 꼬집었다. A씨는 "내 새끼 귀하지만 (병원에서) 그릇된 부성애와 모성애가 자주 나타난다"며 "이상한 타이밍에 급발진하는 부모들을 다독이고 나면 다음 아이를 진료할 때 힘이 너무 빠진다"고 했다.

또 그는 "잘못된 부성애와 모성애의 발현에 맘카페, 사실관계 확인 없는 감정적 공분까지 3박자로 몇 달 안에 밥줄 끊어지는 의사들 자주 봤다"고 했다.

A씨는 이러한 이유를 들어 단과 높은 비급여진료를 할 수 있는 타과로 직종을 변경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대한청소년과의사회는 지난 3월에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을 열어 저출산, 낮은 수가, 지속적인 수입 감소 등을 이유로 더 이상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며 '폐과'를 선언했다.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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