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파트2가 병자호란후 조선포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이유[서병기 연예톡톡]
2023-10-17 17:18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MBC 사극 ‘연인’ 파트2는 시작부터 병자호란후 조선인 포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11~12회 전체를 이렇게 무거운 포로 문제를 주제로 다루었는데도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끌 수 있었다.

병자호란후 10만명이 넘는 조선인 포로들의 처참한 모습들을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는 위정자들의 오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지피지기 하지 못한 외교가 얼마나 비참한 상황으로 이어지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역사적 사례다.

당시 포로는 전쟁 포로를 보호해 주는 제네바 국제협약이 있을 리 없다. 이긴 자의 마음대로다. 포로들은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홍타이지는 1627년 정묘호란과 1637년 병자호란을 각각 일으켰다. 정묘호란으로 몸을 풀고, 10년후 메인 게임을 일으켰다. 조선은 10년간 이에 대한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청태종인 홍타이지는 포로를 다각도로 이용해먹었다. 국호를 후금에서 청으로 바꾸며 대국(大國)의 위용을 갖추려고 했다. 그는 명나라와 몽골을 자주 공격했고, 조선도 침략해 한족, 몽골족, 조선족의 포로들을 잡아갔다.

국가의 영토가 넓어지면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지배력을 유지시키기 힘들다. 인구가 많아야 한다. 국경선을 그어놓기만 해서는 안된다. 이는 스탈린이 1937년 텅텅 비어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고려인을 강제 이주시킨 사례와 유사하다.


홍타이지는 일부 튼튼하고 힘 센 포로는 자국 군인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대다수는 건설 현장 사역에 동원하는 노동력이기도 했다. 특히 포로는 돈을 받고 판매하는 재산으로서 의미가 강했다.

조선인 포로들은 굴비 엮듯 잡혀가며 심양(瀋陽, 선양)에 도착할 때까지 60여일동안 옷을 갈아입을 수 없었다. 비위생적인 상황으로 인해 죽은 포로들도 많을듯 싶다. 걷지 못하면 밧줄을 풀어 죽여버린다,

‘연인’에서 유길채(안은진 분)는 도망친 조선의 포로들과 함께 끌려가던 중 몸종 종종이(박정연 분)가 지쳐 쓰러지기 직전임을 발견했다. 이대로 라면 종종이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 유길채는 품고 있던 노리개로 송환 담당자에게 거래를 제안, 종종이를 수레에 태우는 기지를 발휘해 종종이를 살렸다.

홍타이지는 포로의 쓰임새를 미리 구상하고 실행에 옮겼다. 조선인 포로들 중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도망치는 자는 할 수 없지만, 일단 압록강을 건너고나면 도망을 쳐도 조선 조정이 다시 잡아 청국에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의무화했다.

이 때문에 도망쳐 탈출한 피로인(被擄人)들을 잡아서 청으로 돌려보내고, 돈을 받는 포로사냥꾼이 존재했다. 극중 이청아(각화 역)가 겉으로는 그런 포로사냥꾼인데, 미스터리한 모습으로 구체적인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많은 조선의 포로들이 죽을 고비를 넘어 고향인 조선으로 돌아갔지만, 청나라는 포로로 잡혔다가 도망쳐 온 포로를 의미하는 주회인(走回仁)을 송환할 것(박송 縛送)을 계속 독촉했다. 유길채도 도망온 포로를 자기 집의 머슴으로 고용한 사실이 발각돼 청나라로 잡혀왔다.

탈출한 포로들은 다시 청으로 끌려가서 발뒤꿈치를 잘리는 혹형을 당했다. 아킬레스건을 자르는 형은 너무나 가혹하다. 그래서 돌아가지 않으려고 자결하거나 스스로 작두로 손가락을 자르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청의 압박에 인조(김종태 분)는 다음과 같은 탄식과 함께 백성들에게 도망온 포로들을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긴 문장들을 종합하면, “힘들겠지만 청나라에서 시킨 대로 하거라”다. 그러면서 자신의 본심을 알아달라고 한다.

