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합정동의 한 돈까스집 앞 주택에 붙어 있는 팻말. ‘골목에서 나가세요’라고 적혀 있다. 박지영 기자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일행과 대화하지 마세요. 골목에서 나가세요. 당신들의 작은 소리도 집 안은 큰소리로 울립니다.”
24일 서울시 마포구의 한 돈까스집 맞은편 주택에 이런 글귀를 적은 팻말이 설치돼 있었다. 주택에 사는 주민이 직접 적은 팻말이다. 이외에도 ‘조용히’ ‘당신들의 소음은 주민을 힘들게 하고 다툼의 원인이 된다. 이 골목에서 빨리 나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돈까스집 앞에 줄 서 있던 손님 5명가량은 대화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60대인 인근 주민은 “많이 시끄럽지만 이해해야지, 어쩌겠냐”고 말했다.
서울 연남동 주택가 사이로 인기 맛집들이 들어서 있다(기사는 사진과 무관). 박지영 기자
줄 서는 맛집 인근 주민도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오버투어리즘이란, 수용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는 관광객이 몰려들어 주민의 일상생활을 침범하는 현상을 뜻한다. 북촌 한옥마을, 부산 흰여울문화마을처럼 관광지가 아닌데도 주택가에 자리 잡은 인기 맛집을 찾아 유동 인구가 늘면서 거주민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20·30대의 ‘핫 플레이스(명소)’로 유명한 합정동‧연남동‧연희동 등은 주택가 사이로 매장이 속속 입점해 있는 형태다.
24일 헤럴드경제가 이 일대를 방문했을 때 주택가에는 ‘소음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연남동 인기 맛집 뒤에 있는 한 빌라 앞에는 ‘금연’을 적은 팻말이 2개 놓여 있었다. 한 빌라 앞에는 ‘이곳은 휴게소가 아니다’며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하면 모든 집에서 들린다’는 주의 문구가 붙어 있기도 했다.
서울 연남동의 한 빌라 앞에 ‘이곳은 휴게소가 아니다’는 문구 등을 적은 입간판이 놓여 있다. 박지영 기자
주민은 소음과 담배꽁초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합정동에 32년째 거주하고 있는 박홍순(72) 씨는 “매장에 들어가려는 손님들이 기다리면서 웃거나 떠드는 소리가 떠나가라 들려 괴로울 때가 있다”며 “특히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이 가장 시끄럽다”고 했다. 박씨는 “손님들은 한 번만 방문하기에 주위 주민을 신경 쓰지 않고 행동하는데 우리에게는 소음이 계속 들리는 셈”이라고 했다. 연남동에 거주하는 70대 조모 씨도 “맛집 입장을 기다리면서 우리 빌라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담배 연기가 들어와서 힘들다”며 “유동 인구가 많아지면서 주차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주택가 사이에 상점이 들어와 오버투어리즘 현상이 발생하는 데에는 ‘젠트리피케이션’도 한 배경으로 꼽힌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된 구도심이 활성화하면서 상대적으로 낮았던 임대료가 상승, 기존 주민이나 상인이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합정동 건물주 소모(65) 씨는 “합정동은 완전 조용한 주택가였는데 고급 아파트들이 하나둘 세워지면서 매장들이 하나둘씩 터를 잡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주민 김모(66) 씨는 “4~5년 전부터 홍대에서 밀려난 가게들이 자리 잡으면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인근 공인중개사 A씨는 “홍대가 월세를 3배 이상 올리는 바람에 합정으로 몰려온 가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서울 합정동의 한 매장 앞에 ‘주변 주택에 피해가 간다’며 산책을 해 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박지영 기자
이런 불편함을 인지하고 식당들도 주의 문구를 붙이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는 모습이다. 합정동의 한 주점 앞에는 ‘매장 앞 줄서기 절대 금지’라며 ‘주변 주택에 피해가 가기 때문에 산책을 해 달라’는 문구를 적어놨다. 또 다른 돈까스매장은 예약 서비스를 도입하고 방음이 되는 출입문을 새로 달기도 했다. 매장 아르바이트생은 “원래 문이 없었는데 소음이 밖으로 새어나갈까 봐 방음이 되는 문을 새로 달았다”며 “앞에 ‘조용히 해 달라’는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다”고 했다.
줄 서는 맛집 때문에 발생하는 오버투어리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매장의 책임이 강조되기도 한다. 한현숙 경기대 관광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매장도 지속 가능한 영업을 하기 위해선 공급을 제한하는 게 필요하다”며 “손님에게 주의를 주고, 예약제로 제한하는 방법도 고민해볼 수 있다”고 했다.
당국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매장과 지역주민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면 매장이 우위를 점하는, 일방적인 갈등관계가 나타난다”며 “당국이 개입해 협의할 수 있도록 중재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방문객들 또한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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