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엔데믹 후 곧장 한국 온 재미 피아니스트 이인현 “저만의 클래식 또 준비해야죠”
2023-06-19 13:09


엔데믹후 잠시 귀국한 재미 피아니스트 이인현. 상상력을 접목한 클래식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을 알리고, 편안한 음악 장르 중 하나로서의 클래식 전파에 힘을 쓰고 있는 그는 “보다 많은 이들에게 클래식음악을 덜 지루하고 편안하게 느끼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 2년전, 편집국장때 일이다. 지인인 출판사 모 사장을 만났는데, 책을 한권 건네준다. “읽어봐, 이번에 낸 책인데…. 클래식을 재해석 했는데 아주 유능한 친구인 것 같아.” 책 제목이 ‘클래식 클라스’였다. 저자는 이인현이었고, 피아니스트란다. 돌아와 책상에서 틈틈이 읽으니 참 괜찮다는 느낌이 든다. 클래식을 아주 편안하게 접근했다. 클래식은 폼나는 교양의 도구가 아니라, 그저 일상의 행복과 함께 하는 편한 음악이라는 게 주제였던 것 같다. 좋은 책 같아 서평을 게재했고, 그리고 그것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해졌다.

2년뒤 어느날 이인현이라는 사람과 우연히 연락이 됐고, 그는 회사에 찾아 왔고, 재회했다. 한번 책으로 만났으니, 두번째는 대면으로 재회한 셈이다. 대화를 하다보니 이인현(39·이후 피아니스트로 칭함) 씨는 어릴적 부터 천재성이 있었던 재미 피아니스트였고, 저자이자 칼럼니스트(그는 남도일보 월요아침을 통해 칼럼을 게재 중이다)로 활동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몇분 대화하면 그 사람을 척하고 알게되는 법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도 열정이지만, 자신의 삶을 계속 칼럼으로 쏟아내는 정열이 엿보이면서 “참으로 부지런히 사는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미국에 사는데 코로나가 끝나자마자 한국에 왔어요. 한국에서 저만의 클래식을 또 준비하려고 해요. 클래식은 어려운 게 아니고, 상상력을 갖고 들여다보면 쉬운 우리 삶의 친구(?)라는 것을 계속 입증하고 싶어요.”

무슨 말일까. 아, 그러고보니 생각난다. 그 책 말이다. 클래식 클라스(Classic Class·2021·북오션출판사) 한 구절이 떠오른다. 다음은 책의 일부 내용이다.

한 친구가 말했단다. “클래식은 지루하고 어려워. 사실 다들 교양때문에, 교양 있는 척 하려고 듣는 게 아닐까.” 사교에 도움이 되고, 지식의 무게를 자랑하기 위해 지루함을 참고 듣는게 클래식이라는 게 그 친구 말의 뜻이었다.

이 피아니스트가 웃으며 대답했단다. “드뷔시라는 프랑스 작곡가가 만든 ‘물의 희롱’이라는 곡이 있어. 그냥 상상하면서 들어봐. 너는 지금 잔잔한 호수에 혼자 있어. 저녁인데 바람이 살짝 부는 거지. 바람 때문에 나무들이 조금씩 흔들리고, 물도 조금씩 출렁거리고 있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 온 하늘을 수놓은 별들은 은은한 광채를 내고 선명한 달은 너를 환하게 비추고 있어. 차갑지만 선선한 공기가 너를 감싸고, 복잡하고 어지러운 생각들은 점점 자리를 찾아가.”

이후 그 친구가 무릎을 탁 치더란다. “네 말대로 상상을 하며 귀로 들었는데, 아 정말 그게 느껴져. 클래식이 내게 다가오더라구.”

이 피아니스트와의 재회에서 그는 작가의 인생이나 작품 요소, 그것을 둘러싼 거대한 시대적 배경 등에 굳이 연연하지 않고 느끼는대로, 상상하는대로, 오감을 자극하는대로 그냥 받아들이는 클래식이 대중에게 전파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걸 위해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살겠단다. 이 책이 제1회 우수 오디오북 콘텐츠 제작지원사업(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선정작으로 뽑힌 것도, 아마 친근한 클래식의 재해석이라는 점이 어필했으리라.

불혹을 앞두고 현재까지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일관된 인생 계획표를 짜고 싶다는 이 재미 피아니스트. 그는 어떻게 살았고,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헤럴드경제는 19일 이 피아니스트의 인생 여정과 음악가로서의 소망 등의 추가 질문을 통해 인터뷰 기사로 정리했다.

