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지휘자는 나침반이자, 프로듀서…리더십의 총체적 메타포” [인터뷰]
2023-07-03 09:27


폭발적인 가창력의 가수 진주가 몸담고 있는 서울장신대 실용음악과 제자들과 함께 강릉 세계합창대회에 참가한다. 개막을 앞두고 진주는 “준비는 다 했으니, 실수만 없으면 된다”며 ‘결전의 날’을 기다렸다. [팔로우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주어진 시간은 불과 15분. 등장부터 인사, 합창과 퇴장까지 1분 1초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시간이다. 노련한 10여년차 단원과 ‘합창 초보’인 대학생이 조화를 이룬 빅콰이어 합창단. 들쑥날쑥한 실력의 차이를 다듬어 키를 맞추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장점을 살려 ‘화음’을 만들었다.

“사실 너무 떨리고 긴장돼요. 차라리 제가 노래하는게 낫지, 학생들이 올라가는 무대는 늘 떨리더라고요. 아마도 제가 제일 떨 것 같은데, 이젠 실수만 없으면 된다는 생각이에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무대를 가지고 놀던 가수 진주가 이번엔 포디움에 선다. 몸담고 있는 서울장신대 실용음악과 제자들과 함께 오는 4일 강릉 세계합창대회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대회의 개막을 앞두고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 진주는 “준비는 다 했으니, 실수만 없으면 된다”며 ‘결전의 날’을 기다렸다.


진주 [팔로우엔터테인먼트 제공]

제자들과 합창 대회…“지휘는 리더십의 총체적 메타포”

‘교수님’ 진주와 장신대 학생들의 강릉 세계합창대회 출전은 ‘장기 프로젝트’였다. 진주는 올해 처음 생긴 장신대 실용음악과의 교수로 임용되며 ‘대회 출전’을 한 학기 강의와 과제로 삼았다. 이미 2005년부터 강단에 선 진주는 학교에서 보컬 앙상블과 같은 수업을 통해 학생으로 지도했고, 2018년엔 ‘패럴림픽 DMZ아트페스타’의 합창 멘토로 참가하기도 했다.

합창 대회 참가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3년간의 팬데믹을 지나오면서다. 그는 “코로나19를 겪으며 학생은 물론 교수들도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되다 보니 실습도 쉽지 않고, 정서적 유대감이 결여되고 친밀감의 폭도 줄었다”고 돌아봤다. 엔데믹과 함께 일상을 회복하고 정서적 치유를 줄 수 있는 방법이 ‘합창’이 되리라는 확신이 따라왔다.

“‘DMZ페스타’에서 합창 멘토로 함께 해보니, 참가자들이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좋은 추억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봤어요. 학교에서도 환경이 나아지면, 이런 경험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때마침 진주의 제자들 중엔 10여년 이상 합창 활동을 해온 베테랑 단체인 ‘빅콰이어 합창단’ 단원들이 적지 않았다. 빅콰이어에선 진주에게 ‘지휘자’로의 러브콜을 보냈고, 기존 단원들과 장신대 실용음악과 학생들이 팀을 이뤄 이번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매회 전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합창대회가 이번엔 한국에서 열린다는 점도 진주와 학생들이 참가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대회를 앞두고 ‘지휘자’ 진주의 역할이 막중했다. 합창대회에서의 지휘자는 단지 지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곡목 선정부터 편곡, 단원들의 매니지먼트, 멘탈 관리까지 도맡아야 했다.

“지휘자는 연습 과정에선 단원들이 즐겁게 집중할 수 있도록 플랜을 잘 짜는 매니저이자 분위기 메이커이고, 음악적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프로듀서예요. 무대 위에선 슈퍼바이저이자 나침반이고요. 손동작 하나만 잘못해도 큰일이죠. 지휘 자체가 리더십의 총체적 메타포이더라고요.”


가수 진주 [팔로우엔터테인먼트 제공]

“삶의 궤적과 닮은 합창”…배려와 양보의 장르

빅콰이어 합창단은 대회를 위해 익히 알려진 명곡을 골랐다. 진주는 “이번 합창대회 주제가 평화와 번영인 만큼 주제에 맞는 곡을 골랐다”고 했다. ‘격려과 위로’의 노래인 ‘린 온미(Lean on me)’, ‘가능성’을 깨워주는 ‘아이 윌 서바이브(I will survive)’, ‘사랑’을 노래하는 ‘더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The Greatest Love of all)’, ‘인류의 번영’을 위한 ‘핸드 인 핸드(hand in hand)’ 등이다. 네 곡의 머릿글자를 따서 ‘캄(CALM)’이라는 키워드로 만들었다. “평화를 노래”하는 팀이 바로 빅콰이어 합창단이다.

준비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편곡’이었다. 진주는 “기존 곡을 합창곡으로 편곡한 뒤,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음역과 음색에 어울리도록 하루에도 몇 번씩 수정하면서 연습했다”고 말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심사기준 중 하나가 ‘악보’인 만큼, 합창단은 ‘악보 그대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할 지라도 실전은 달랐다. 16~18명의 합창단원의 음색과 딱 맞아떨어지는 지점을 찾아가야 했다. 진주는 “대학원 때보다 악보를 더 많이 봤다”며 “몇 날 며칠 눈이 벌개져있었다”며 웃었다.

“기존의 유명곡을 노래할 때는 선곡이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위험성이 덜하고, 기본은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하지만, 원곡의 느낌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 어렵죠. 감정선, 다이내믹, 하모니, 팀워크 등 어떤 것이든 주무기가 있어야 해요. 그걸 찾는 것이 지휘자이고요.” 오랜 연습 기간 동안 진주는 단원들의 기량을 끌어올리고, 강점을 찾는 데에 매진했다.

합창이 어려운 것은 ‘배려와 양보’의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는 “합창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되 내 길을 가야 하는 음악”이라며 “개성이 툭 튀어나오기 보다는 그 개성을 양보해 자기 소리를 죽이고 다른 사람들과 블렌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합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조화’다. 진주와 제자들의 도전은 단지 ‘합창 스킬’을 연마하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학생들은 대회 준비 과정을 통해 ‘합창의 미덕’과 ‘하모니’를 배우며, 삶의 방식을 체득했다.

“합창은 단지 음악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과 심리적인 부분까지 성장케 하는 마중물의 역할을 해요. 전혀 다른 음색과 음역이 모여 서로의 간극을 줄이고, 조화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 우리 삶의 궤적과 닮아있어요. 일상에서 부딪히는 가장 큰 문제는 사람으로 인한 힘듦이잖아요. 상대의 소리를 들어야만 자기 소리를 예쁘게 낼 수 있는 합창을 통해 인생을 알아가게 되죠.”

이제 ‘디데이(D-Day)’가 다가왔다. 그는 “무대 위에선 예기치 못한 변수가 많아 그것을 잘 넘어갈 수 있는 식견을 필요한 때”라고 했다. “사실 단시간에 체득하는 것은 어려워요. 혼자 무대에 설 때는 상관없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하니 막중한 책임감이 따라오더라고요. 지금은 실수만 하지 않고,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는 마음이에요.” 10여명의 든든한 단원들은 진주에겐 누구보다 큰 힘이다. 그는 “준비 과정만으로 아이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성장의 시간이 됐다. 등수는 중요하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우리 팀엔 ‘성레전드’(존레전드), ‘조트니 휴스턴’(휘트니 휴스턴), ‘서범수’(김범수), ‘한얼’(나얼)이 있다. 소울풀한 합창의 진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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