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탈북했다”…남한이 준 ‘기회’로 찾은 꿈
2023-07-10 15:01


북한 이탈주민들의 사회정착을 지원하는 통일부 소속기관인 하나원이 개원 24주년을 맞은 가운데 입소자가 네일아트 교육을 받고 있다. 2023.07.10./ 사진공동취재단

[헤럴드경제(안성)=최은지 기자] “코로나 시작하는 해에 중국 국경지역에 도착했고, 신분증이 없으니 바깥 출입을 못하고 집에만 있었습니다”

북중 국경지대에 살던 C씨(20대·여)는 2019년 목숨을 걸고 탈북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산악지대인 국경지역은 자체적으로 쌀을 구할 방법이 없어 밀수로 생활을 영위했는데, 북한이 세관 단속을 강화하고 밀수를 막으면서 생활이 점점 어려워졌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향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강화된 중국의 방역 정책은 탈북민들을 더욱 옥죄였다. 신분증이 없는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는 병원에 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C씨는 “신분이 없으니 중국 사람 임금의 절반만 받았고, 일한 만큼 임금을 받지 못했다”며 “코로나 때문에 바깥출입을 못 하고 이렇게 사는 (내 자신이) 안쓰러웠다”고 밝혔다.

탈북민들의 정착을 위한 통일부 소속 기관 하나원은 10일 개원 24주년을 맞아 언론 공개 행사를 개최했다. ‘가’급 보안 시설인 하나원은 통상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최근 하나원에 입소한 3명의 북한이탈주민이 통일부 기자단과 인터뷰를 했다. 탈북민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이름과 나이는 밝히지 않은 채 진행됐다.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정착했던 이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언어문제였다.

2014년 탈북한 A씨(30대·여)는 “중국에 지냈을 때 말이 통하지 않아 일자리보다 먼저 가정을 꾸렸다”며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2~3년이 지나 중국어가 가능해지고 나서야 일을 하고 일을 했다”고 밝혔다.

2004년 탈북한 B씨(30대·여)는 “중국에 들어와 말이 통하지 않아 힘들었다”며 “몇 년이 지난 후 말이 통하니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정착했던 중국을 떠나 한국으로 들어온 계기는 무엇일까. 코로나19로 중국에서의 체류 현실은 더욱 열악해졌다. 신분증이 없어 병원을 가기도 어려웠고, 중국 내 방역 정책으로 이동도 어려웠다.

통일부에 따르면 2010년 전후 약 3000명이었던 탈북민 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2012년부터 1000명대로 줄어들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229명으로 급격하게 감소했다가 2021년에는 63명, 2022년에는 67명을 기록했다.

C씨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는 싶어 하지만 오는 길이 너무 위험하다 보니 못 오고 있다”며 “저도 목숨을 걸고 와서 성공했지만, 그러지 않은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북한 이탈주민들의 사회정착을 지원하는 통일부 소속기관인 하나원이 개원 24주년을 맞은 가운데 입소자들이 제과 제빵 교육을 받고 있다. 2023.07.10./ 사진공동취재단

이들은 신분증도 없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불법 체류자의 삶을 끝내고 당당하게 삶을 꾸리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A씨는 “탈북을 결심했을 때는 혼자 몸이니 두려움이 없었는데, 중국에서 살면서 아이도 생기고 이전에는 몰랐던 삶을 사는 것은 괜찮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중국에 있는 자체가 불법이니 안전이 보장된 생활이 아니었다”며 “사회적인 활동도 할 수 없고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니 안전하고 싶고,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한국에 오기로 한 큰 결심이었다”고 말했다

B씨는 “북한에서 영양실조가 올 정도로 먹고사는 것이 어려웠고 이렇게 하면 죽겠다고 생각했다”며 “언니들이 다 중국으로 간다니까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고 밝혔다.

이어 “신분증이 없어서 제가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이 제일 힘들었고,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놀러 가는 것도 어려웠다”며 “신분증이 없어 카드를 만들 수 없어 일을 하면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떠올렸다.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다른 탈북자들에게서 하나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A씨는 “기초교육을 해주고 한국에서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B씨는 “한국에 가면 신분증도 준다, 거기 가면 중국보다 더 잘 살 수 있다고 해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1999년 7월 개원한 하나원은 올해 24주년을 맞았다. 2012년에는 남성 탈북민 전용 교육시설인 제2하나원이 개원했다.

탈북민의 사회정착지원은 4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 재외공관 등 관련기관의 보호요청 후 2단계로 관계 기관의 합동신문이 이뤄지고, 3단계로 12주간 사회적응교육이 이뤄진다. 하나원은 이 12주간 총 392시간의 기본교육과 4주간 80시간의 지역적응교육을 실시한다. 하나원 교육을 마친 교육생들은 사회로 편입되고, 4단계로 중앙정부와 지자체, NGO 등의 협조로 정착 지원을 받는다.


북한 이탈주민들의 사회정착을 지원하는 통일부 소속기관인 하나원이 개원 24주년을 맞은 가운데 입소자들이 전산교육을 받고 있다. 2023.07.10./ 사진공동취재단

2020년 6월 하나원은 직업교육관을 신설했다. 기본적인 IT 교육과 직업 체험을 통해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을 갖는다. 코로나 여파로 탈북민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하나원은 기존 교육생들의 심화교육, 직업심화과정으로 정책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나원 내에 갖춰진 1차 의료기관인 하나의원에서 기본적인 건강관리를 받는다. 대부분의 탈북민들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하는 마음건강센터도 있다.

하나원에서 기초교육을 받고 있는 탈북민들의 가장 큰 걱정은 예상과 달리 ‘언어’였다.

C씨는 “말이 다르고, 저희는 영어도 외래어도 잘 모르지만 열심히 배우고 있다”며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잘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B씨는 “언어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내 힘껏, 노력껏 산다면 신분이 있으니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0일 오전 북한 이탈주민들의 사회정착을 지원하는 통일부 소속기관인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하나원이 개원 24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하나원 내 위치한 하나의원에서 북한 이탈주민이 치과 치료를 받고 있다. 2023.07.10. 〈사진공동취재단〉

탈북민들이 하나원에서 얻는 것은 단순한 지원금과 교육이 아니다. 이를 통한 ‘기회’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고, 무언가를 선택할 기회를 얻었다.

A씨는 “이전에는 제가 꿈꿀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지만 앞날이 기대도 된다”며 “한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이렇게 한국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교육받고, 많은 도움으로 이 길을 걷고 있는데 앞으로 살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세금을 많이 내 값아야겠다는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silverpaper@heraldcorp.com



랭킹뉴스


COPYRIGHT ⓒ HERALD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