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마저 떠난 권도형, 새 변호사는 사건 파악도 못 해
2023-06-17 09:22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위조 여권 사건에 대한 재판을 받기 위해 16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이영기 기자]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의 위조 여권 사건 재판이 열린 16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에는 처음 보는 변호사 2명이 법정에 들어왔다. 사건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은 듯한 장면도 연출됐다.

권 대표와 그의 측근 한모 씨가 지난 3월 23일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코스타리카 위조 여권을 갖고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행 전세기에 탑승하려다 체포된 이후 줄곧 이들을 대리했던 브란코 안젤리치 변호사는 지난 8일 돌연 사임했다.

고란 로디치, 마리아 라둘로비치 변호사는 사건을 급하게 수임한 듯 이바나 베치치 판사에게 어떤 사안인지 파악할 수 있도록 의뢰인들과 대화할 수 있게 15분만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두 변호사가 5분 지각한 터에 이들이 베치치 판사의 허락을 얻어 권 대표 등과 함께 15분간 퇴정하면서 결국 재판은 예정된 낮 12시에서 20분 지체된 낮 12시 20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권 대표는 새 변호사들에게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거의 혼자서 변론에 나섰다. 그는 친구의 추천으로 싱가포르에 있는 에이전시를 통해 코스타리카 여권을 취득했다고 설명했다.

권 대표는 여권이 위조됐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신뢰할 만한 친구가 추천해 준 에이전시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코스타리카 여권으로 전 세계를 여행했다면서 몬테네그로 국경을 통과할 때도 이 여권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만약 위조 여권인 줄 알았다면 포드고리차 공항에 전세기를 대기시켜놓고 코스타리카 여권을 공항에 제출했겠느냐고 반문한 뒤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항변했다.

권 대표는 이날 흰색 반소매 티셔츠, 검은색 바지를 입었고, 삭발한 모습이었다.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체포 당시 사용했던 여권이 위조된 게 아니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베치치 판사가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자리에 앉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권 대표는 추가로 할 말이 더 있다며 착석을 거부했다. 그는 여권을 취득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으며, 에이전시를 통해서 여권을 받는 건 흔하게 사용되는 방식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뒤에야 자리에 앉았다.

몬테네그로 현지법에 따르면 위조 여권 혐의가 유죄로 확정될 경우 최저 3개월에서 최고 5년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권 대표는 유죄 판결이 나더라도 그 정상을 참작해 형을 감경받을 수 있도록 이 같은 주장을 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권 대표는 베치치 판사가 해당 에이전시의 명칭을 묻자 "중국말로 돼 있었는데,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며 얼버무렸다. 그는 "압수된 노트북 메일함에 에이전시 이름이 있다"며 "노트북을 확인하면 된다"고 부연했다.

그는 실명과 진짜 생년월일이 기재된 코스타리카 여권과는 달리 또 다른 여권인 벨기에 여권은 가명과 가짜 생년월일이 적힌 것에 대해서는 "벨기에 당국이 실수로 잘못 적은 것"이라며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갖고 있었다"고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을 내놨다.

권 대표는 한씨에 대한 선처도 호소했다. 권 대표는 한씨는 "죄가 없다"며 "위조 여권으로 처벌을 받게 되면 나만 받게 해달라"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3월 23일 체포된 이후 포드고리차 외곽에 있는 스푸즈 구치소에서 3개월 가까이 지내고 있다. 지난달 보석을 신청했지만 상급 법원인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범죄인 인도 재판을 위한 신병 확보를 이유로 6개월 구금 연장을 결정했다.

권 대표는 낯선 이국땅에서의 긴 수감 생활에 지친 탓인지 코스타리카·벨기에 여권 재조사 신청을 하지 않았다. 로디치 변호사는 이에 대해 "의뢰인들은 여권을 적법하게 취득했다고 확신하지만, 재판이 길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씨는 "인터폴에서 이미 위조 여권이라는 게 확인이 됐다면 이 재판을 빨리 끝내고 싶다"며 울먹였다.

권 대표 역시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최후 변론에서 베치치 판사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그는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 힘들다"며 "한씨와 같은 방을 쓰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베치치 판사는 이에 대해 이번 재판에서 다툴 문제가 아니라며 왜 함께 방을 쓰면 안되는지는 변호사에게 설명을 들으라고 잘라서 거절했다.

1시간 반 정도 이어진 이번 재판은 몬테네그로어로 진행됐다. 권 대표 등은 셀만 아조비치라는 이름의 통역사를 통해 영어로 자기 뜻을 전달했다. 권 대표는 지난달 11일 첫 재판 때와 마찬가지로 판사에게 말할 때는 "유어 아너(Your Honor·존경하는 재판장님)"라는 말을 꼭 붙였다.

베치치 판사는 이번 사건에 대한 판결을 19일 오후 2시에 내리겠다고 예고했다.



20ki@heraldcorp.com



랭킹뉴스


COPYRIGHT ⓒ HERALD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