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물러날 줄 아는 용기
2023-07-31 11:09


대한변협의 법률플랫폼 ‘로톡’과의 분쟁에서 연전연패가 안타깝다. 1907년 한성변호사회가 창립된 이후 법률전문가단체가 기록한 전대미문의 참패일 것이다.

지금 대한변협은 사면초가에 빠져있다.

첫째, 변호사회 내부가 크게 분열되고 있다. 로톡 가입 변호사의 약 80%가 경력 10년차 이하라고 한다. 변호사로서 힘겹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기다. 대형 포털사이트를 비롯한 기존 매체의 광고비를 부담하기 버거워 대안으로 로톡을 선택한 변호사들이 상당수라고 한다.

로톡 가입 변호사들 역시 법률전문가로서 대한변협 회원들이다. 로톡 이용이 변호사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면 법률전문가들이 결코 4000명 가깝게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로톡 가입을 이유로 징계받은 당사자의 강력한 반발은 물론이고, 내부적으로 회원을 보호해야 할 협회가 오히려 초유의 대규모 회원 징계에 나선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납부하고 있는 회원들의 회비가 총 20억원에 이르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과 계속되는 소송비용으로 사용되는 것도 문제지만 로톡과의 법률분쟁에서 참혹한 연이은 패배는 법률전문가인 회원들의 자존심마저 손상시켰다는 비판도 크다.

둘째, 대한변협의 법률적 판단에 그동안 우호적이었던 기관들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대한변협의 로톡에 대한 형사고발에 대해 서울경찰청은 2021년 12월 31일 “혐의 없음” 불송치 결정을 했고, 현 대한변협회장이 공동 대표였던 직역수호변호사단의 고발 역시 2022년 5월 11일 서울중앙지검은 “혐의 없음” 불기소 처분을 했다.

헌법재판소는 2022년 5월 26일 로톡과 같은 법률플랫폼을 이용하는 변호사를 징계하는 내용을 신설한 대한변협 변호사광고규정 중 일부 조항에 대해 “과잉 금지원칙에 위반되어 청구인들의 표현의 자유와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면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변호사 광고 제한행위에 대해 시정 명령과 동시에 과징금 총 20억원을 부과하는 결정을 했다. 다만 검찰에 고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대한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의무 고발 요청 검토에 들어갔다. 이는 중소벤처기업부가 공정위에서 검찰에 고발하지 않기로 한 사건 가운데 중소기업에 미치는 피해나 사회적 파급이 클 것으로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 고발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지난 26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국회법제사법위원회에서 “로톡의 변호사법 위반은 이미 끝난 얘기”라고 말했다. 이는 “로톡은 광고형 플랫폼으로서 변호사법 위반이 아니다”는 2021년 8월 24일자 법무부 공식 입장 발표를 재확인한 것이다.

셋째, 정치권 역시 여야 모두 대한변협의 로톡 규제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 국민의힘 규제개혁추진단위원장 홍석준 의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플랫폼기업을 막는 것은 국가적 문제로, 윤석열 정부에서는 결코 ‘타다’와 같은 사례가 재연돼서는 안 된다”고 언론과 인터뷰했다.

변호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대한변호사협회의 광고 규제가 국내 법률플랫폼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변호사광고에 대한 규제권한을 변협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의 통과를 법제사법위원들에게 강력하게 요청했다.

넷째, 마지막 보루인 국민과 여론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대한변협은 로톡과 같은 법률플랫폼을 허용하게 되면 검증되지 않은 변호사에 의한 법률 서비스 제공, 광고비 추가로 인한 수임료의 대폭 인상, 국민의 선택권이 사기업에 완전히 종속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여론조사 결과와는 상당히 괴리가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리걸테크산업협의회의 의뢰로 2022년 4월 16일과 17일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102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법률플랫폼 활용에 긍정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약 70%에 이르렀다. 이것이 잘못된 조사라면 증거재판주의에 익숙한 법률전문가단체답게 대한변협은 이를 반박하는 객관적 결과를 제시하면 되는데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높은 긍정비율도 놀랍지만 더욱 눈여겨봐야 할 것은 아직도 국민의 80%가 “아는 변호사가 1명 이하”로서 변호사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아는 변호사가 1명도 없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조사한다면 로톡과 같은 법률플랫폼 이용으로라도 변호사를 찾아 법률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수요는 더욱 커질 것이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의 결사항전은 처절한 패배와 억울한 희생만 남길 뿐이다. 때론 물러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인간인 로톡 가입 변호사들과 싸우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챗GPT를 비롯한 법률 인공지능들이 소리 소문 없이 다가와 뒤통수에 총을 겨누고 있음을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사람의 애정으로 조언한다.

이찬희 변호사·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dingd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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