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신현주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를 두고 “역사 쿠데타”라고 발언하는 등 공세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국민의힘은 별도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야당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에 더해 홍범도 논란을 빌미로 정부여당에 ‘친일’ 프레임을 씌우려고 하는데 여기에 대응해 일을 키울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당내에서도 “취지는 이해하지만 발표 시기 등 정무적 판단은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미 입장을 다 밝혔으니 그것으로 갈음하겠다”며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홍 장군 동상 논란 관련 질문에 “육군사관학교에서 입장이 나갔다”며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육군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을 교육하는 목표와, 동상이 설치된 인물들의 여러 이력을 평가해 학생들의 교육 목표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취재진이 당의 입장을 재차 물었지만 윤 원내대표는 “당론을 정할 사안이 아니다”, “육군사관학교 차원에서 판단하겠다고 했다. 우리 당은 지켜보겠다”고만 답했다.
지도부는 정부여당이 관련 입장을 이미 밝혔다고 주장하지만, 당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 국민의힘 대변인단은 지난달 25일 흉상 철거 논란이 불거진 후부터 지금까지 공식 논평을 통해 당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천막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국민의힘이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은 민주당의 정치공세를 차단하려는 의도다.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중도층 마음 잡기가 관건이라는 점을 의식한 판단이다. 다만 ‘총선 직후’에 해당 판단을 내리는 것이 정무적으로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의원은 “홍 장군이 독립투사였던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독립기념관에 홍 장군실을 따로 만드는 것은 찬성”이라면서도 “육군사관학교는 국가를 지키는 사람들을 양성하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를 (육군사관학교에) 앉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독립투사는 ‘일본’에 맞서 우리나라의 광복을 위해 투쟁했지만, 현재 우리 군은 ‘북한’을 적으로 둔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다만 원내지도부 의원은 “총선 끝나고 철거하지 않고 왜 지금 (철거를) 하려는 것이냐고 지적할 수 있는데 정무적으로는 성급한 것 아니냐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국민의힘은 지난해 윤석열 정부이 홍 장군을 예우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당시 수석대변인이었던 김형동 의원은 “일제 식민통치를 반대하며 호적 등록을 거부하고, 국외로 이주해 저항을 이어간 독립운동가들께서는 직계후손이 없어 대한민국 국적도 갖지 못했다”며 “지난 7월 윤석열 정부는 윤동주 지사, 장인환 의사, 홍범도 장군, 송몽규 지사 등 적(籍)이 없는 독립유공자 156명에 가족관계등록을 창설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독립유공자 한 분 한 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은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의 당연한 책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계속 ‘이념’을 강조하는 것은 정부여당 입장에서 자책골을 넣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정치권이 절대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 일제강점기 당시 역사다. 보수당이 중도층 공략을 위해 극복해야 하는 것 또한 친일 이미지인데 굳이 관련 논란을 우리가 스스로 촉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짚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28일 육사 교내 세워진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검토에 이어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대해서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청사 앞 홍범도 장군 흉상이 비를 맞고 있다. [헤럴드DB]
당내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이준석 전 대표는 지난달 29일 SNS에 “이 논란은 하루속히 접는 것이 좋다. 잘하는거 하자. 백지화”라며 홍 장군 흉상 이전에 반대했다. 이 전 대표는 “국정동력이라는 것은 유한하고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상황 속에서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운동가에게 모욕을 주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민생의 문제는 절대 아니고 심지어 이건 보수진영의 보편적인 지향점이라기 보다는 그저 일부의 뉴라이트적인 사관에 따른 행동”이라고 직격했다.
이 전 대표는 “공산주의자 논리가 비판을 받으니 이제는 ‘창군 이후의 사람만 남겨야 된다’라고 다른 필터링 기준을 제시하는 모양새지만, 그러면 해군사관학교에 창군과 관계 없는 이순신 동상은 무슨 기준에 따른 것인지 답해야 한다”고 비꼬았다.
여당 소속 김태흠 충남지사도 “홍범도 장군은 조국을 위해 타국만리를 떠돌며 십전구도했던 독립운동 영웅이다. 철 지난 이념논쟁으로 영웅을 두 번 죽이는 실례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 지사는 “이분이 6·25 전쟁을 일으켰던 것도 아니고 북한군하고 전쟁에 참여한 것도 아니고 이분이 돌아가신 것은 1943년”이라며 “광복 이전에는 독립운동에 좌와 우가 같이 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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