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로봇인 에이트키친이 주방에서 파스타를 조리하고 있다. 전새날 기자
[헤럴드경제=김희량·전새날 기자] 파스타를 만드는 ‘셰프’가 열심히 움직인다. 움직이기 시작하자 진한 토마토 향이 주방을 채운다. ‘알리오 올리오(4분 30초)’도, ‘베이컨 크림 리조또(7분)’도 거뜬한 이 셰프는 통돌이 모양을 한 조리로봇 ‘에이트 키친’이다. 세척도 알아서 한다. 걸리는 시간은 단 1분, 세제 없이 고온·고압 세척이 끝나면 다음 메뉴를 곧바로 조리한다. 조리 후 그릇 받침대에 음식을 부을 때가 되면 ‘사람’ 직원이 등장한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양식 전문점 알엔에서 로봇팔이 주문 받은 치킨을 튀기고 있다. 전새날 기자
12일 헤럴드경제가 방문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양식 전문점 ‘알엔’은 마치 다가올 미래를 먼저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우선 사람보다 로봇이 더 분주했다. 이곳에서는 주방 직원의 역할이 ‘조리’가 아닌 ‘관제(管制)’에 더 가깝다. 직원들은 각각 파스타 로봇, 치킨 로봇을 관리하고 포스·카페를 책임지는 인력, 총 3명으로 로봇 수의 절반이다.
파스타·리조또를 만드는 통돌이 모양 ‘에이트 키친’ 5대, 치킨을 담당하는 로봇 팔 1대가 있는 이 매장은 하루 평균 150그릇의 파스타·리조또, 80마리의 치킨을 내놓는다. 에이트 키친은 메뉴별 통이 돌아가는 회전 수와 재료에 닿는 열들을 조절해 고기와 야채가 동시에 조리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메뉴의 가격대는 1만원 초중반대를 형성한다. 실제 기자가 맛본 음식들은 겉으로 봤을 때와 맛 모두 로봇이 만들었는지 알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양식 레스토랑 알엔에서 소비자들이 식사하고 있다.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조리로봇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새날 기자
조리로봇들이 만든 치킨, 파스타 등 메뉴들의 모습. 전새날 기자
80%가 배달로 운영되는 12~13평 규모인 알엔은 올해 4월 오픈한 곳으로 지난달 기준 6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중 인건비 비중은 10% 초반대이다. 알엔을 운영하는 크레오코리아 관계자는 “외식업계 평균 인건비 비중이 25~30%보다도 적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알엔은 조리로봇을 생산하는 푸드테크 스타트업인 크레오코리아가 연 두번째 매장이다. 일반적으로 로봇제조사가 생산과 납품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이 업체는 매장까지 열었다. 첫 매장은 지난해 서울 성수동에 오픈한 ‘파일론 성수’라는 배달 전문점이다. 직접 매장을 운영하는 이유에 대해 이날 본지와 만난 최현우 크레오코리아 디렉터는 “처음에 저희가 이런 로봇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진짜 장사를 하고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믿어주는 분들이 없었다”면서 “개발단계에서 밤새 테스트하면서 ‘된다’는 확신이 들어 열게 됐고 지난해부터 업계에서도 관심을 주시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알엔 주방 내 배치된 조리로봇 에이트키친의 모습. 총 5대의 에이트키친는 하루 평균 150그릇의 파스타를 생산할 수 있다. 전새날 기자
이들은 가게를 직접 내기 전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치며 조리의 완성도를 높였다. 2개월 정도 레스토랑을 빌려 셰프의 감독하에 효율성 테스트를 진행한 것이다. 크레오코리아에 따르면 해당 조리로봇의 효율은 1대 당 조리인력 2.5명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인건비 대신하는 로봇 비용을 회수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로 크레오코리아는 보고 있다.
배달 100%인 1호점의 경우 직원 1명이 일하는 실평수 6평 정도 공간에서 시간당 파스타 30그릇을 생산하고 있다. 크레오코리아는 연내 순대볶음, 떡볶이, 덮밥, 닭볶음탕 등 한식 배달 전문 3번째 매장과, 셰프와 조리로봇이 함께 일하는 파인다이닝 형태의 4번째 매장을 구상하고 있다.
조리로봇을 제작한 후 외식 매장까지 운영하는 크레오코리아의 박성철 디렉터(왼쪽)와 최현우 디렉터(오른쪽)가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새날 기자
이들이 서빙로봇, 키오스크에서 더 나아가 주방 조리로봇을 개발하게 된 이유는 외식 창업의 문턱을 낮추면서 외식업계 구인난을 해결할 대안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외식업체 5곳 중 3곳은 구인난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2023년 1분기 외식산업 인사이트 리포트’에 따르면 현재 직원을 고용 중인 업체 1907곳 중 60.8%는 ‘직원 채용이 어렵다’고 응답했다. 코로나19 사태 전 41.63%보다 더욱 심화됐다.
박성철 크레오코리아 디렉터는 “지금의 매장들은 배달, 경영, 조리까지 신경 써야 해 사장이 바빴는데도 망할 수 있는 구조”라며 “라면밖에 못 끓이는 사람도 창업을 하고 조리 노동의 전반적인 강도를 낮추기 위한 솔루션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크레오코리아는 인건비 대비 효율을 고려해 양식을 매장의 첫 메뉴로 선택했다. 최 디렉터는 “원재료는 2000~3000원대이지만 1만5000원 내외로 팔리는 메뉴가 파스타였다”면서 “불 앞에서 셰프들이 8분 이상 조리하기엔 공간이나 시간이 제한적이어서 로봇이 이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앞으로 조리로봇이 만든 음식을 자동 포장해 배달로봇이 배송까지 하는 단계까지 바라보고 있다. 최 디렉터는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오피스텔 건물 내 식당에서 마치 룸서비스처럼 주문·조리·포장·배달까지 연결 짓는 미래형 주방까지 기술을 개발하는 게 저희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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