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옥죄는 美IRA ·中지분율 ‘더블 리스크’…“모든 시나리오별 대비 필요” [비즈360]
2023-12-14 09:42


서울시내 한 건물에서 충전 중인 수입 전기차 [뉴시스]

[헤럴드경제=서재근 기자]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는 해외우려기업(FEOC)의 범주에 ‘중국 자본 지분율이 25% 이상인 합작법인’을 포함시키면서 국내 배터리·소재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민관이 면밀히 협력해 모든 시나리오별 대응이 필수불가결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14일 배터리·소재 업계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는 최근 IRA의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해외우려기업(FEOC)’에 중국 정부 지분율이 25% 이상인 합작회사(JV)를 포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세부 규칙안을 공개했다.

사실상 미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탈(脫)중국’ 움직임에 나서면서 그간 중국 기업과 합작사를 운영하거나 운영 계획을 세웠던 한국의 주요 전기차 배터리 및 소재 분야 기업들의 대응책 마련을 위한 움직임도 분주해지는 모양새다.

이미 다수 기업이 핵심 소재 및 양극재 분야에서 중국 기업과 손잡고 공동투자 방식의 합작법인을 운영하고 있어, 막대한 자금을 들여 지분율을 조정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LG화학은 중국 화유코발트와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새만금에 배터리 전구체 합작 공장을 짓기로 했다. 포스코홀딩스와 포스코퓨처엠은 중국 CNGR과 경북 포항에 이차전지용 니켈과 전구체 생산 공장을 짓기로 하고 지난 6월 합작투자계약(JVA)을 체결했다.

배터리 기업들도 지난해부터 중국 배터리 기업들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거나 기술 협력 투자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초 중국 리튬화합물 제조 업체 야화와 모로코에서의 수산화리튬 생산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고, 화유코발트와 중국 내 첫 한중 합작 배터리 리사이클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다. SK온은 에코프로, 중국의 전구체 생산기업 거린메이(GEM)와 새만금에 전구체 생산을 위한 3자 합작법인 설립할 계획이다.


미국 재무부 해외우려기업 관련 규칙안.

업계에서는 “당장 중국기업과 지분율 조정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 수천억원의 추가 투자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 지분율이 낮아질수록 우리 기업들의 지분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터리 부품에 대한 미국 정부의 조치는 당장 내년 1월부터 시작되고, 핵심 광물에 대한 조치는 오는 2025년 1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어 대응시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 배터리업계 고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세부 규정을 발표하기 전까지 업계에서는 ‘중국 지분 허용률’이 최소 50% 수준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며 “25% 기준은 사실상 시장 기대치의 절반 수준으로 당장 지분율 조정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중국자본이 없어도 FEOC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우리 기업엔 부담이다. FEOC로 간주되는 경우는 ▷해외우려국에 설립 또는 소재하거나 주요 사업장을 두고 있는 경우 ▷해외우려국 정부·기관·고위공무원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지분율을 25% 이상 보유하는 경우 ▷해외우려국 정부·기관·고위공무원으로부터 라이선스나 기타 계약을 통해 소유·통제·지시를 받는 경우 등 총 3가지다.

예를 들어 중국 정부가 통제하는 기관이 소유한 특정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한국의 배터리 제조 회사가 해당 기관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면, 이 한국 회사는 중국 정부의 간접적인 통제를 받는 FEOC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배터리 제조사가 중국 정부가 소유하고 통제하는 기관과 핵심 소재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경우도 안심할 수 없다. 계약을 통해 중국 정부가 한국 제조사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이는 FEOC 조건에 해당될 수 있다.

‘고위 공무원이 관여하는 조인트 벤처(JV)’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고위 공무원이 직접적으로 또는 그들이 소유한 회사를 통해 한국 기업과 JV를 설립하는 경우도 해당된다. JV를 통해 해당 한국 기업에 중요한 결정에 대한 지시나 통제를 행사한다면, 지분비율과 관계없이 미국 정부의 해석에 따라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한편 미국이 배터리를 비롯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압박 수위를 높여가면서 내재화율을 높이기 위한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에코프로비엠과 엘앤에프의 경우 양극재, 전구체 등에서 중국 기업과의 협력없이 자체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전구체의 경우 수입 중 중국산 비중이 97.5%(1~5월)에 달하지만, 에코프로비엠의 경우 전구체 95% 이상을 최근 상장한 에코프로 계열사 에코프로머티리얼즈를 통해 공급받는다.

고려아연과 LS도 중국 자본의 개입 없이 배터리 소재 공급망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려아연의 경우 오는 2025년까지 5063억원을 투자해 울산에 ‘올인원 니켈 제련소’를 준공할 계획이다. 신규 제련소의 황산니켈 생산능력은 연 4만2600t(니켈 금속량 기준)으로 현재 그룹사 전체 연간 생산량(2만2300t)의 1.9배에 달한다.

배터리소재 기업의 한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사실상 전기차 공급망에서 중국을 최대한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만큼 국내 배터리·소재 기업은 중국 지분율뿐만 아니라 라이선스, 계약과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며 “자본시장과 투자자 역시 국내 배터리 기업에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면, 중국 지분율 25% 미만이라도 FEOC로 지정될 위험은 없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likehyo8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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