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아닌 러시아’ 선택한 김정은…일단 함구하는 북중러·판흔드는 한미
2023-09-06 10:18


지난 2019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회담을 앞두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로이터]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내주 러시아 방문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개최 사실로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김 위원장의 첫 해외 일정이 전통적인 우호국인 중국이 아닌 러시아라는 점이다.

그동안 북러 간 무기 거래 의혹을 제기하며 견제해 온 미국은 북러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먼저 공개하면서 국제사회의 압박을 집중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일종의 ‘김 빼기’다.

보안이 생명인 정상외교가 공식발표 전에 언론에 공개된 상황에서 북중러는 일단 관련 언급을 자제하며 함구하고 있다. 한미는 북러 무기거래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거듭 견제에 나섰다.

러는 전쟁 장기화·北은 국제사회 고립…‘이해관계’ 맞아떨어진 북러

북한이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기념일) 70주년인 7월27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연합)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전쟁 물자난을 겪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서방 국가의 우크라이나 지원과 반대로 고립된 러시아는 속수무책 상황이다.

국제사회의 경고로 중국도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쉽지 않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 2월 방송 인터뷰에서 “중국이 러시아에 살상무기 제공을 검토하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북한은 코로나19로 국경을 봉쇄하고 핵·미사일 도발에 따른 제재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미국과 패권경쟁을 하는 중국과 전략적 공조를 통해 외교적 고립을 돌파하려는 북한의 의지는 지난 7월27일 북한의 이른바 ‘전승절’(한국전쟁 정전협정체결일)에서 선명히 보였다.

다만 중러 대표단의 구성에서 차이는 선명했다. 러시아는 북한의 ‘전승절’에 정부 인사를 최초로 파견한 데다 전쟁 중인 상황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단장으로 직접 방문했다. 반면 중국은 10년 전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 부주석을 파견했으나 이번에는 리훙중(李鴻忠)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을 파견하면서 대표단 급을 낮췄다.

오랜 전통국이자 경제분야에서 절대적으로 의존(2022년 북한의 대중의존도 96.7%)하고 있는 중국의 상황은 만만치 않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선명한 외교노선은 한미일 정상회의의 정례화로 이어졌고,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 요구는 거세지고 있다.

더욱이 중국 경제상황도 ‘위기론’이 나오고 있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리더십에 국가 원로들의 지적이 나오는 등 대내외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서방국가의 제재와 국제사회의 고립이라는 북러의 현 상황과 위기의식이 양국의 일치된 이해관계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탄약을 대가로 위성과 핵추진잠수함을 위한 첨단 군사기술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이 방러 기간 러시아 우주시설인 보스토치니 기지를 방문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러시아는 북한에 연합군사훈련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있는데, 현실화 될 경우 한미일 연합훈련에 북러, 중러 연합훈련이 맞대응하는 구도가 형성될 우려가 나온다.

‘우크라 전쟁에 영향 끼칠라’…美, ‘김정은 방러’ 선제 공개하며 판 흔들기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

김 위원장의 방러와 북러 정상회담 가능성을 처음 보도한 매체가 뉴욕타임스(NYT)라는 점, 미국 정부가 제3국 정상 외교 일정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사실을 확인한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은 그동안 북러 간 무기거래 의혹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백악관은 지난해 12월 북한이 러시아 민간 용병회사 바그너그룹에 로켓과 미사일을 전달하는 정황을 공개했고, 지난 3월에는 북러 무기 협상 첩보를 공개했다. 지난달 30일에도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친서 교환 사실을 공개했다.

백악관은 5일(현지시간) 북한이 “우리는 러시아와 ‘무기거래’를 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2022년 11월8일 북한 국방성)는 입장을 밝힌 점을 주지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정례 브리핑에서 북러 무기거래가 현실화 된다면 “그들은 국제사회에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위원장의 방러 예상 동선이 공개된 것도 정교하게 계획된 선제 전략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보안과 경호상 문제가 생긴 것이다. NYT는 미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평양에서 장갑열차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극동연방대학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EEF)에 참석하고, 모스크바 방문 가능성도 보도했다.

고립된 북러와 달리 중국의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하는 언급도 나왔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는 전날 한국외교협회와 최종현 학술원이 공동 개최한 초청 연설에서 북러와 달리 중국은 “자국의 이해관계가 있다”면서 “북러 관계는 중국과의 삼각관계가 아니라 (북러가 고립됐다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韓안보당국 “예의주시”·북중러는 함구…북중러 정상회담 가능성도 거론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8월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

대통령실과 안보당국은 백악관과 공조 하에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전날 김 위원장의 내주 방러 사실에 대해 “현재로서는 (김 위원장이) 갈 계획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고, 국정원은 “김정은이 조만간 방러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5일 정례 브리핑에서 어떤 유엔 회원국도 불법 무기거래를 포함한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위반해서는 안 된다“며 ”(북러 간) 연합훈련 시 관련 안보리 결의 위반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중러는 김 위원장 방러 및 북러 정상회담과 관련해 우선 함구하고 있다. 러시아 크램린궁의 드리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우리는 이에 대해서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북한은 별도의 담화 없이 조용하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북중러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현재 제공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고 밝혔다.

2015년부터 연례적으로 개최되는 동방경제포럼은 러시아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극동지역 개발을 목적으로 러시아와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 간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되는 국제회의다.

2017년에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참석했고 2018년에는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2019년에는 홍남기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참석했었다. 올해 우리 정부에서는 실무자급이 참석할 것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2018년 참석했고, 2021년에는 화상으로 참석했다.



silverpaper@heraldcorp.com



랭킹뉴스


COPYRIGHT ⓒ HERALD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