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4일 오전 울산시 동구 HD현대중공업을 방문해 외국인 노동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
베테랑 법조기자로부터 들은 얘기다. “한동훈 검사(현 법무부장관)랑 저녁을 한 적이 있는데요. 조용한 성격이었어요. 술을 안하던데, 차분히 얘기를 들어줬어요. 식사가 끝나고 집에 데려다준다고 하더라구요. 얻어탔죠. 참 친절하고 젠틀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건너 건너 접한 다른 법조기자의 말 역시 비슷했다. 그러고보니 ‘술자리 의혹’이 제기됐었던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본인은 술을 안하고, 오랫동안 밤늦게까지 모임을 가진 적이 거의 없다고 했던 한 장관의 강변이 기억난다. 그의 라이프스타일에 관한한 법조기자 얘기를 종합하면, 한 장관이 매너남이면서도 자기절제의 삶을 살아온 것은 맞는 것 같다.
그 베테랑 법조기자는 그런데 이런 말도 했다. “그런데 한 장관이 국무위원으로 데뷔하면서 보여준 모습은 제가 전에 봤던 동일인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어요. 순한 스타일로만 알았는데…. 와, 전투력 장난이 아니던데요.” 검사때는 순박한 모습이었는데 청문회나 국정감사, 대정부질문에서 본 한 장관의 모습이 좋게 말하면 거대 야당과 홀로 맞서는 고독한 투사, 좀 점잖치 못하게 말하면 온동네를 휘젓는 날선 쌈닭으로 비쳐지면서 조금은 당혹스러웠다는 게 그의 말이다.
사실 그랬다. 야당 의원들과의 1대1 질문과 답변에서 자기 논리와 단호함으로 무장한채 장관과 국회의원 딱지를 떼고 맞짱을 뜨며, 어떤때는 상대방을 당황케 하는 한 장관의 모습은 생소한 풍경이었다. 여태 이런 국무위원은 없었다. 최소한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국회의원은 늘 갑이었고, 국무위원은 을이었다. 여야를 떠나 의원은 호통을 치고, 국무위원은 궁색한 답을 내놓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 이게 우리가 통상 봐 왔던 본회의장 풍경이 아니었던가.
한 장관은 달랐다. 오히려 투사 같이 행동했다. 그러다보니 어떤 때는 십자포화의 대상이 됐고, 조롱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인상적이라는 말도 따랐지만, 장관이 자기 영역을 벗어나 너무 나선다는 힐난을 받기도 했다. 한 장관의 부정적인 면도 부각됐다. 오만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게 대표적이다. 자기 할말은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질문을 받을때면 본회의장 의자에 깊숙이 박혀 사람 무시하는 시선으로 상대방을 불편케 했고, 공격적 말투로 사사건건 맞서면서 야당으로부터 태도가 불순하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세상 모든 일은 호불호가 있고, 보는 시각에 따라 갈리는 법. 풍경이야 어쨌든, 한 장관에 우호적인 이는 내심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 비우호적인 이는 “싸가지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야당 코를 납작 눌러 “속시원하다”는 이와 검사 특유의 잘난 체 하는 게 “꼴보기 싫다”는 이가 극명하게 갈렸다.
좋게보든 싫게보든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한 장관이 국무위원으로 데뷔한 이후 이같은 튀는 언행과 행보에 힘입어 몸집이 대단히 커졌다는 점이다.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았지만, 여느 정치인 못잖은 무게감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본인 힘으로 큰 것도 있지만, ‘한동훈 잡기’에 올인하면서도 시원찮은 성적을 거둔 거대야당(더불어민주당)이 오히려 인큐베이팅(육성)해준 측면을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그게 맞다면 민주당은 그동안 쓸데없이 헛심만 썼다.
“국민의힘이 나를 띄운다는 것에 대해 공감할 분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이 나를 띄운다는 점에는 많은 분이 공감할 것 같아요”. 지난 22일 국회입법조사처 주최의 ‘지방소멸 위기, 실천적 방향과 대안’ 세미나 참석을 위해 국회의정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스타 장관들이 험지 출마를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고 기자들이 묻자 한 장관이 이같이 답한 것은 그 역시 이런 상황을 의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1일 오전 대전광역시 한국어능력 등 사회통합프로그램 CBT 평가 대전센터 개소식에 참석, 차에서 내리며 지지자와 셀카를 찍고 있다. [연합]
이런 한 장관이 움직이고 있다. 걸음이 향하는 곳은 ‘정치 본무대’다. 여태까지 객석에서 정치 연출 프로그램을 지켜보고 관람하는 입장이었다면, 이젠 성큼성큼 본무대에 올라 본인의 정치 프로그램을 지휘하려는 듯 하다. 여당 내부도 이를 인정한다. 정치 데뷔는 예정된 수순이고 100% 확실하며, 어떤 모습으로 첫 무대에 설지 그 포인트만 남았다는 것이다.
