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진료계약 맺고 월급받으며 일한 ‘페이닥터’는 근로자일까
2023-10-08 09:23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계약 형식은 ‘위탁진료계약’이어도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근로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면 이른바 ‘페이닥터’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8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지난달 21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혐의를 받는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서울시에 있는 의원의 대표로, 상시 근로자 6명이 있는 보건업(일반외과 등)을 경영하는 사용자다. 사용자는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 그 지급사유가 발생한 때부터 14일 이내에 임금 등을 지급해야 하는데, A씨는 2017년 8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의사로 근로한 B씨 퇴직금 1400여만원을 퇴직일로부터 14일 내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유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B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는 “B씨는 의원으로부터 위탁받은 진료업무를 이행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내용의 위탁계약을 체결했다”며 “그 계약서에는 ‘B는 근로자가 아니므로 노동관계법과 관련한 부당한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기재가 명백히 돼 있다”고 밝혔다.

이어 “B씨에 대한 취업규칙이나 복무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았고, B씨는 자신의 진료업무수행과 관련해 A씨로부터 어떠한 지시나 감독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A씨로서는 B씨가 진료업무를 적절히 수행하지 않는 경우 위탁계약에 기한 권리(계약해지, 손해배상 청구)만을 행사할 수 있을 뿐 B씨에 대한 징계 권한이 없었고, 오히려 B씨가 병원 원무과장을 통해 간호사 해고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B씨에 대한 연차 등 휴가규정이 따로 없고, B씨가 휴가로 진료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 자신이 직접 대체의사를 구해 진료업무를 대행하게 한 점 ▷위탁계약서에는 B씨가 A씨로부터 매월 보수를 지급받도록 돼 있으나 영업이익 적자가 발생해 보수를 지급하는 게 현저히 어려울 경우 보수를 조정하거나 지급기일을 연기할 수 있도록 정한 점 등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그러면서 “B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전제로 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그 증명이 없어 무죄라 할 것임에도 이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오인의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시 판단을 뒤집고 A씨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A씨가 과거 또 다른 의사 C씨의 임금 미지급을 이유로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가 정식 재판을 청구해 벌금 200만원이 최종 확정된 사실이 있는 점을 우선 근거로 들었다.

그 이후 A씨는 공인노무사 도움을 받아 위탁진료계약 형식의 계약서를 제공받아 노무관계를 해결해 오다가 B씨와 계약을 체결했는데 B씨는 매월 600만 원 및 현금 135만원을 고정적으로 받았은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또 근무시간이 일정했고, B씨가 월 1회 상호 조정 하에 진료업무 수행의 현황 및 실적을 A씨에게 통지해야 했던 점, 의원을 사업장으로 한 건강보험 가입신고가 된 점 등을 토대로 B씨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계약의 형식이 위탁진료계약이라고 하더라도 이 사건 계약 내용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B씨가 정해진 시간 동안 이 사건 의원에서 진료업무를 수행하고 A씨는 B씨에게 그 대가를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라며 “A씨는 B씨의 근무시간 및 근무장소를 관리하고 B씨 업무에 대해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비록 진료업무수행 과정에서 A씨로부터 구체적, 개별적인 지휘⋅감독을 받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나 이는 의사의 진료업무특성에 따른 것이어서 B씨의 근로자성을 판단할 결정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며 “원심의 판단에는 B씨의 근로자성에 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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