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역할’ 요구받은 中…미중 관계 변화에 北 예의주시
2023-06-21 10:09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1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장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을 면담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미중 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불면서 미국의 동맹.우방국은 물론, 전략적 연대를 꾀하던 북중러 관계에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이 중국에 ‘특별한(unique) 위치’를 강조하며 북한의 군사 행동을 억제할 역할을 요구했다. 북한은 미국을 향해 “대중국 압박정책의 실패를 자인한 도발자의 수치스러운 구걸 행각”이라고 비판했지만, 복잡해진 셈법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18~19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왕이(王毅)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등 고위급 인사와 만나 “중국은 북한이 대화에 참여하고 위험한 행동을 끝내도록 압박할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그동안 대화 단절과 도발 국면에서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에 맞서기 위해 ‘신냉전 구도’를 부각시켰다. 미중 패권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미러 갈등 상황에서 밀착하는 한미일 공조에 북중러 연대로 맞서는 것으로, 신냉전 구도가 명확할 수록 자신들의 운신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북한은 올들어 전례 없는 수위의 미사일 도발을 단행했고 이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논의에서 번번이 상임이사국인 중러의 반대로 추가 제재와 비판 성명은 실패했다. 북한은 미국 책임론을 내세우는 중러에 편승해 미국과 안보리를 비난해 왔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중단했던 북중 교역을 최근 재개한 것은 경제난을 극복해야 하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절실한 문제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은 전통적 우방국인 중국과 전략적 연대가 필요했고, 미국과 치열한 패권경쟁을 하고 있던 중국 역시 일정 부분 필요한 지점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 무력 고도화와 잇따른 도발에 따른 여파가 마냥 달가운 상황은 아니다. 북한의 도발을 매개로 한미일 군사협력은 한층 강화됐고, 가까운 한반도에 한미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가 빈번해진 상황은 중국에 부담일 수밖에 없다.

미국 외교수장의 5년 만에 방중에서, 미중이 상호이익을 확인하고 고위급 소통 재개 의지를 다지는 관계 변화의 중대 지점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북 역할을 강조한 것은 의미가 크다. 각종 현안에서 ‘평행선’을 그리는 미중이 그나마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이 북핵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 북한이 7차 핵실험을 단행할 경우 중국은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밖에 없다.

다만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 ▷한반도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3대 원칙으로 비교적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 왔다. 2016년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에는 ‘쌍중단’(雙暫停·북한 핵미사일 개발과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과 ‘쌍궤병행’(雙軌并行·한반도 비핵화 협상과 북미 평화협상의 병행)을 주장했다.

마오닝 대변인은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한반도 문제점이 매우 명확하다고 생각한다”며 “각 관련국은 문제점을 직시하고, 각자의 책임을 감당하며 유의미한 대화를 통해 각자의 합리적 우려를 균형 있게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역할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미국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조선중앙통신은 21일 국제문제평론가 정영학 명의의 글에서 블링컨 장관의 방중에 대한 반응이 나왔다. 이 글은 미국이 관계 완화를 ‘구걸’하게 된 것은 대중 압박과 억제가 되레 미국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부메랑이 되고, 미·중 대결이 미증유의 군사적 충돌로 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배경이 됐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중국에 한층 밀착하려는 것으로 풀이되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북한은 블링컨 장관의 방중에 앞서 16~18일간 진행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신냉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복잡하고 심각하게 변화한다’고 언급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연말 개최된 당 전원회의에서 “신냉전 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밝혔었다. 미중 관계 움직임을 염두에 둔 것이다.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이날 한국을 찾아 한국의 고위 당국자들과 만나 블링컨 장관의 미중 회담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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