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취임식 예포로 존재감 과시한 ‘풍익’…수출까지?
2023-07-09 12:12


지난해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서 K105AI 차륜형 자주포에서 21발의 예포가 발사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 창원(경남)=오상현 기자]운전석 계기판의 숫자가 70㎞를 가리키고 있었다.

17.8t에 달하는 육중한 차량.

마치 코뿔소 위에 올라 앉아 시속 100㎞ 이상으로 달리는 것 같았다.

“곧 급정차 할 겁니다.”

시험평가를 수행하는 운전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둔중한 타이어 마찰음과 함께 차가 멈췄고 이내 고무 타는 냄새가 올라왔다.

지난 5일, 경상남도 창원에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3공장 성능시험장에서는 K105A1(풍익) 차륜형 자주곡사포의 2차 양산 차량에 대한 시험평가가 진행되고 있었다.

풍익은 육군 포병에서 도태되던 105㎜ 곡사포를 5t 군용 트럭, K721제독차의 차체에 올려 개조한 자주포다.

지난해 5월 10일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등장해 7문의 자주포가 21발의 예포를 신속하게 재장전하고 발사하는 장면이 눈길을 끌었는데, 이 때 사용된 포가 바로 풍익이다.


지난해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서 K105AI 차륜형 자주포에서 21발의 예포가 발사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자주포를 국산 전투기에 견주자면 K9자주포는 KF-21에, 풍익은 T-50계열이나 KT-1에 해당한다.

최첨단은 아니지만 활용도가 높고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다.

개발단계 때부터 팀원으로 참가했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 3사업장 생산담당 이경훈 부장은 “최고의 가성비와 운용 효율을 자랑하는 무기체계”라고 자랑했다.

이경훈 부장은 “과거 105㎜ 견인포 같은 경우 최소 8명에서 10명의 인력이 2.5t 트럭으로 견인해서 작전지역 도착하면 가신을 펼치고 고정 한 뒤 사격을 해야했는데, 자주포로 만들면서 운용 인력이 절반인 5명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차량 운전과 경계 담당 각 1명씩을 제외하면 실제 포를 발사하는 데 3명이면 가능하다는 뜻이다.

때문에 인구감소로 병역자원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풍익의 품질관리를 담당하는 국방기술품질원 기동화력 3팀의 김성훈 선임연구원은 “자동사격통제장치와 복합항법장치를 결합했기에 이같이 효율적인 운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복합항법장치는 관성항법장치와 군용GPS를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이를 통해 포의 위치와 자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거기에 K9과 같은 성능을 발휘하는 자동사격통제장치까지 달았다.

사격지휘차량으로부터 공격 목표에 대한 좌표를 받아 입력한 뒤 포수가 탄을 장전하고 발사하면 높은 명중률을 자랑하는 우수한 화포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경훈 부장은 “관성항법장치의 경우 올해 2월 우리 기술로 국산화를 완료했다”며 “무기체계 개발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꾸준하게 노력해서 100%에 준하는 국산화를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국산 관성항법장치는 최근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한 3차 양산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김성훈 선임연구원은 “관성항법장치가 국산화되면서 수주 물량을 원활하게 확보할 수 있고 중소기업의 일자리도 창출될 수 있다”며 “3차 양산을 넘어서 4차, 5차 양산을 할 때도 지금과 같은 안정된 품질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업체와도 협업하고 기품원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7년 6월 28일, 방위사업청은 “기존 105㎜ 견인 곡사포를 차량에 탑재하고 자동화 사격체계를 적용해 성능개량한 105㎜ 자주 곡사포 개발에 성공했다”며 “2018년부터 양산에 착수해 우리 군 일선부대에 전력화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2009년, 당시 삼성테크윈이 방위사업청에 신개념기술시범사업(ACTD)으로 제안한 ‘차량탑재형 구경 105㎜ 자주포’가 시험평가를 거쳐 실제 무기로 전력화된다는 발표였다.

약 1년여의 개발기간을 거쳐 2011년 9월 105㎜ 차륜형 자주포의 시제 1호기를 공개했고 이후 2012년 실용성 평가와 2014년 방위사업추진위원회의 의결, 2015년 입찰공고 및 제안서 평가 등의 과정을 거쳤다.

개발 당시 군이 보유했던 M101 계열 105㎜ 견인 곡사포는 대략 2000여문.

보유하고 있던 포탄은 340만발에 달한다고 알려졌었다.

많은 물량의 105㎜ 견인포와 포탄을 그대로 도태시키기에는 비용의 부담이 막대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탄을 폐기할 때 정해진 절차에 따라 분해한 뒤 친환경 시설과 절차에 따라 화학적으로 처리해야한다”며 는“이렇게 까다로운 절차와 비용을 들여 무기쳬계를 폐기하는 것 보다 자주포로 개량해 활용하는 것이 타당하겠다는 판단이 작용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장은 “50년 이상 야전에서 사용하고 도태되던 105㎜ 견인포를 자주포화하는 것은 실제 전체를 신규 개발하는 것보다 더 까다로웠다”며 “저희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자주포 기술 그리고 체계 장비의 기술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장비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기품원은 2018년 최초생산품 검사를 주관해 안정된 품질을 확보했고 그 결과 2018년 12월 강원도 양구 모 사단에 최초 전력화 하는 데 기여했다.

풍익에는 사격 충격력 보상을 위한 발사지지대가 양쪽으로 적용되어 있는데 야전에서 운용할 때 일시적으로 지지대가 내려가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기품원은 적극적인 기술검토 활동으로 품질문제를 해소했다.

