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는 매니저·프로듀서...무대위 나침반”
2023-07-05 11:23


주어진 시간은 불과 15분. 등장부터 인사, 합창과 퇴장까지 1분 1초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시간이다. 노련한 10여년차 단원과 ‘합창 초보’인 대학생이 조화를 이룬 빅콰이어 합창단. 들쑥날쑥한 실력의 차이를 다듬어 키를 맞추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장점을 살려 ‘화음’을 만들었다.

“사실 너무 떨리고 긴장되더라고요. 차라리 제가 노래하는게 낫지, 학생들이 올라가는 무대는 늘 떨리더라고요. 실수만 없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무대를 가지고 놀던 가수 진주(사진)가 이번엔 포디움에 섰다. 몸담고 있는 서울장신대 실용음악과 제자들과 함께 강릉 세계합창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교수님’ 진주가 합창 대회 참가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3년간의 팬데믹을 지나오면서다. 그는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되다 보니 정서적 유대감이 결여되고 친밀감의 폭도 줄었다”고 돌아봤다. 엔데믹과 함께 일상의 치유를 줄 수 있는 방법이 ‘합창’이 되리라는 확신이 따라왔다.

“‘합창을 통해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좋은 추억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학교에서도 환경이 나아지면, 이런 경험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때마침 진주의 제자들 중엔 10여년 이상 합창 활동을 해온 베테랑 단체인 ‘빅콰이어 합창단’ 단원들이 적지 않았다. 빅콰이어에선 진주에게 ‘지휘자’로의 러브콜을 보냈고, 기존 단원들과 장신대 실용음악과 학생들이 팀을 이뤄 이번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지휘자’ 진주의 역할이 막중했다. 합창대회에서의 지휘자는 단지 지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곡 선정부터 편곡, 단원들의 매니지먼트, 멘탈 관리까지 도맡아야 했다.

“지휘자는 연습 과정에선 단원들이 즐겁게 집중할 수 있도록 플랜을 잘 짜는 매니저이자 분위기 메이커이고, 음악적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프로듀서예요. 무대 위에선 슈퍼바이저이자 나침반이고요. 손동작 하나만 잘못해도 큰일이죠. 지휘 자체가 리더십의 총체적 메타포이더라고요.”

빅콰이어 합창단은 대회를 위해 익히 알려진 명곡을 골랐다. 진주는 “이번 합창대회 주제가 평화와 번영인 만큼 주제에 맞는 곡을 골랐다”고 했다. ‘격려과 위로’의 노래인 ‘린 온미(Lean on me)’, ‘가능성’을 깨워주는 ‘아이 윌 서바이브(I will survive)’, ‘사랑’을 노래하는 ‘더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The Greatest Love of all)’, ‘인류의 번영’을 위한 ‘핸드 인 핸드(hand in hand)’ 등이다. 네 곡의 머릿글자를 따서 ‘캄(CALM)’이라는 키워드로 만들었다. “평화를 노래”하는 팀이 바로 빅콰이어 합창단이다.

준비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편곡’이었다. 진주는 “기존 곡을 합창곡으로 편곡한 뒤,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음역과 음색에 어울리도록 하루에도 몇 번씩 수정하면서 연습했다”고 말했다.

“기존의 유명곡을 노래할 때는 선곡이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위험성이 덜하고, 기본은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하지만, 원곡의 느낌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 어렵죠. 감정선, 다이내믹, 하모니, 팀워크 등 어떤 것이든 주무기가 있어야 해요. 그걸 찾는 것이 지휘자이고요.”

합창이 어려운 것은 ‘배려와 양보’의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는 “합창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되 내 길을 가야 하는 음악”이라며 “개성이 툭 튀어나오기 보다는 그 개성을 양보해 자기 소리를 죽이고 다른 사람들과 블렌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합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화’다. 학생들은 대회 준비 과정을 통해 ‘합창의 미덕’과 ‘하모니’를 배우며, 삶의 방식을 체득했다.

“합창은 단지 음악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과 심리적인 부분까지 성장케 하는 마중물의 역할을 해요. 전혀 다른 음색과 음역이 모여 서로의 간극을 줄이고, 조화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 우리 삶의 궤적과 닮아있어요. 일상에서 부딪히는 가장 큰 문제는 사람으로 인한 힘듦이잖아요. 상대의 소리를 들어야만 자기 소리를 예쁘게 낼 수 있는 합창을 통해 인생을 알아가게 되죠.”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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