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지하철보안관의 사법경찰권, 국회가 나설 때
2023-09-26 11:14


서울 시민의 발이 불안하다. 최근 ‘묻지마 흉기 난동’에 이어 지하철역, 전동차 내 살인을 예고하는 온라인 게시물이 올라오고, 실제 흉기 상해 사건이 발생하는 등 안전 위협이 커지면서다. 정부와 서울시, 지하철 당국이 각종 안전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현장에 상주하는 지하철역 직원이 사고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더 강력한 법적 권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구체적으로 지하철 내 치안을 담당하는 지하철보안관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이들에게 사법권을 부여하는 방안(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을 추진해왔지만 지하철경찰대와 역할이 중복된다는 등의 이유로 논의는 10년째 공회전이다.

현행법상 지하철보안관을 비롯한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임직원은 사법경찰권이 없어 법 집행권은 일반시민과 다를 바 없다. 2011년 도입한 지하철보안관은 안전보호장비를 갖춘 뒤 2인1조로 열차에 탑승해 이상 행동자를 발견하며 제지하는 역할을 하지만 위험물품 제출 요구와 같은 적극적인 대처를 할 수 없다. 지급받은 방패, 호루라기, 방검장비로 시민과 자신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가스총이 있지만 사용 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부담 탓에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최근 종로3가역 승강장에서 60대 남성이 70대 후반 노인을 상대로 욕설과 무차별 폭행을 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이를 목격한 2명의 지하철보안관이 사태 수습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이들은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15분간 이 남성으로부터 발차기를 비롯한 폭행과 폭언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 내 이상 행동자가 이를 제지하는 직원에게 “경찰도 아니면서 사법권도 없는데 왜 참견하냐” “몸을 건드리면 폭행죄로 고소하겠다”며 되레 협박하거나 조롱하는 일도 잦다고 한다.

시는 최근 지하철보안관 269명을 범죄 순찰과 예방업무에 집중적으로 투입한다고 밝혔으나 강력 범죄 예방 효과는 미미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시와 공사는 법 개정을 여러 차례 법무부와 국회에 건의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그간 국회에서 여러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으나 법 개정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반짝 논의에 그쳤다. 올해 4월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 등 국회의원 11명은 사법경찰직무법 일부 개정안을 다시 제출했다.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앞뒀다. 공사는 하루 70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도시철도 특성을 고려해 큰 사고를 막기 위해 직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것은 공익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법 개정이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한다.

대형 사고 발생 전 수많은 작은 사고나 징후가 이어지는 것을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이라고 한다. 1931년 미국 트래블러스 보험사에서 근무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가 ’산업재해 예방-과학적 접근’이라는 제목에서 소개해 널리 알려진 법칙이다. 늦었지만 더 큰 사고를 막기 위해 지하철보안관들에게 사법권을 부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하철보안관의 사법경찰권, 이제 국회가 나설 때다.



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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