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가 올해 역대급 불황으로 ‘성과급 잔치’ 없이 조용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그래픽=김현일 기자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반도체 업계에는 성과급이 나오는 시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회사 근처에 수입차 딜러들이 기다리며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전언이 있다. 매년 초 딜러들이 특별 쇼룸을 설치해 이들 직원들을 상대로 영업을 펼치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반도체 업계를 덮친 역대급 불황 탓에 ‘성과급 잔치’ 없이 여느 때보다 조용한 연말을 보내야 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주요 사업부별 초과이익성과급(OPI·옛 PS) 예상 지급률이 지난 28일 사내에 공지됐다. OPI는 1년에 한 번 지급되는 성과급이다. 사업부의 실적이 목표를 넘어서면 초과 이익의 20% 내에서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받을 수 있다. 다음해 1월 지급률을 확정해 최종 지급된다.
그러나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 솔루션(DS) 부문의 올해 OPI 예상 지급률은 0%로 알려졌다. OPI 제도 도입 뒤 0%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2022년 성과를 기준으로 올해 초 지급된 OPI는 최대치인 연봉의 50%였다.
지난 몇 년간 줄곧 연봉의 절반을 성과급으로 받으며 한 해를 시작했던 직원들로선 당장 내년 1월 빈 봉투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직원들은 또 다른 성과급인 목표달성장려금(TAI·옛 PI)에서도 이미 쓴 맛을 봤다. TAI는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지급되는데 월 기본급의 최대 100%까지 받을 수 있다. 2022년 하반기 TAI는 월 기본급의 50%였으나 올해 상반기 25%로 반토막 났다.
이달 22일 지급된 하반기 TAI는 더 쪼그라들었다. 반도체연구소·SAIT(옛 삼성종합기술원)의 TAI는 그나마 25%로 책정됐지만 메모리사업부는 12.5%에 그쳤다. 반도체 위탁생산을 하는 파운드리사업부와 시스템반도체를 담당하는 시스템LSI사업부는 0%로 성과급이 없다.
유례 없는 반도체 한파는 이처럼 초유의 성과급 0%로 이어졌다. 올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는 1분기 4조5800억원, 2분기 4조3600억 원, 3분기 3조7500억원 적자를 냈다. 3분기까지 누적된 적자만 12조 6900억원에 달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연간 예상 영업손실은 13조5440억원이다.
성과급 지급 시기만 되면 늘 함께 비교되는 SK하이닉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SK하이닉스는 실적에 따라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하는 초과이익분배금(PS) 제도가 있다. 그러나 올해 연간 8조4000억원의 적자가 예상돼 지급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업계가 매년 두둑한 성과급으로 다른 업종의 부러움을 샀던 것과 비교하면 올 연말은 침울한 분위기이다. 그러나 내년부터 사정이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반도체 업황을 괴롭혔던 과잉재고가 해소되면서 점차 실적 반등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도 내년 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가 올해보다 13.1%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특히 메모리 반도체 부문이 주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메모리 부문은 내년에 약 1300억달러까지 확대돼 올해보다 약 40% 급증할 것이란 전망이다.
증권업계는 내년 삼성전자 DS부문의 연간 영업이익을 약 15조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SK하이닉스의 내년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도 약 8조5495억원이다. 유례없는 불황에 적자를 낸 올해와 비교하면 가파른 회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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