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공유된 중국의 한 ‘지방미술대학 본과 졸업전’ 포스팅 이미지. 독일 추상회화의 대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업이 연상된다. 작품은 물론 학생 사진, 이름 모두 미드저니와 챗GPT에 의해 생성됐다. [지방미술대학 본과 졸업전 포스팅 캡처]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지난 5월 26일 중국의 한 ‘지방미술대학 본과 졸업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공유됐다. 유화과, 조각과, 판화과, 실험미술대학, 인문대학 등 세부 전공으로 나뉘어 게시한 자료는 학생 작가와 그들의 작업 사진이 짧은 설명과 함께 포스팅됐다.
작품 중에는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잘 알려진 거장들의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한 것들도 있었으나, 전반적 완성도가 높아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반전은 포스팅의 마지막에 있었다. “이 글의 모든 학생 사진, 작품 사진, 이름, 작품 이름 및 설명은 미드저니(Midjourney)와 챗GPT(ChatGPT)에 의해 생성되며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텍스트를 입력하면 이미지가 탄생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입력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이 명령어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조합해 선보인다. 문제는 이제 그 결과물이 인간 전문가의 그것과 유사한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데 있다.
위에서 예시로 든 ‘지방미술대학 본과 졸업전’에 앞서 지난해 8월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에서 열린 한 미술대회에선 AI가 만든 그림(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 1위를 하기도 했다. 사실이 밝혀지자 ‘예술은 죽었다’는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공유된 중국의 한 ‘지방미술대학 본과 졸업전’ 포스팅 이미지. 화려한 배경을 바탕에 두고 흑인 인물화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키힌데 와일리의 작품이 연상된다. 작품은 물론 학생 사진, 이름 모두 미드저니와 챗GPT에 의해 생성됐다 [지방미술대학 본과 졸업전 포스팅 캡처]
발터 벤야민이 지적한 ‘아우라의 몰락’은 AI시대에도 유효하다. 그러나 그보다 현실적 문제가 있다. AI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참고하는 데이터가 인간의 창작물이라는 점이다.
지난 1월 미국에서는 일러스트레이터와 작가 3인이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에 AI 아트 제너레이터사인 미드저니, 데비안아트(DeviantArt), 스테이블 디퓨전의 제작사인 스테빌리티 A.I를 고발했다. AI 아트 제너레이터가 학습할 때 자신들이 만든 창작물을 동의 없이 사용했다는 것이 소송의 주요 내용이다. AI 아트 제너레이터가 이미지를 학습할 때 사용하는 데이터 세트의 47%가 셔터스톡, 게티이미지 같은 사진 사이트 및 핀터레스트, 플리커, 텀블러 같은 사용자 생성 콘텐츠를 사용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 재판 결과에 따라 AI 아트 제너레이트의 판도가 바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세계 최대 이미지 사이트인 게티이미지도 스테빌리티 A.I와 소송 중이다. 게티이미지는 스테빌리티 A.I가 허가 없이 게티이미지 데이터베이스에서 1200만개 이상의 이미지를 사용해 저작권과 상표권을 모두 침해했다며 미국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고소했다. 스테빌리티 A.I 측은 공정 사용을 주장하는 등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소송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티이미지]
그렇다면 AI 아트 제너레이터가 생성한 이미지는 과연 누구의 것일까? 미국 법원은 AI 생성 콘텐츠의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 2월 미국 저작권청(USCO)은 미드저니로 제작된 만화(그래픽 노블)의 이미지에 대해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 이미지를 선택하고, 이에 맞는 글을 쓰고, 적절한 배치를 한 그래픽 노블작가 카슈타노바의 행동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인정한다고 했다.
이미지 자체는 저작권이 없지만 이를 바탕으로 2차 창작물을 만든다면 그에 대해서는 인정한다는 뜻이다. 맥스 실스 미드저니 법무 자문위원은 이 결정에 대해 “카슈타노바와 미드저니, 예술가들에게 위대한 승리”라며 “USCO의 결정은 예술가가 미드저니 같은 이미지 생성 도구를 창의적으로 통제한다면 그 결과를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평가했다.
2022년 8월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에서 열린 한 미술대회에 신인 디지털 아티스트 부문 1위를 차지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게임 디자이너인 제이슨 앨런이 AI 아트 제너레이터인 미드저니를 이용해 만들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AI 관련 저작권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법·제도는커녕 논의 자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저작권법은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저작자’는 저작물 창작자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즉 현행법상 저작권은 인격권을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아닌 AI가 만든 창작물은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 없다.
법·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정부와 정치권은 최근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는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월 ‘AI 저작권법 제도개선 워킹그룹’을 발족하고 9월까지 저작권법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콘텐츠산업 진흥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앞서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20년 AI 저작물과 저작자의 정의를 신설하는 내용의 저작권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 상임위원회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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