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팔도 잡지 마세요”…교권 사각지대 놓인 특수교사
2023-08-02 09:53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사거리 인근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선생님과 친구의 목과 팔에 자주 크게 상처를 내는 학생이 있었다. 보호자에게 이야기하니 ‘집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아니냐’ 하며 의심했다. 공격 행동을 막기 위해 팔을 잡았더니 ‘아이에게 정서적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팔을 절대 잡지 말고 선생님이 피하세요’라고 하더라. 팔을 잡으면 아동학대로 신고 당하게 될 것 같아 잡지 않고 아이들 대신 긁히며 견뎠다.” (충남 특수교사 A씨)

특수교사 노동조합으로 올해 상반기 접수된 교권 침해 상담 내용이다. 특수교사들은 장애학생을 가르치며 자주 폭행·상해 피해를 입는다. 단순히 장애 특성이 아니라 정도가 심각하거나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례도 많다. 하지만 특수교사들은 ‘당연한 일’이라는 편견 속에 교권 침해를 당하고도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2일 특수교사노조에 따르면 지난 1~6월 상반기 동안 교권 침해 관련 40여건의 상담이 들어왔다. 지난 한해 상담 건수가 50건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약 2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특수교사노조는 지난 2020년 3월 창립됐고, 교권 침해 상담 창구를 공식화 한 것은 작년부터다. 상담 기관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전국에서 교권 침해를 호소하는 특수교사들이 모여들고 있다.

장은미 특수교사노조 위원장은 “그동안 참아왔던 특수교사의 교권 침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며 “장애 아동이라 해도 일반 교사가 아닌 특수 학급 교사에게만 폭력 행동을 보인다면 의도적인 교육 활동 침해 행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비장애인 학교에서 근무하는 특수교사들의 피해가 심각하다. 교권보호위원회가 잘 열리지 않는데다 교보위가 열려도 장애로 인한 ‘공격 행동’인지, 고의적인 ‘교권 침해’인지 판단할 전문가가 학교 안에 없기 때문이다. 교보위는 학교장, 교원 위원, 학부모 위원, 지역 위원 등으로 구성된다. 장 위원장은 “전문가가 없으니 교권 침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특수교사 개인의 잘못이 돼 치료비 지원도 못 받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특수교사노조로 접수된 상담 사례에도 교사의 교보위 개최 요구가 묵살되는 경우가 다수 발견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특수교사 B씨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남학생에게 폭행을 당한 뒤 10일 병가를 썼다는 이유로 관리자로부터 폭언을 들었다. B씨는 “2년 동안 60차례 상해를 입었고 졸업을 몇달 앞둔 어느날 구타, 깨물림으로 옷이 찢어지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병가가 끝나고 출근하니 (관리자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맞는 건 특수교사의 숙명이자 운명이지. 특수교사로서의 자질이 없는 거다’라는 말을 30분 동안 쏟아냈다”고 제보했다.

서울의 또 다른 특수교사 C씨는 교보위 개최를 거절 당했다. C씨는 “교보위를 열어달라고 하자 교장, 교무부장, 학생부장 모두 묵살했다. 장애 아동에게 폭행 당한 사실을 학부모에게 직접 전달하기 어렵다고 말하자 제도가 없다는 이유로 (전달해 달라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폭행 상황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달라는 요청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다음 해 순회 교사로 발령났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특수교사를 위한 안전망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찬우 나사렛대 유아특수교육학과 교수는 “학생이 자해행동이나 공격하는 행동을 보이면 학생 본인의 안전과 주변 학생들의 안정을 위해 교사가 해당 학생을 안기도 하고, 그래도 안정이 안되면 심리안정실로 가는 경우도 있다”며 “특수교사는 학생들이 사회 안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문가다.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로 위축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망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기룡 중부대 중등특수교육학과 교수는 “일반 교사도 통합 학급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특수교사만의 문제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비장애인 학교 내 특수학급 설치, 장애인-비장애인 통합 학급 운영 등 통합교육이 강조되는 만큼 교사 전체의 문제로 봐야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이어 “교사와 학부모의 ‘갈등’으로 시야를 좁히지 말아야 한다. 교육 당국이 학교에 관련 인력, 설비 등 문제 행동과 의사소통 지원 등 책임을 다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며 “구조적인 문제를 분석하고 효과적인 지원 방안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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