“도망간 노비를 찾아서 주인에게 돌려보내는 ‘쇄송’ 일로 또다시 온나라가 놀라움에 떨고 있다. 우리 백성이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했지만, 남한산성 조약이 엄중함을 어찌 알았겠는가.

도망한 포로를 결박하여 보내는 일을 도적을 대하듯 하니, 목 매어 죽기도 하고 심지어 수족을 잘라 이별을 미루려는 자도 있다.

게다가 관리들이 엄한 독촉에 쫓겨 친척을 거짓으로 잡아가고, 게다가 조정에서는 일일이 반대할 수 없어 원통함을 알고도 사지로 끌려가는 실정이다.

이번 일을 당한 백성들이 아무리 나를 꾸짖고 원망을 한다 해도, 이는 나의 죄이니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허나 나의 본심을 알아주고, 흩어지거나 명을 어길 생각을 품지말고, 우리 200년 종묘사직이 한가닥 명맥이나마 이을 수 있도록 하라. 이것이 나의 소원이다.”

인조는 참으로 종묘사직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심양에서는 수시로 인간시장이 열려 포로의 이목구비 등 몸을 보여주며 가격을 불렀다. 포로가 노예이자 상품이다. ‘연인’에서도 이런 모습이 그대로 나갔다. 여성 포로들도 주인이 계속 바뀌는데, 운이 좋으면 청나라 관리의 첩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청나라 관리의 본처나 또 다른 힘 있는 첩의 투기와 질투로 혹독한 고생을 치러야 했다.

11회에서 조선 포로사냥꾼 윤친왕의 애첩 화유(유지연 역)는 “감히 왕야 앞에서 꼬리를 쳐?”라고 말하며 포로 수향에게 끓는 물을 머리에 퍼붓는 악랄함을 보였다. 화유는 길채에게도 뜨거운 물이 끓고 있는 솥 안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가 하면, 손가락을 자르려고 하는 험한 일들을 일삼았다.

동시에 청나라는 포로로 돈을 벌기 위해 속환(贖還)을 독촉하는 작전을 썼다. 속환은 포로 몸값을 주인에게 지불하고 데려오는 것이다. 그런데 청나라 주인이 속환가를 수시로 올려 포로 가족들을 애태우게 했다. 한양에서 출발할 때보다 심양에 도착한 후의 속환가는 훨씬 더 뛰어있었다. ‘연인’에서는 딸을 찾기 위해 땅을 팔아 돈을 마련해왔지만, 속환가가 폭등한 사실을 알고 좌절하자, 딸이 자결하면서 아버지에게 돌아가시라고 말하는 사례가 나왔다.

포로 장사꾼은 길채에게 “부모가 자식을 찾아오고, 자식이 부모는 찾아왔지만, 서방이 아내 찾으러 온 적은 없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연인’ 12회 말미에는 조선 포로들의 처참한 삶과 생명력, 그 안에서 각성하는 소현세자(김무준 분)의 이야기가 살짝 나온다. 소현세자는 포로시장의 처참함에 구토하며 좌절했지만, 이장현(남궁민)은 멘탈을 챙기고 “끝까지 버티소서”라고 말한다.

소현세자가 정신력을 갖추고 나면, 살아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장현이 제공한다. 홍타이지(김준원 분)는 소현세자 일행에게 식량 제공을 중단했다. 직접 농사를 지어서 식량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소현세자는 농사 한번 안 지어본 신하들을 데리고 뭘 하겠는가 하고 실망했지만, 어릴 때 아버지가 농부들을 지휘하며 농사를 주관하는 걸 봤다는 강빈(전혜원 분),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농사 일을 한 사람들(프로페셔널)이라며 늙은 포로들을 사온 이장현 등이 있어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연인’은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동시에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타개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함께 보여준다.

갖은 고생을 하며 수치를 견디고 농사를 일궈내 살아남는 조선인 포로들의 모습, 그래서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일. ‘연인’은 전쟁사이자 사회경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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