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에서 패배하는 것 다음으로 비참한 것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영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아서 웰즐리(1769~1852)는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상대로 힘겨운 승리를 거뒀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성취감도 잠시, 주변의 동료와 부하, 병사들의 희생을 보고 오히려 큰 슬픔을 느끼며 이 같은 명언을 편지에 썼다. 전쟁은 승리한 자들에게도 마음의 상처를 남길 만큼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셈이다.
실제로 전쟁의 파급력은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광범위하다. 웰즐리가 참전한 워털루 전투만 봐도 프랑스군 전사자만 4만명, 전쟁에 승리한 영국군과 프로이센군도 각각 1만5000명과 7000명이 사망에 이르렀다.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퇴진하며 다시 왕정으로 돌아갔고, 프랑스혁명으로 인해 전 유럽으로 확산한 민족주의와 자유주의는 각국에서 탄압받기 시작했다. 전쟁은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을 겪는 개인적 불행부터 정치 체계의 격동, 전 유럽의 사회적 분위기 변화 등 곳곳에 방대하면서도 촘촘하게, 그리고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예술 역시 전쟁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분야 중 하나다. 전쟁이 주는 커다란 충격은 외부 세계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예술가들의 섬세한 촉수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스페인 궁정작가였던 프란시스코 고야는 다양한 작품에서 군인 대신 전쟁의 피해자를 부각시켜 전쟁 회화의 판도를 바꿨고, 마네는 작품 ‘멕시코 황제 막시밀리안의 처형’에서 전쟁의 폭력성을 사실적으로 담았다. 피카소는 그의 작품 ‘게르니카’에서 가해자인 나치군은 화폭에서 빼버리고, 학살 당한 피해자들의 고통과 혼란만 그렸다.
이처럼 전쟁이 예술사적 흐름을 바꿀 정도의 혁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해도 전쟁에 대한 현대 예술인들의 기조적인 의견은 “전쟁 위에 예술은 없다”는 것이다. 전쟁이 예술가들의 섬세한 촉수를 건드려 십수년 혹은 100년 이상 걸릴 예술사적 변혁들을 일순간에 해낼 수 있게 한다 해도 예술 역시 전쟁으로 인한 상흔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견디기 힘든 아픔이자 좌절인 탓이다.
심지어 전쟁은 몇 세기 동안 쌓아 온 공든 탑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중동 지역의 잦은 전쟁으로 인해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등 55곳의 세계 문화유산이 위험에 처한 상황이고, 러시아의 음악가, 발레단, 공연 등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이유로 모두 취소되거나 중단됐다. 전 재산을 기부해 젊은 예술가들 지원했던 우크라이나 작가 아르힙 쿠인지의 ‘쿠인지미술관’은 지난해 러시아 폭격으로 파괴됐고, 미술관에 있던 그의 작품은 모두 약탈당했다.
예술은 전쟁의 역사를 기록하고, 때로는 그 참혹함을 드러내 비판하며, 어떤 예술은 전쟁을 옹호하는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고귀한 존재라 해도 생명을 짓이기는 파괴하는 현장 위에 설 수 없고, 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1년 이상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도, 이제 막 이스라엘을 침공한 팔레스타인도, 그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기에 안타깝고 또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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