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방문한 독일 베를린 미테(Mitte)구의 이나킨더가든(INA.KINDER.GARTEN). 김영철 기자
[헤럴드경제(독일 베를린)=김영철·김용훈 기자] “직장 퇴근시간 때문에 아이를 제때 못 데려가는 부모는 없어요. 자기 근무시간에 맞춰 자녀를 유치원에 자유롭게 보내거나 데려갈 수 있도록 늘 열려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찾은 독일 베를린 미테(Mitte)구에 있는 ‘이나킨더가든(INA.KINDER.GARTEN)’ 스텔라 흐리스토풀로스(Stella Christopoulos) 원장은 영아기부터 유아기 아이의 돌봄 체계에 대해 이같이 소개했다.
해당 유치원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원을 ‘열어두고’ 있다. 언제든 아이를 맡기고, 5시까지 데려갈 수 있게 하고 있다. 각자의 사정에 맞게 유치원을 선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날 오후 2시께 방문한 이 유치원에는 복도에서 뛰노는 아이부터 학부모의 손을 잡고 귀가하는 아이까지 다양했다. 2층 규모의 해당 시설은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이 연령별로 나뉘어 있었다. 1~2세부터 2~3세, 4~5세를 위한 공간이 각각 배정돼 있다. 3세 이하 아이를 맡기는 ‘어린이집’과 그 이상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보내는 ‘유치원’이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한 시설에서 취학 이전의 아이들이 모두 이용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독일에선 자녀가 특정 유치원에 등원하고 있으면 추후 그의 동생도 같은 유치원에 들어갈 수 있는 우선권이 주어진다. 유치원 인근 초등학교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왕래하는 시스템도 존재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진학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지난달 27일 베를린 미테(Mitte)구에 있는 이나킨더가든(INA.KINDER.GARTEN) 스텔라 흐리스토풀로스(Stella Christopoulos) 원장이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영철 기자
흐리스트풀로스 원장은 “나이가 달라도 하나의 유치원에 같이 다닐 수 있다”며 “만약 6세 형이 다니는 유치원에 동생도 입원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나킨더가든은 초등학교 2곳과 협력관계에 있다. 해당 초등학교 교장과 일정을 잡으면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방문, 수업을 참관할 수 있다”며 “초등학교에서도 아이들과 부모를 초대해 학교를 신청하는 방법 등 다양한 진학 절차를 알려준다”고 말했다.
독일은 유치원 자리 마련이나 확대정책 등과 같은 정책에 대해서 연방 가족부(BMFSFJ)가 맡고 있다. 유아교육에서 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비용은 주정부마다 다르지만 베를린은 지난 2018년부터 식비를 제외하곤 만 1세부터 무상이다.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발표에 따르면 독일에선 유치원 교사 한 명당 돌보는 어린이 수를 보면 만 3세 이하의 경우 교사 한 명당 4명, 만 3세 이상의 경우 교사 한 명당 8명 정도다. 반면 지난 2021년 교육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유치원 교원 1인당 유아 수는 국·공립 8.6명, 사립 12.2명이다.
스텔라 흐리스토풀로스 유치원장이 원에 등록돼 있는 아이들의 명단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철 기자
스텔라 흐리스토풀로스 원장이 기자에게 아이들의 창작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철 기자
흐리스트풀로스 원장의 안내에 따라 올라간 유치원 2층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부터 낮잠을 자는 공간, 야외로 이어지는 작은 공터도 있었다. 놀이공간을 보여주던 중 그는 “보통 나이에 따라 반을 나누기도 하지만 한공간에 3세 미만과 이상도 섞여 있기도 한다. ‘킨더가르텐’ ‘크리페(Krippe·독일식 유아원)’ 모델 등이 혼합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4시부터는 10명가량의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러 와 유치원 내부가 북적였다. 이때부터 아이들을 본격적으로 데려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흐리스트풀로스 원장에 따르면 이나킨더가든으로 부모가 자녀를 보낼 당시 부모 개인의 근무시간에 적합한지를 먼저 고려한다고 했다. 그는 “부모가 어떤 직장에 다니는지에 따라 적합한 운영시간의 유치원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베를린에선 학부모가 무료 보육을 받으려면 바우처(Kita-Gutschein)를 주정부에 신청해야 한다. 이 바우처를 통해 자녀에게 적합한 돌봄시설에 신청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직장에 다니거나 교육을 받고 있어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없는 경우 자녀를 돌봄시설에 더 오래 맡길 수도 있다.
부모의 근무환경에 따라 운영시간이 다른 유치원도 있다. 밤늦게 근무하는 부모의 경우 이들의 근무시간에 맞춰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는 유치원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나킨더가든에서 도보로 20여분 떨어진 샤리테대학병원(Charité Hospital)에 설립된 부설 유치원에는 해당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의 당직근무에 맞춰 자녀를 늦게 맡기고 늦게 데려갈 수 있다. 흐리스트풀로스 원장은 “오후 5시 이전에 퇴근하지 못하는 부모들은 늦은 시간에도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는 시설에 맡길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넓혔다”고 설명했다.
이어 “샤리테대학병원 의료진의 자녀는 해당 병원의 부설 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는 것 외에도 거주지역 인근 유치원에 자녀를 보낼 수 있다. 자녀가 다닐 유치원을 고르는 데 두 가지의 선택권이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나킨더가든 내 놀이공간. 3세 이하 아이들을 맡기는 ‘어린이집’과 그 이상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보내는 ‘유치원’이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취학 이전 아이들이 모두 이용하는 시설이 구비돼 있다. 김영철 기자
흐리스트풀로스 원장은 이나킨더가든에 등원하는 아이들의 부모 60% 정도는 맞벌이며, 최소 30%는 외벌이라고 했다. 대다수의 부모가 직장인인 셈이다. 하지만 이 부모 중 업무로 인해 자녀를 늦게 데려가는 부모는 없다고 했다.
부모의 근무시간과 아이의 하원시간을 맞추지 못해 등·하원도우미를 고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우리나라와 대조되는 모습이다. 예정된 시간에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오지 못해 한 달에 100만원 이상 등·하원도우미 비용으로 나가는 상황을 독일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는 “애초 부모의 근무시간을 고려해서 이나킨더가든에 아이를 보낼지 최종 결정한다”며 “간혹 5분 정도 늦는 경우는 있어도 유치원 운영시간에 지장을 줄 만큼 늦게 방문하는 부모는 없다. 나아가 근무시간 단축 없이 8시간 일하면서도 유치원이 끝나는 오후 5시까지 시간을 맞출 수 있는 부모도 있다”고 답했다.
yckim6452@heraldcorp.comfact0514@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