한 장관의 분주한 행보는 이를 뒷받침한다. 한 장관은 지난 24일 울산을 찾았다. 법무 정책 현장 방문을 위해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방문한 것이다. 그는 정치권 출마 관련 얘기에 대해선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다만 최근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의 ‘암컷’ 발언 논란과 관련해선 “인종·여성 혐오 발언을 공개적으로 구사하는 사람이나 집단은 민주주의 공론의 장에서 퇴출당하는 것이 세계적인 룰”이라고 했다. 법무장관 이라기 보다는 정치인성 메시지다. 그는 앞서 지난 21일과 17일에는 대전과 대구를 방문한 바 있다. 그곳에서도 속내를 과감히 드러내진 않았지만, 행간으로 보면 간단치 않은 의미의 멘트를 날렸다. 겉으로는 법무부 수장으로서의 ‘법무 행정’ 차원이라고는 했지만, 여느 정치인의 동선보다도 많은 ‘정치적 함의’를 스스로 소화한 것은 그의 정치무대 데뷔가 임박했음을 시사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한 장관이 움직일때마다 연예인 못잖은 인기를 누리며 화제를 뿌리고 있다는 점이다. 공연 관람을 위해 예술의전당을 찾았을때 화려한 팬사인회(?)를 했던 것이 출발점이다. 그 옛날의 ‘오빠 부대’ 못잖은 팬심에 한 장관은 고무적인 표정을 보였다. 대구를 방문했을때는 역에서 KTX기차를 타려고 하다가 시민들의 넘치는 사진 촬영 요청에 아예 탑승을 미뤘다가 3시간 늦게 서울행 기차에 올라탔다. 대전에선 꽃다발과 응원의 손팻말을 준비한 지지층 앞에서 함박웃음을 짓기도 했다. 대전에선 아예 정치권 입문에 대한 속마음을 꺼냈다는 시각도 뒤따른다. 한 장관은 ‘여의도 문법’과 다르다는 평가에 대해 “여의도에서 300명(국회의원)만 공유하는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여의도 문법이라기보다는 ‘여의도 사투리’ 아닌가. 저는 나머지 5000만명(국민)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고 했다. 시선이 정치를 향하지 않고 있다면, 굳이 그런 말을 했을리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이 자리에서 민주당이 자신을 향해 탄핵카드를 꺼낸 것과 관련해 “고위공직자가 법인카드로 일제 샴푸를 사고 소고기나 초밥을 사먹는 게 탄핵 사유일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작심 발언을 한 것으로, 야당 대표와의 대척점에 자신을 일부러 세운 셈이다. 이쯤이고 보면 삼척동자도 척 아는 법. 한 장관의 법무행정 차의 지방 방문이 정치적 행보이자, 총선을 겨냥한 ‘전국 표심 순회’라는 것이 무리한 해석은 아닐 것 같다. 여당 관계자는 “한 장관이 움직일때마다 현장은 유세장을 방불케할 정도”라며 “우리 당의 소중한 자원임엔 틀림없고, 어떻게 이를 활용하는가 하는 일만 남았다고 본다”고 했다.
대전에서 ‘5000만명 문법’을 화두로 꺼냈듯이, 요즘들어 한 장관의 멘트가 ‘정치인 화법’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는 데 주목하는 이도 많다. 특히 24일 울산HD현대중공업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의 ‘암컷’ 발언 논란과 관련해 “이게 민주당이야. 멍청이야”라는 초강력 멘트를 날림으로써 스스로의 운신을 정치권 한복판에 올려놨다. 지난 9월만해도 총선 출마 관련 질문에 ‘장관 임무’만를 강조했는데, 최근 총선과 국민을 연결하는 등 유권자를 다분히 의식하는 정치인 특유의 화법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그의 계획된 시나리오같은 ‘예정 코스’가 초미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게 민주당이다. 멍청이야”-11월24일 울산HD현대중공업 방문
“5000만명(국민)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11월21일 대전 한국어능력평가센터 개소식 참석차
“(총선 출마 추측 보도에 대해선) 제가 할 일 열심히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다”-11월20일 2023 대한민국 인구포럼 참석차
“총선이 국민의 삶에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11월17일 대구스마일센터 현장 방문차
“(안민석 민주당 의원의 ‘총선 출마하나’라는 질문에) 제 임무를 다하겠다. 그런 문제를 대정부질의에서 물을 것은 아니다”-9월8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
한 장관의 가장 큰 장점으론 ‘무한한 잠재력’이 꼽힌다. 여권의 독보적 간판스타 자질을 갖추고 있음엔 이견이 없다는 것이다. 언변도 좋다. 키도 크고 외모도 반듯하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정치인으로선 합격점을 훨씬 넘겼다는 뜻이다. 강단과 카리스마 역시 입증됐고, 시민들과 즐겁게 소통하는 친절한 이미지 세팅도 어느정도 완료됐다. 그래서일까. 여권 내부와 일부 국민들 사이에선 줄곧 “윤석열정부에서 눈에 보이는 내각은 원희룡 장관 외 한동훈 장관 뿐”이라는 말이 돌곤 했었다.
