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교육 내용이 안내돼 있다.[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교육부가 킬러 문항이라고 뽑으면서 근거로 제시한 이유들이 이상합니다. 대부분 ‘기출 변형’으로 예전에 나왔던 문항들이기도 하고요. 기존 출제 문항에도 이상이 있다는 뜻인가요? 수험생 입장에서 납득이 안 됩니다.” (20세 재수생 A씨)
교육부가 지난 26일 앞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출제되지 않을 ‘킬러 문항’을 공개했다. 2021~2023학년도 3차례 수능과 지난 6월 치러진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에서 뽑은 내용이다. 국어, 영어, 수학 22개와 과학탐구 영역 4개 총 26개가 킬러 문항으로 지목됐다. 킬러 문항이 공개되자 학생과 학부모들은 술렁인다. 대부분이 정답률 10~20%대 고난도 문항인 만큼 킬러 문항 없이 변별력을 확보하는게 가능하냐는 의문이다. 결국 이전 수능보다 쉬운 ‘물 수능’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27일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 B씨(46)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어제 킬러 문항 관련 기사를 쭉 읽었다. 결국 수능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며 “킬러 문항을 빼고 변별력을 확보하겠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수능이 쉬워지거나, 새로운 유형으로 더 어려워진다는 뜻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B씨의 자녀는 수능을 5개월 앞두고 탐구영역 선택 과목을 바꿔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B씨는 “국영수가 쉬워질 가능성이 높으니 어려워 표준 점수가 높은 ‘과학탐구Ⅱ’ 영역을 선택해 점수를 높여야 하나 싶다. 학교 선생님도 선택 과목을 바꿔보라고 조언한다”며 “입시 5개월 앞두고 수능 난이도 논란이 벌어지는 것도 황당한데 교육부는 제대로 된 답이 없다”고 한탄했다.
칼러 문항의 선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는 킬러 문항을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 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에게 유리한 문항’이라고 정의했지만, 지목된 킬러 문항 중 상당수가 예전부터 출제돼던 문제라는 주장이 나온다.
수험생 A씨는 교육부가 킬러 문항으로 꼽은 2023학년도 수능 수학(미적분) 30번 문항에 대해 “여러 수학적 개념이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 결국 ‘미분’과 연관된 개념이다. 개념 자체는 수학Ⅱ에서도 나오는 만큼 낯선 문제가 아니다”라며 “교육 과정에서 벗어난 것도 아니고 비슷한 유형 문제가 기출로도 몇 번이나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아침 6시에 집을 나와 저녁 11시에 집에 들어가며 열심히 공부 중인데 수능이 쉬워지면 실수 싸움이 되는 거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한 대형 입시 학원 관계자 또한 “교육부가 꼽은 킬러 문항은 특징 있는 문항이라기보다 정답률이 낮은 문항에 가까워 보인다. 이전 기출에서도 자주 보던 유형”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결국 정답률 10%대 문항은 사라지고 정답률 40~50%대 중상난이도 문제가 많아진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중상난이도 문제를 중점으로 가르치되 9월 모의평가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킬러 문항 공개를 두고 초고난도 문제는 없지만 전반적인 문제 수준은 올라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킬러 문항 제거가 사교육비 경감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직 중학교 교사 C(45)씨는 “킬러 문항을 팔기 위해 사교육을 찾는 이들은 소수다. 오히려 수능이 쉬워지니 ‘해볼만 하다’고 생각하는 중위권 학생들이 사교육에 몰릴 수 있다. 줄 세우기식 수능에서는 어떤 대책을 내놔도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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