김성훈 선임연구원은 “2018년 처음 장비 검사를 마치고 납품했던 부대가 마침 제가 근무했던 부대여서 각별한 애정이 있는 장비”라며 “항상 악조건과 운용자 측면을 많이 고려해서 좀 더 엄격하게 품질검사를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풍익’이라는 명칭은 지난해 6월 육군에서 부여했다.

6‧25전쟁 당시 포병장교였던 김풍익 중령을 기리는 의미에서다.

1950년 6월 26일 경기도 의정부 축석령 전투에서 당시 포병학교 제2교도대대장이었던 김풍익 소령은 남하하는 북한군의 T-34 전차를 저지하기 위해 105㎜ 곡사포를 직접 조준 사격해 초탄으로 적 전차를 파괴했다.

그러나 두 번째 탄을 발사하려는 순간 적 전차의 포탄이 날아왔고 부대원들과 함께 전사했다.

김풍익 소령은 전사한 뒤 중령으로 추서됐고 1950년 10월 30일 충무무공훈장, 같은 해 12월 30일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풍익의 수출용 제식명칭은 EVO-105이다.

삼성테크윈이 처음 개발을 시작할 때 붙였던 이름이다.

방위사업청은 2021년 8월 19일 유튜브 채널에 풍익을 수출형 제식명칭으로 소개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방사청은 당시 공개한 영상에서 무기체계의 구체적인 제원과 작동방식, 운용인력과 기동, 포격 장면 등을 영문 자막과 함께 자세하게 소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 제3공장에서 제작되고 있는 풍익.K721 제독차 차체를 기반으로 상부의 탄약적재함과 포신을 탑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풍익의 최대 장점은 운용인력을 줄이고 장병의 생존성을 높였다는 점이다.

견인포 방열의 과정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포구방열구동시스템이 이 장점을 이끌어내는 일등공신이다.

포구방열구동시스템의 핵심은 발사지지대인데, 지지대는 차량 좌우에 각 한 개 씩 달렸다.

견인포의 가신을 펼치고 고정하는 역할을 발사지지대가 대신해 주는데 이 지지대 덕분에 포를 방열하고 초탄을 발사하는 데까지 56초면 가능하고 다시 지지대를 올리고 이동하기까지는 30초면 가능하다.

대화력전의 필수 요소인 신속한 사격과 진지 이탈, 즉 치고 빠지는 ‘Shoot & Scoot’ 전술을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운용인력의 획기적인 감축은 물론 포병의 생존성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경훈 부장은 “만약 전시에 포구방열구동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조이스틱을 이용해 반자동 사격도 가능하고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경우에는 수동으로 레버를 통해 포격할 수 있다”며 “자동과 반자동, 수동방열이 가능한 위기대처 능력도 갖췄다”고 설명했다.


지난 5일 경남 창원에 위치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 제3공장 성능시험장에서 출고를 앞 둔 K105A1, 풍익이 60%경사로 등판과 제동 시험을 하고 있다.[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기동성능도 뛰어나다.

최고속도 70㎞의 주행성능은 물론 31도, 60%경사를 거침없이 오르고 기울어 진 상태에서 멈춰서 버틸 수 있는 제동력도 갖췄다.

실제 60%경사로에 올라가는 상황에서 조수석에 타 보니 롤러코스터를 타고 출발할 때의 느낌과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특히 제자리에 멈춰서 있을 때는 눈앞에 하늘만 보이는 상황이라 본인도 모르게 손잡이를 잡게 된다.

18t에 가까운 중량, 육중한 105㎜포를 뒤에 달고 있다는 생각에 뒤로 넘어갈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차륜형이라 궤도차량만큼의 험지 기동능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보병여단 포병대에서 사용하기에는 적절한 기동성능을 갖췄다는 평가다.

K105A1는 15㎏에 달하는 105㎜ 탄 60발을 차량 뒤쪽 적재함에 싣고 이동할 수 있다.

기동성과 방열, 사격통제 뿐 아니라 탄 적재능력까지 갖춰 자주포가 갖춰야 할 모든 요건을 충족했다고 할 수 있다.


풍익은 우리 군이 지난 50여년 동안 운용해 온 M101 계열 105㎜ 포신을 활용해 제작한다.[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자동장전시스템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개량할 계획은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 부장은 “105㎜ 자주포는 견인포를 최대한 현재 기술을 이용해 최적의 상태로 개량한 것이고 K9이나 K55와 동등한 수준의 정밀도를 가진 포병화력장비”라며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현재 상태에서도 운용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데 여기에 돈을 더 투입해서 더 뛰어난 성능으로 개량하는 문제는 비용대비 효과 측면에서 과연 타당한 지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언급했다.

운용자의 편의성과 안전도 챙겼다.

차량을 방열한 뒤 적재함에서 탄을 꺼내 포에 장전을 할 때 운용병력이 보다 안전하고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게 좌우측면판을 확장할 수 있다.

슬라이드식으로 펼쳐지는 측면판은 46㎝씩 총 92㎝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승무원과 차량 좌우에는 장갑판을 설치해 방호력을 높였다.

이경훈 부장은 “무기체계의 성능도 중요하지만 그 무기체계를 운용하는 군인의 안전이 중요하다”며 “시스템이 개발될 때 성능은 결정되지만 실제 제작을 하면서는 측면판의 확장과 장갑판 설치 등 모든 분야에서 운용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위해요소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세심하게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부의 뚜렷한 수출의향이나 전략은 없다.

업계 관계자는 “방산전시회에 풍익을 전시하면 동남아나 중남미 국가의 방문객이 많은 관심을 보인다”며 “T-50계열이나 KT-1 등을 수입했던 나라의 경우 가격이 비싼 K9보다 풍익을 더 선호할 수 있다”며 수출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표출했다.



legend19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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