잠재력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최근 갤럽에서 시민들에게 장래 정치지도자 선호도를 물었는데, 한 장관(14%)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22%)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11월10~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 대상 설문). 최근에 발표되는 다른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이 대표가 20% 초중반에서 선두를 달리고 한 장관은 10%대 초중반에서 2위 구도를 형성 중이다. 정치에 본격 입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꾸준히 2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한 장관의 향후 진화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이다.
이같이 ‘잠룡’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은 한 장관을 여당으로선 총선카드로 염두에 두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한동훈 장관이 갖고 있는 많은 훌륭한 자질이 대한민국을 위해 잘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김기현 대표, 지난 21일 해병대 2사단 방문), “(한 장관은) 굉장히 신선하고 너무 좋은 분으로, 젊지만 내가 존경하는 분이다. 그런 경쟁력 있는 분들이 와서 도와야 한다”(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회 위원장, 지난 20일 당사 기자간담)는 여권 수뇌부의 말은 ‘한동훈 카드’가 가동채비를 마쳤음을 의미한다.
현재 여당에서의 ‘한동훈 활용법’은 정해진 것은 없다. 비대위원장을 맡아 총선 승리의 월계관을 쓴뒤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거나, 수도권 출마 또는 험지 출마로 총선 대결 현장의 선봉장에 설 수 있다는 얘기 등 관측만 무성하다.
그렇다면 총선용 ‘한동훈 카드’는 만패불청(萬覇不聽·바둑에서 패가 생겼을 때 상대편이 어떠한 패를 쓰더라도 응하지 아니하고 해소할 정도로 엄청난 패)일 정도로 위력적일까. 시각은 엇갈린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한 장관의 확장력에 주목한다. 여권 한 중진은 “한 장관의 스마트한 이미지로 보수 정당의 한계로 지적돼온 중도층이나 수도권, 청년이나 여성 표심을 많이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실제로 여권 내부에선 중도층 확장에 관한한 한 장관 외 대안이 마땅치 않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고 한다. 이런 여권 시나리오대로 결과까지 좋게 흘러간다면 국민의힘으로선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7일 대구 수성구 스마일센터를 찾아 시민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연합]
후자는 한 장관의 확장력엔 분명 한계가 있고,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다. 이는 한 장관이 이번 총선만큼은 ‘윤석열 키즈’라는 숙명의 걸림돌에서 벗어날 수 없고, 오히려 그 덫에 걸릴 수 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30%대 중반의 지지율로 답보 상태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교적 낮은 지지도와 정권심판론을 필두로 세운 윤정부에 대한 많은 반감을 지닌 층에 대한 극복 문제는 한 장관으로선 버거운 짐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 장관의 이미지 중 하나가 ‘윤대통령 호위 무사’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총선에서 이같은 인식을 단숨에 벗어버릴 수는 없는 상황에서는 정권심판론에 휘둘려 중도층 확장은 고사하고 오히려 여태까지 쌓아온 정치적 무게감 마저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야당의 한 초선의원은 “대선이라면 대통령과의 결별과 차별화 이미지로 승부를 걸어볼 수 있지만, 이번 총선은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한 정권심판론이 핵심이 될 것”이라며 “아무래도 ‘윤석열 수호자’ 역할을 해왔고, ‘윤정부 황태자’ 소리를 들어온 한 장관은 결국 이 심판론의 희생자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권 심판이 될 것인데, 야권으로서는 한동훈 출마를 굳이 말릴 이유가 없다. 분노의 반대표 행렬이 형성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며 한동훈 카드의 위력을 폄하하는 야당의 일부 견해는 이런 시각을 기반으로 한다.
여당 쪽에서의 ‘한동훈 긴급 투입’ 흐름이 빨라지면서 정치권에서는 한 장관 팬덤정치 여부에도 관심을 갖는 눈치다. 정치거물 잠재력을 지녔지만 초보정치 수순을 거칠 수 밖에 없는 그가 기존의 팬덤정치를 답습하느냐, 아니면 새 스타일의 확장정치 실효를 거두느냐는 향후 여의도 정치 지형에 중요한 잣대가 된다는 시각에서다. 이 역시 둘로 갈린다. “한동훈의 확장성은 현재 여권 인사 중 최고”(국민의힘 당직자), “팬들에 이미 취한 한동훈 역시 정치를 하더라도 팬덤에 휘둘릴 것”(민주당 당직자)이란 관측은 이를 대변한다. 확실한 것은 “강성 지지층에 끌려다니면 결국 망할 수 밖에 없다”(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는 것처럼 달콤한 열매 이면에 독약이 숨어있는 팬덤정치 덫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한 장관 역시 반짝스타에 그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 울산에서의 ‘민주당 멍청이’같은 초강성 멘트가 극성 지지층을 의식한 기성세대의 정치화법으로 자꾸 회자된다면 ‘안티 한동훈’은 더욱 세를 불릴 것이고, 큰 역풍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도 뒤따른다.
황홀한 열매를 취할 것인가, 아니면 잠시 빛났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수많은 정치선배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어쨌든 한 장관의 앞날은 둘 중 하나다. 한 장관은 본인의 바람대로 과연 국민이 쓰는 문법을 쓸 수 있게 될까. 일단은 정치 입문부터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김영상 논설실장
ys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