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폐막 후 기자단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EAP]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공동선언 도출이라는 예상 밖의 성과를 내면서 이번 합의를 이끌어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정상회의의 최대 ‘승자’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빠진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과시한 모디 총리가 이번 회의를 계기로 미국과 서방의 ‘믿을 수 있는 파트너’로서 자리매김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G20 정상회의가 막을 내린 10일(현지시간) 외신들은 인도가 글로벌사우스(남반구 신흥국·개발도상국 그룹)의 리더이자 국제사회 분열을 해소할 중재자로서 입지를 크게 넓혔다고 일제히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시진핑이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한 것은 ‘인도의 순간’을 거부하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면서 “인도는 가장 어려운 문제였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전했다.
로이터 역시 유럽연합(EU)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인도의 (G20)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은 매우 강력했다”면서 “인도의 지도력이 없었다면 (공동선언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G20 회원국들은 공동선언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공정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촉구한다면서 “유엔 헌장에 따라 모든 국가는 어느 국가의 영토 보전과 주권, 정치적 독립에 반해 영토 획득을 추구하기 위한 무력 사용이나 위협을 자제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10일(현지시간) 주요20개국(G20) 정상들이 마하트마 간디 기념관에 도착한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앞서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UPI]
전문가들은 이번 회의에서 공동선언을 도출한 자체만으로도 인도의 존재감이 확인됐으며, 인도의 부상을 이용해 중국과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미국과 서방도 소기의 목적을 이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인도 싱크탱크 마노하르 파리카르 국방연구소의 스와스티 라오 연구원은 “이번 합의 자체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문제로 극심하게 분열된 세계의 신뢰할 수 있는 지렛대로서 인도의 역할을 공고히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모디 총리는 이번 회의에서 아프리카연합(AU)을 회원국으로 끌어안으며 G20 내 인도의 영향력을 키우고, 기후 변화·신흥시장 부채 등의 이슈를 주도하는 등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자국 내 이미지도 한껏 높이는 데 성공한 모습이다.
CNN은 “내년 총선을 앞둔 모디에게 이번 정상회의는 스스로를 빛내는 기회가 됐다”고 전했고, 파이낸셜타임스(FT)도 G20 정상회의가 내년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9일(현지시간)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 총재(왼쪽부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함께 손을 잡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
미국 역시 시 주석의 ‘공백’을 틈타 대중 견제망 강화라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회의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와 중동·유럽을 잇는 철도·항만 연결 프로젝트인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 구상을 발표했다.
사실상 중국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에 ‘도전장’을 내민 것으로, 무엇보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국이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중동이 이번 경제 회랑 프로젝트에 동참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여기에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의 기간동안 인도계 미국인인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WB) 총재와 모디 총리,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등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브릭스(BRICS) 정상과 함께 개도국 지원을 위한 논의의 장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역시 브릭스를 통해 정치·경제 영향력을 키우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라오 연구원은 “중견국들은 다극화된 세계 경제 질서를 유지하기를 원한다”면서 “세계를 지배하려는 중국의 의도에 동참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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