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시론] 2050년 한가위의 미래
2023-09-11 11:30


“아무리 가난한 벽촌의 집안에서도 예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며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놓는다. 그래서 말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라고 한다.”

조선 시대 세시풍속을 기록한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에서 8월 중추절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다. 이렇듯 오래전부터 한가위는 우리 민족에게 풍성함을 상징하는 명절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풍성하게’라는 한가위의 의미가 넘칠 정도로 가득하게 먹거리를 준비하라는 것처럼 잘못 해석되는 것 같다.

추석 전까지는 ‘명절음식 만들기’ 콘텐츠가 급증하다가 추석 직후에는 ‘추석음식 재활용, 먹고 남은 명절음식 보관법’ 등의 정보가 쏟아져 나오곤 한다. 실제로 설날, 추석 등 명절 때가 되면 음식물쓰레기가 평소보다 급증한다. 환경부 분석 결과, 명절에는 음식물쓰레기가 평소보다 약 20%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에서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가 매일 평균 1만3000t 이상인 것을 고려하면 이번 추석 연휴 얼마나 많은 음식물쓰레기가 배출될지 추정이 가능하다.

음식물 낭비를 줄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사전에 소비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오랜만에 가족과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에 다양한 음식을 나눠 먹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필요 이상으로 구매하기 쉽다. 어떤 음식을 얼마나 만들지 미리 계획하고 필요한 식재료를 구입해야 낭비를 막을 수 있다.

먹거리를 구매할 때 포장이 간결한 상품을 고르는 습관도 필요하다. 과대 포장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포장재가 다양해지면서 이로 인한 환경오염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판매자들의 변화도 중요하겠으나 소비자들의 선택을 통해 포장재 남용을 막는 것도 탄소배출을 절감하는 방법이다.

음식물 낭비를 막는 기술에도 관심이 필요하다. 미국 푸드테크기업 린패스는 카메라와 스마트저울을 이용해 버려지는 음식물을 수치화해서 보여줬고, 이를 구내식당 등에 적용한 구글은 5년간 2.7t 이상의 음식물쓰레기를 줄일 수 있었다. 음식물이 어디서 얼마나 낭비되는지, 돈으로는 얼마인지 직접 확인하고 나자 사람들의 행동이 변화한 것이다. 이외에도 식품 가공 시 발생하는 부산물,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식재료 등을 다른 식품으로 재탄생시키는 푸드업사이클링이나 미생물을 활용한 비료 개발, 대체육이나 배양육 개발 등은 탄소배출 절감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영역이다.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음식물로 인해 배출되는 온실가스량은 연간 885만t에 이른다. 국내 전체 승용차의 18%가 배출하는 탄소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우리는 올해 여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폭염과 산불을 통해 탄소배출로 인한 지구 온도 상승이 얼마나 심각하며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지구온난화에 의해 농산물 수확량이 급감하고 인류 전체가 식량난에 봉착할 수 있다는 2050년까지 앞으로 30년도 남지 않았다. 탄소배출이 현재 수준으로 계속된다면 우리 다음 세대는 한가위를 ‘풍성하게’가 아니라 ‘암울하게’ 맞을 수밖에 없다. 다음 세대도, 그다음 세대도 풍성한 한가위를 누리기 위한 답은 ‘저탄소 식생활 실천’에 있다. 우리 자신의 건강과 미래 세대의 희망을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실천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osky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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