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사기 가담 알 수 없었다면 계좌주인에 반환책임 못 물어”
2023-10-05 08:59


[헤럴드 DB]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실제 돈을 빌려간 사람의 사기 범행에 입금계좌 주인이 가담했다고 주장하며 돈을 달라고 소송을 낸 원고가 패소했다. 법원은 돈을 실질적으로 빌린 사람에게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전제하더라도, 입금계좌 주인이 사기 범행에 가담했다고 인정하기 어렵거나 범행을 용이하게 한다는 예견가능성이 없었다면 반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주지법 민사5단독 이창섭 부장판사는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대여금 소송에서 지난달 6일 원고 패소 판결했다. 판결은 지난달 28일 그대로 확정됐다.

A씨는 지난해 6월 B씨를 상대로 464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C라는 인물이 변제 의사나 능력이 없는데도 계금 및 차용금 명목으로 돈을 빌렸고, 자신은 C씨 요청으로 B씨 계좌에 돈을 입금했는데 B씨가 C씨의 불법행위에 가담해 계좌를 대여했다고 주장했다.

설령 B씨가 C씨의 사기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지 못하고 계좌를 대여했다고 해도, 과실에 의한 방조에 해당해 C가 가로챈 4640만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B씨가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도 폈다.

민법은 760조에 ‘공동불법행위자의 책임’을 규정한다. 760조 1항은 여러 사람이 공동의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연대해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정하고 있는데, 3항에선 교사자나 방조자는 공동행위자로 본다고 규정한다.

이 부장판사는 전자금융거래를 매개로 이루어진 개별적 거래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접근매체(계좌)를 대여한 명의자에게 과실에 의한 방조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기 위한 요건을 대법원 판례를 들어 설명했다. 이 부장판사는 “대여 당시의 구체적 사정에 기초해 접근매체를 통해 이뤄지는 개별적인 거래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점과 그 불법행위에 접근매체를 이용하게 함으로써 그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점을 명의자가 예견할 수 있어 접근매체의 대여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 부장판사는 이 사건에서 “B씨가 자신의 은행 계좌를 C씨에게 대여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며 “B씨가 C씨에게 자신의 계좌를 대여한 사실과 증거 등에 비춰 보면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이 부장판사는 C씨와 관련해 아직 기소나 재판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설령 C씨에게 A씨가 구하는 금액에 관해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전제하더라도, A씨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B씨가 C씨의 사기 범행에 가담해 계좌를 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B씨가 과실로 C씨의 사기 범행에 이용될 것을 예견하지 못하고 대여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B씨의 접근매체를 매개로 이뤄진 A씨와 C씨 사이 개별적 거래가 사기 범행에 해당한다는 점과 그 사기 범행에 계좌를 이용하게 함으로써 사기 범행을 용이하게 한다는 점을 B씨가 예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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