■ 끼 많은 어린이 이인현=이 피아니스트는 어린시절 끼가 매우 많은 아이였다고 한다. “놀이공원 댄스대회에 나가서 파이널까지 가 보기도 했어요.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피아노와의 만남 역시 어린시절 이뤄졌다. 어느날 앞집 언니를 따라 피아노학원을 갔고, 그게 피아노와의 첫 만남이었다. 7살때 우연히 피아노 대회에서 나갔는데 긴장하지 않고 숨겨져있는 끼를 발산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큰 상을 받았단다. “그 이후 선생님이나 부모님께서 제가 음악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꿈이 피아니스트가 됐던 것 같습니다.”

11살 나이로 오디션에 발탁돼 광주시립교향악단(지휘:니콜라이 디아디오우라)과 협연도 했다. 어린 시절엔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법. 피아노를 손에 놓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그렇듯 사춘기를 지나면서 많은 고민을 했고, 다른 일에 대한 바람도 가져봤다고 한다. 하지만 피아노로 마음을 정착시켰다. “결국 음악은 나와 운명이었고 운명에 이끌리듯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방황하기도 했는데, 광주예술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음대에 다닐때 가장 심각했단다. 당시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방향을 틀어 법 쪽에 인생을 걸까, 머릿속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아버지가 굉장히 무뚝뚝하셨거든요. 어느날 계기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음악을 하는 것에 매우 자랑스러워하시고 좋아하신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 사실은 제겐 다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킬만한 큰 사건이었습니다.” 여느 집도 그렇겠지만, 아버지와 딸의 특수관계(?) 속에 뭔가 사연이 있었음을 짐작케한다.


음악가로서, 칼럼니스트로서, 작가로서 분주하게 살고 있는 이인현 피아니스트. 그는 “음악은 나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하고, 버티게 해주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채찍질하고 겸손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왕 음악으로 인생 코스를 정한만큼 대학원을 준비했단다.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을 찾았고, 미국행을 결정했다. 보스턴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석사를 거쳐, 보스턴대학교 대학원 음악학 피아노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처음 미국에서 공부를 시작했을 때, 언어에 대한 부분 때문에 좌절이 많았습니다. 토플 공부와 생활영어 정도 뿐이었던 제게 영어강의와 레슨은 쉽지 않았어요. 매번 녹음해서 듣고 또 들으며 레슨과 수업을 해 나갔습니다.”

전세계에서 음악을 잘한다는 학생들이 몰린 곳이라 처음부터 웬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고, 열심히 연습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피아노 실력으로 힘든 시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자존감을 높아져갔고 피아노 실력도 눈에 띄게 발전됨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은 외로움과 그리움의 연속이었지만 이 또한 스스로를 더 성숙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 공연은 내 삶의 모든 것=“미국은 엔데믹이 한국보다 일찍 찾아왔어요. 그래서 작년부터 서서히 연주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9월, 11월, 12월에 미국 LA와 샌디에이고에서 연주 일정이 있어요. 내년에는 출판한 책과 새로 출판된 책을 가지고 북콘서트를 할 계획입니다.” 코로나가 끝나면서 한국에서도 ‘이인현만의 연주’를 준비하는 등 한창 기지개를 켜는 중이란다.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는지, 음악은 과연 어떤 의미인지 물으니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온다. “제 인생 철학은 더불어 함께 사는 것, 그리고 음악은 바쁜 삶 속에 쉼을 준다는 것입니다. 음악을 전공해서 업(業)으로 살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그만두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클래식을 찾는 곳이 많아지고 제가 어느정도 위치에 간다면 음악이 좋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그만두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음악을 업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음악 여정을 잠시도 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목표점은 ‘동행’이다. “세상은 저 혼자 살수 없다고 생각해요. 내 주변사람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한번 열어보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이 피아니스트가 클래식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지금 클래식 음악을 하고 있지만, 힘들거나 답답할 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으며 힐링하는 사람이 꽤 많은만큼 자신 역시 다른 장르를 존중한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호흡을 하고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도 합니다. 장르는 다르겠지만 저 역시도 음악을 통해 힐링을 하고 여유를 얻습니다. 클래식음악을 전공해서 그런지 클래식 음악에서 나는 나만의 쉼을 찾았고 그것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분명 그들도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을 것으로 믿어요.”

이 피아니스트는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에 부담을 느끼고 어렵게 느끼기에 시작을 주저할뿐, 마음을 열면 클래식과 동행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다만 사람들이 ‘클래식과의 벽’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을때, 그 벽을 낮추는데 자신이 노력하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이 피아니스트는 칼럼니스트이자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삶에 있어서 적극적이고도, 의욕적인 스탠스를 중시한단다. “클래식 음악이 절대 어렵고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는 걸 일반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칼럼과 책을 쓰게 됐어요. 주변을 보면 클래식음악을 듣고 싶고 알고 싶지만 괜히 어렵다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어떻게 들어야할지 무엇을 들어야할지 몰라 못듣는다는 푸념도 꽤 많이 들었지요.”

이에 그들에게 그만의 방식으로 클래식음악을 어떻게 들으면 좋은지 설명했고, 자신의 조언대로 클래식에 접근했던 사람들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그건 보람이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을 책으로 써보면 어떨까 싶어 출간 맘을 먹었단다. 칼럼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접근했다. 자긍심을 느낄 일도 생겼다. “어느날 코리아헤럴드 독자라면서 메일이 한 통 왔어요. 제 칼럼을 읽고 클래식 음악에 대한 벽이 낮아졌고 음악적인 지식과 함께 부담없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음악이 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메일을 받고 제가 원하던 바가 조금씩은 이루어지는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올해 9월, 11월, 12월에 미국 LA와 샌디에이고에서 연주 일정이 있다는 이인현 피아니스트. 그는 내년에는 출판한 책과 새로 출판된 책을 가지고 북콘서트를 할 계획을 갖고 있다.

■ 클래식은 상상력이다, 왜?=화제를 뿌린 ‘다락’에서의 강연은 이 피아니스트 인생에 있어 좋은 경험이었다. 다락은 클래식을 사랑하거나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음악도 듣고 강연도 듣는 광주광역시에 있는 음악 감상실이다. “감사하게도 다락 대표님이 강연 요청 연락을 해오셨고 일반사람들에게 클래식음악을 알리는 데 관심이 있던 제겐 적절한 제안이었습니다. 흔쾌히 수락했고 강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커리큘럼만으로 150명 전석 매진을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작곡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클래식 음악 역사,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강의했다. 3개월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12번의 다른 주제를 가지고 강연했다. “클래식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참석자들에게 호응을 받은 것은 좋은 기억이었습니다.”

신간 ‘클래식 클라스’를 쓰면서 저자 대열에 합류한 것은 다락에서의 강연이 계기가 됐다. “클래식 음악은 음악 장르 중 하나입니다. 근데 사람들은 클래식을 들을때는 그냥 음악 자체만으로 접근하기를 꺼려하죠. 괜히 어렵고 모른다고 주로 말합니다.”

가요나 트로트를 들을 때 장르에 대한 이해와 곡에 대한 배경을 배제한 채 음악만을 감상하는 것과 달리 클래식엔 장벽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다 많은 이들에게 클래식음악을 덜 지루하고 편안하게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상상을 하면서 음악을 들으면 음악에 대한 지루함이 줄어들고 그 음악에 대한 기억이 오래가기 때문이란다. “사람들이 클래식음악도 음악자체로만 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그 시작을 좀 더 편안하게 하기위해 상상력을 자극해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책에서 그걸 강조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이 피아니스트 또한 피아노 연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상상력을 동원해 연습을 한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연주가 끝나고 나면 관객 중에 다가와 자신이 느낀 바를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연주자와 같은 상상력과 감정을 느꼈을때 그 교감과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단다. 클래식음악은 다른 음악 장르에 비해 상상하거나 감정을 이입해서 좀 더 오랜 여운을 남기는 매력이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의 또다른 인생철학이 있다면 바로 존버정신이다. 묵묵하게 버티며 걸어가는 것, 그것이 그가 분주하게 사는 원동력이다.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 속에 인생은 노력한만큼 돌아온다는 것, 요행을 바라며 살지 말자는 것 그리고 베푼만큼 돌아온다는 확신이 그가 고집하는 존버정신이다.

“좀 더 많은 사람이 클래식을 부담없이 느낄 수 있도록 클래식음악 대중화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클래식 음악이 아웃사이더가 아닌, 그냥 음악장르 중 하나로 인식되길 바랍니다. 나아가 클래식 음악을 통해 교육적인 부분, 역사적인 부분 그리고 인문학적인 부분도 알리고 싶어요. 클래식 음악이 단지 음악이 아닌 통합된 사회영역 속에 한 부분이란걸 널리 알리고 싶기도 합니다.”

이달 미국으로 떠난다는 이 피아니스트. 인터뷰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달라고 했더니 역시 음악 얘기로 끝낸다. “음악은 정신적 지주이자 선생이자 삶입니다. 나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하고, 버티게 해주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채찍질하고 겸손하게 만듭니다. 음악은 나를 표현하고 나를 발견하고 나를 보여주는 유일한 것입니다.”

ysk@heraldcorp.com

▶이인현 프로필

-1985년 광주 출생

-광주예술고등학교, 이화여대 음대

-보스턴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석사

-보스턴대학교 대학원 음악학 피아노전공 박사

-2014년 The American Prize 3위

-2012년 International Keyboard Odyssiad & Festival 3위

-한국성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콘서바토리 피아노 외래교수

-GOODTV 문화예술전문위원

-저서: 클래식 클라스 (Classic Class·2021·북오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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